우울한 시기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던 프로그램 팬텀 싱어 3가 끝났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거의 다 챙겨보는 편인데, 이번에도 빠짐없이 다 본방사수를 했던 것 같다. 야호! 의지의 한국인이다.
보는 재미를 위해 출연자 랭킹을 매기기도 한다. 이번 시즌의 랭킹 1위는 유채훈이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빼어난 실력자라 부동의 1위라고 해야겠다. 2위는 길병민. 그 목소리의 기름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파워 표현력 매너 등 전반적인 영역에서도 최고 수준의 점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내가 뽑은 3위는 신재범이었다. 뮤지컬 유망주라고 하는데 노래의 핵심을 놓치지 않고 표현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기대하고 응원했는데, 본선 4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좀 더 경험을 쌓고 자신감을 갖추면 좋은 가수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실력 랭킹과는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따로 있었다. 카운터 테너 최성훈과 존 노가 그들이다. 특히 존 노는 나를 열광시켜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게 만들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70억 인류 누구건 마음대로 골라 그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는 존 노로 태어나고 싶다!”
같이 TV를 보던 여편에게 한 말이었는데, 여편은 약간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 인물이 그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미친 거 아냐?’ 아마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해한다. 내가 여편 입장이어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미치는 것이다. 어떤 이유도 없이, 그냥 빠져버리는 것이다. 내가 나의 역사상 그런 식으로 빠져버린 것이 두세 번 있다. 프랑스와 트뤼포라는 프랑스 영화감독이 그중 하나이고, 가수 중에는 <그건 너> 등으로 유명한 이장희와 미국 가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Kris Kristofferson)이다. 이장희와 K.K는 청소년기에, 트뤼포도 20대에 좋아한 것이니 어쩌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생겨버린 거라고 할 수 있다.
수십 년 전 이장희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트뤼포를 좋아하던 그때와 이번 존 노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그들의 노래나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분명하나, 그것 때문에 열광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 생김생김, 옷차림, 웃음소리,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 그냥 다 좋다. 존 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실 존 노의 노래 <The Prayer>를 들을 때만 해도 ‘노래 잘하는구나’ 하는 정도였지 열광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랑에 빠졌고, 정말 노래를 잘한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물론 존 노가 유채훈처럼 폭발적인 가창력을 가졌거나 길병민처럼 매혹적인 목소리를 가진 가수는 아니다. 나는 유채훈의 노래를 듣기 위해 가끔 <Love Poem>을 듣는다. <Angel>이나 <Requem>도 좋다. 길병민의 <Parlami D'amore Mariu>를 듣고 있으면 최고급 식당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기분 좋은 식사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거기에 비교하면 존 노는 다소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존 노를 좋아하고 존 노를 유심히 보면서 존 노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유채훈이나 길병민은 노래를 한다. 그것도 아주 잘한다. 그러나 존 노는 노래를 하지 않는다. 그는 차원을 달리 한다.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노래가 ‘된다’. 때로는 그 되려는 노력이 보이기도 하고, 그 서투름 때문에 보는 내 마음이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뭐랄까, 물 가에 놀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는 부모 마음 같은?
“팬텀 싱어에서 진짜 노래를 하는 건 존 노 뿐이야. 나머지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는 거지.”
여편한테 한 말인데, 그런 뜻이다. 다른 사람들이 흥이나 감정을 표현하려 할 때, 존 노는 흥 자체가 되려고 한다. 잘하고 못하고와 상관없이 서 있는 지점이 다르다. 나는 그런 점에서도 존 노가 좋다. 존 노를 지지한다. 예술은 기술과 조금 다르다. 존 노는 예술가가 되려고 한다.
‘노래를 하는 것’과 ‘노래가 되는 것’이 어떻게 다르냐고 꼬집어 물으면 마땅히 답하기가 곤란하긴 하다. 그저 막귀를 가지고 기분대로 노래를 듣는 아마추어로서 전문적인 설명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본 적은 있다. 설명은 못해도 구체적인 예를 들어줄 수는 있다는 말이다. 그건 마리아 칼라스 전기 영화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톰 볼프 감독. 2019년)에서였다.
영화의 후반부에 흑백 영상으로 마리아 칼라스가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벨리니의 오페라 <몽유병 여인> 중에서 <아, 믿을 수 없어라>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나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마리아 칼라스가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노래가 마리아 칼라스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샘에서 샘물이 저절로 솟아 나오듯, 누에의 몸에서 비단실이 저절로 만들어져 나오듯, 그렇게 칼라스의 입에서 저절로 노래가 나왔다. 마리아 칼라스가 노래였고, 그 노래가 마리아 칼라스 자체였다.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되는’ 신기한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다.
물론 존 노가 칼라스처럼 그렇게 완벽한 하나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술은 숙련도의 문제가 아니다. 금은 아무리 때가 묻어있어도 금이고, 사자는 아무리 어리거나 늙어도 사자다. 나는 존 노에게서 마리아 칼라스가 얼핏 보여준 진기한 경지를 예감한다. 존 노 파이팅!
최성훈은 예선 때부터 눈에 띄었다. 카운터 테너인데, 그동안 보던 카운터 테너 소리의 어색함이 거의 없었다. 단아하고 외로운 신사, 어찌 보면 드라큘라 백작 같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존 노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존 노와 최성훈이 같은 팀이 되기를 바랐다.
“아빠가 존 노와 최성훈을 좋아하는데, 존 노가 최성훈을 선택 안 할 것 같아. 존 노는 아마 고영열하고 할 거야.”
딸에게 한탄하듯 말했는데 결국 그렇게 됐다. 자식의 짝짓기를 부모가 어찌 간섭할 것인가? 결국은 그들의 팔자이고 운명이다. 아무리 최성훈이 좋은 짝으로 보여도, 정작 당사자가 좋아하는 사람이 고영열인걸 어떡하나? 그저 잘 살기를 바라고 기도할 뿐...
그렇게 최성훈은 유채훈과 짝을 맺었고 제3대 팬텀 싱어가 되었다. 잘된 결과다. 존 노를 생각하면 아쉽지만 최성훈을 생각하면 오히려 좋은 선택일 수 있다. 그 집이 부잣집이다. 유채훈은 안정적이고 존 노는 진취적이다. 최성훈 잘 살아라!
그리하여 팬텀 싱어 3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바람이 되어>이다. 노래 자체도 좋고 두 사람, 존 노와 최성훈이 함께 부르기 때문이다. 존 노의 노래는 항상 좋지만, 이 노래에서 최고로 좋은 부분은 최성훈이 부르는 대목이다. 특히 다음 부분에서 최성훈의 목소리는 들을 때마다 내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여기에는 완벽한 소리가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댈 닮은 저 시린 꽃잎이 바람에 날려 흩어질까 우우우 우우우우우
꿈에 본다면 좋을 텐데
우우우우우 바람이 되어 그대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 안을게요
우우우우우 바람이 되어 그대 곁에 머물게요 그대 곁에
두 눈에 서린 안개 너머 그대 뒷모습 아른거려 우우우 우우우우우
꿈에 본다면 좋을 텐데
우우우우우 바람이 되어 그대의 두 볼에 (그대의 두 볼에)
우우우우우 흐르는 눈물 안을게요
바람이 되어 그대 곁에 머물게요
그대 느낄 수 없나요 이 바람 끝에 맺힌 내 맘을
그대에게 닿지 못해 길을 잃고 헤매잖아요
바보 같은 내가 보이지 않나요 내가 그대 곁에 있는데
바람이 되어 (바람이 되어) 그대의 두 볼에 흐르는 눈물 안을게요
우 바람이 되어 그대 곁에(곁에) 머물(머물) 게요
곁에(곁에) 머물(머물) 게요 그대 곁에
노래는 김바울의 저음으로 시작한다. 멋진 시작이다. 존 노에 이어 두 번째 단락 ‘두 눈에 서린...’ 부분을 부르는 것은 최성훈이다. ‘꿈에 본다면 좋을 텐데’까지 그의 카운터 테너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내가 마음이 정화됨을 느끼는 최성훈의 목소리가 시작된다. 바로 그다음 ‘우우우우우 바람이 되어’ 하는 부분이다. ‘우우우우우’ 하고 다섯 음절을 내는데, 그중에서 두 번째 ‘우’ 음이 포인트다. 팬텀 싱어 역사상 잘 부른 노래도 많았고, 멋진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이 순간이 팬텀 싱어의 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최성훈의 목소리가 바람이 되어 흐르는 눈물을, 노래 듣는 사람의 아픔을 안았던 순간이다. 땡큐 최성훈!
어쨌든 존 노와 최성훈은 헤어졌다. 어쩌면 다시는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인생이다. 다행인 것은 영상으로나마 이 순간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길을 갈 것이고, 나름의 성취를 이룰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떠하던 그건 그들의 몫이다. 나는 생각날 때마다 <바람이 되어>를 들을 것이고, 그걸 통해서 힘을 얻을 것이다. 그들은 최소한 한 사람의 인생에 실제로 바람이 되어준 것이다. 존 노가 최성훈 말고 고영열을 선택한 것이, 김바울을 선택한 것이, 황건하를 선택한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어찌 되건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갈 것이고, 나는 또 나의 길을 가야 한다.
노래를 부르는 그들과, 노래를 듣는 우리와, 이 들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