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 싶지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 싶지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 따러 왔다가 잠든 날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 조용필의 노래 <고추잠자리> 가사
요즘 우울증이 심해져 고생하는 중에 갑자기 이 노래가 떠올랐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조용필의 노래 <고추잠자리>.
그때 문득 ‘어? 이거 우울증 노래네?’ 하는 생각이 났다. 수백 번은 들었을텐데, 그동안 한 번도 이 노래를 들으며 우울증을 떠올린 적이 없었다. 역시 모든 건 ‘지금 이 순간’이다.
공연히 슬퍼지고 울고 싶고 외로워지는 건 우울증의 입구에 서 있다는 신호다. 모든 것이, 세상이 온통 말랑말랑해져서 살짝만 눌러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사춘기나 갱년기에 흔한 증상, 여기서 우울증의 문을 열고 들어갈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 말랑말랑한 슬픔이 해소되지 않고 누적되면 딱딱하고 날카로워진다. 아름다울 수 있는 슬픔의 감정은 짜증과 화로 변질되었다. 감추거나 억누르면 더 강력해져서 나와 남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아직 우울증까지는 아니지만 우울감이 심해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짜증이나 화는 나와 세상에 대한 불만에서 오는 것이다.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내 처지가 내 맘에 들지 않으니 화가 난다. 그 화가 쌓이다보면 어느 순간 견딜 수 없는 무게에 이르고, 화의 에너지로 지탱하던 나는 무너지고 만다. 좌절하고 포기한다. 내 인생과 세상에 대한 항복.
우울증은 생각의 병이다. 슬픔이나 짜증 같은 감정의 문제를 지나 인생 자체에 대한 계산서가 나온 것이다.
“의미 없음.”
“파산!”
가끔 유명 인사들이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아니, 그렇게 성공한 사람이 왜 자살을 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우울증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앞에 말했듯이 우울증은 사는 것에 대한 계산이 끝나있다. 이 삶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살 필요가 없다고.
우울증이 위험한 이유는 그 생각이 워낙 명확하기 때문에 언제든 행동에 옮길 수 있다는 점이다. 우울증이 심한 사람은 신호가 바뀐 횡단보도를 건너듯 쉽게 생과 사의 강을 건넌다,
나도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늘 주머니에 죽음을 넣고 다녔다. 수시로 카톡 신호음이 울리듯 내게 죽음의 초대를 속삭였다. 나는 묵묵히 그 소리를 들으며 견뎠고 지금은 많이 좋아진 상태다. 나의 활성 에너지가 커지면 우울증은 가라앉는다.
가라앉아 있다가 나의 상태가 부실해지면, 즉 면역력이 약해지면 다시 올라온다. 이번에도 그랬다.
특별히 개인적인 문제점은 없었다. 아마 오래 계속되는 코로나로 나의 심리가 약해져 있지 않았나 싶다. 그 와중에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과 지저분한 대통령 선거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 싶지
어리지도 않은데 자꾸 짜증이 난다. 괜히 화가 난다.
아무 것도 아닌 말에 화가 나고, 재미난 얘기를 들어도 짜증이 난다. 날 보고 기분 좋게 웃어도 ‘왜 괜히 웃고 x랄이야?’ 하는 말이 저절로 올라온다. 이렇게 되면 본격적으로 우울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예쁜 꽃을 봐도, 날씨가 좋은 것도 짜증이 난다. 엉뚱한 얘기를 하자면, 까뮈의 소설 <이방인> 주인공 뫼르소는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다음 단계. 내 우울증이 돌아왔다는 확실한 증거, ‘죽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살기 싫다’가 맞다. 옛날 어릴 때 <지구야 멈춰라 내리고 싶다>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딱 그 말이 맞다. ‘내 인생아 멈춰라. 내리고 싶다’는 생각...
이 때 중요한 것은 뭔가에 의지하는 것이다. 우울증이 온다는 것은 내 마음의 에너지가 비어있다는 뜻이다. 내 마음이 허탈한 사이를 ‘이제 그만!’ 하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온다. 그러므로, 나의 자체 힘으로는 물리치기 힘들다. 주변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 누구든 의지처를 삼아야 한다. 사람이 아니면 내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뭐라도 좋다.
아! 그리고 중요한 포인트 하나.
본격적으로 우울증이 침범하기 시작하면 그나마 있던 내 에너지도 소실된다. 가끔 ‘그렇게 힘들면 도와달라고 얘기하지’라는 말을 듣는데, 정작 당사자는 그럴 기운도 여유도 없다. 도움을 청하는 것도 그럴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나의 우울증 스토리가 일반적인 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사람들이 막상 우울증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내 우울증 얘기를 했더니 ‘그게 어떤 거야?’하고 물었다. 한라산은 누구나 알지만, 실제로 올라가 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땐 정말 힘들었습니다. 가만히, 숨만 쉬고 있는 것도 힘들었어요. 아무런 삶의 동력도 느낄 수가 없었지요. ‘살 필요가 없다’는 확신만 커져가니 죽음이 바로 눈앞에 있습니다. 괴롭지는 않습니다. 그저 선택의 문제일 뿐이지요. ‘그래, 죽자.’고 결정을 하면 끝입니다. 사는 게 힘들지, 죽은 것은 전혀 힘든 게 아닙니다.
어떻게 이겨냈느냐고요? 분명한 건, 내 상태를 이야기함으로써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우연한 기회로 여편에게 내 상황을 털어놓고 말했고, 그 이후 조금씩 동력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혼자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꺼진 발전기를 다시 가동했고, 그로 인해 재활이 가능해졌다는 얘기지요.
사실 이게 쉽지는 않습니다. ‘털어놓고 얘기를 하라’고 말하지만, 막상 그 상황에 있으면 전혀 그럴 생각이 나지 않거든요.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이미 이겨낼 기운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삶의 의지가 있다는 증거니까요.
하지만 해야 합니다. 쉽지 않아도, 어려워도, 무조건 말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털어놓으면, 상처에 고여 있던 고름이 빠지듯이 우울증이 약해집니다. 썩어가던 고인 물이 흘러내려가고 새로운 물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합니다.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고, 전문가에게 나를 상담하고, 나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해나가야 합니다.
삶의 발전기가 꺼진 이유는 살아갈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찾아내야 합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억지로라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게 나를 죽음으로 내모는 길을 막아줍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물건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충분한 핑계가 됩니다.
이미 내가 살아갈 이유가 없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 경우는 내가 죽으면 안 되는 이유를 찾아본 편입니다. 간단하더군요. 사회적으로는 모든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가까운 가족밖에 살필 것이 없었습니다.
아직 어린 딸... 안되었지만, 내가 없더라도 금방 괜찮아질 겁니다. 혹시 운이 좋으면 훨씬 훌륭한 새아빠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여편의 경우는 딸보다 감정적으로 복잡했습니다. 더 미안했지요. 잘 살고 싶었으나 미처 그러지 못했잖아요? 그러나 워낙 건강한 사람이라 잘 견뎌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딸을 만들어줬느니, 나쁜 사람이라고 욕하지는 않겠지요.(그때보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여편에게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커갑니다. 요즘은, 나 없으면 혼자 살기 힘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가끔 합니다. 물론 착각이겠지요?)
결정적으로 내가 죽으면 안 되는 이유를 찾은 건 어머니였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아직 살아계신데, 어머니보다 자식이 먼저 죽는 건 정말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소한 어머니가 살아계신 한은, 나도 죽을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이 생각을 이깁니다. 우울증은 부정의 생각이 나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 생각을 긍정의 생각으로 몰아내야 합니다. 어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서라도,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이유라도 내가 살아갈 이유를 찾아내면 그게 불쏘시개 역할을 합니다.
‘만화 <원피스>가 끝나는 건 봐야지!’는 어떤가요? 그렇게 하나 둘 힘을 얻어가면 됩니다.
우울증은 완치가 안 된다고 합니다. 나의 경우도 가끔 되살아납니다. 아무런 문맥도 없이 불쑥 ‘그만 살고 싶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올라옵니다. 나의 상황이 나쁠수록 그 생각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요.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나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주변 상황도 나빠지지 않게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후의 비책, 죽으면 안 되는 나만의 이유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나의 글 <내가 우울증의 바다를 건너는 방법> 중에서
우울증을 갖고 계신 분이나 우울증이 있는 분 곁에 있는 분에게 만에 하나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적어보았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공이다. 시나리오를 누가 썼는지 따지지 말자. 마음에 드니 마니 따지지도 말자. 우리가 할 일은 내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연기해내는 것이다. 멋진 배역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고통에 시달리는 악역이라도 최선을 다해 연기하자. 내 역할이니까. 내게 주어진 배역이니까.
우울한 시대 우울한 영화여도,
내 영화가 끝나는 그 날까지 우리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