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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Sep 25. 2022

제20-2화; Rest in Peace2

본격 탐사 판타지 <지구인들> 제 1부 ; 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39     


제20-2화; Rest in Peace2     


(제20화; Rest in Peace! 계속)          



“꽃이 핀다고 다 봄은 아니다. 

봄을 노래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다가오는 겨울을 각오해야 한다. 

이제 시련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님들은 님들의 자리에 가서 시련을 감당할 준비를 해야 한다.”

“죽는다는 것은, 맞서 싸우라는 뜻인가요?”  

   

처음에 ‘함께 하겠다’고 말했던 중년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재림이 그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싸움은 이길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될 싸움에서 님들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이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아니다. 

집주인과 세입자의 싸움 같은 것이다. 오너가 나가라고 하면 월급쟁이 직원은 나가야만 한다. 

님들은 이 지구에 세 들어 살던 월급쟁이 직원이다.”

“회사서도 짤렸넌디 또 짤린다고? 고렇게는 못 허지.”

“심판의 날이 온다, 뭐 그런 소린가?”

“때가 온 거지. 아마겟돈 전쟁의 때가.”

“죽겠어서 도망쳐 왔더니 기껏 하는 소리가 돌아가라네?”

“말을 좀 막하네, 어린 것이.”

“우리가 그딴 소리 듣자고 이렇게 비 맞고 있었던 건 아니구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쟈도 아닌가베.”    

 

아까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웅성거림이 위로 올라왔다. 노골적으로 삿대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재림은 전혀 흔들리는 기색이 없었다.    

 

“믿음이 없는 자들아. 이제 그만 욕망의 빨판을 거두고 돌아가라. 

가서 님들의 보금자리에 안주하라. 편히 쉬어라. Rest in Peace... 

왜 꼭 죽어서만 평온을 얻으려 하는가? 현재를 부정하려는 저들의 술책에 넘어가선 안 된다.

죽은 사람처럼 쉬어라. 아무 것도 하지 마라. 

살기 위해 일하지 마라. 그건 저들의 앞잡이 노릇에 불과하다. 

살기 위해 노력할수록 님들의 영혼은 허약해진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죽음을 사랑하라.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님들의 자랑스런 권리이고 축복이다. 

죽으면 다시 살아난다. 걱정할 일이 아니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납니다. 존재가 사라지니까요.”   

  

중년이 다시 말했다. 여전히 웅성거림이 있었지만 다시 경청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그것 좋지 않은가? 다시 시작하면 된다. 

죽을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러나 죽으면 지키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살고, 죽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겸손한 마음과 감사하는 자세만 있으면 된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그래도 여전히 두렵습니다.”

“저들의 계략에 말려든 것이다. 

두려움과 죄의식은 저들이 님들의 마음에 심어둔 해충이다. 

그 벌레를 삼시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삼시충은 나를 온전히 나로 살지 못하게 하고, 오늘을 충만한 오늘로 살지 못하게 한다.”

“삼시충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죽으면 삼시충도 소멸한다. 

삼시충을 없애려면 나를 죽여야 한다. 인타스타 카시오!”     


재림이 갑자기 목소리 톤을 높여 주문 같은 것을 외쳤다. 

대부분은 그저 의아해하는 바였으나, 일부 예민한 사람들은 겁에 질려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안타스타 카시오!”  

   

여기저기서 주저앉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재림의 주문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안티스타 카사네!”     


한두 사람이 웃기 시작하더니 차츰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뭔가 재미있는 일을 겪은 사람들처럼 모두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중년남자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재림의 다음 행동을 주목했다.   

  

“님들은 조종당하면서도 알지 못한다. 삼시충을 제압하지 않고는 님들에게 자유란 없다! 

삼시충을 죽여야 한다. Rest in Peace.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어라. 

그것이 삼시충을 죽이고 님들이 사는 길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들이 재림의 주문에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고 소름이 끼쳤다. 

저런 간단한 말 한마디에 조종당하는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나’라고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은 삼시충의 장난에 불과하다니! 

잠깐 사람들을 흔들어놓고 재림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만은 말해야겠다. 

이때까지 지구를 관리해오던 저들이 새로운 계획을 채택했다. 인간들은 버려질 것이다. 

인류의 시대는 끝났다!”

“오, 주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세요.”

“당신은 우리의 구세주입니까?”

“아무도 님들을 구해줄 수 없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봄에 죽으나 여름에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왜 굳이 뜨겁고 긴 여름을 기다린단 말인가? 

이 좋은 봄날에, 레스트 인 피스... 님들이 누릴 가장 평온한 휴식 속에서 죽어 가시라.”

“그럴 수 없는 저 같은 사람은 어찌해야 할까요?”  

   

갑자기 구석에 있던 남자 하나가 일어나 크게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워낙 커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찾아 천지사방을 헤매고 다닙니다. 

어떻게 편하게 쉴 수 있으며, 자식이 어찌 아버지를 두고 죽을 수 있을까요? 

하나도 모르면서 둘을 안다 말하고, 한 사람의 고통은 무시하면서 열사람 백사람의 아픔을 위로하는 척! 

위선과 가식의 탈을 쓴 당신은 즉시 가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하라!“    

 

재림이 물끄러미 남자를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다소 남자에게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비를 막기 위해 눌러쓴 후드 티의 모자 속에서 두 눈만 번쩍 빛나고 있었다. 

재림이 남자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람은 모두 가면을 쓰고 산다. 가면을 벗을 수 있는 건 죽음뿐이다. 

아버지는 가면을 벗었는데, 아들은 왜 가면을 벗지 못하는가? 돌아가서 님의 자리를 찾으라.”     

“나는 내 자리를 찾으러, 내 자리를 찾아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남자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얼굴을 가린 후드 모자를 벗었다. 

빗방울이 반갑다는 듯 그의 드러난 얼굴에 달려들었다. 그는 바로 서명근이었다. 

그동안 아버지를 찾아다니느라 힘들었는지 핼쑥해진 얼굴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반짝거렸다. 

당신을 얼마나 간절하게 찾아 헤맸는지 아세요? 그런 호소가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명근을 쳐다보는 재림의 입가에 아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미세하게 웃음기가 흘렀다.  

    

“당신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어요. 아버지, 나의 아버지.”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40 나이의 남자가 20도 안된 소년에게 아버지라고 간절히 부르고 있다. 마치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듯이...  

   

“아들아! 나의 아들아! 이제 내 곁에 머물며 안식하라. 이런 말을 듣고 싶은가?

그러나 님아. 그건 현재가 아니다. 과거를 사는 것이다. 

언제까지 떠난 아버지의 자식으로 머무르려 하는가. 

이젠 님이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야 하지 않나? 내게 오지 말고 그에게 가라.“     

“하지만...” 

    

명근이 뭐라고 반박을 하려 하자 재림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러더니 다시 사람들을 둘러보며 약간 소리를 높였다. 

    

“저녁 드실 시간이다. 편히 맛있는 식사하시라. 오케스타 파사레!”    

 

재림이 두 팔을 넓게 펴서 공중에 올리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내리던 빗방울들이 정지하더니 다시 공중으로 빨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의 화면이 되감기하는 것처럼 빗줄기가 주르륵, 공중으로 올라가 사라졌다. 

그리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려와 사람들을 축복했다.  

   

“나는 님들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님들과 함께 죽으러 왔다. 

나는 님들보다 먼저 죽을 것이므로, 님들의 죽음을 조금은 늦출 수 있다. 그러니 일단 안심해도 된다. 

잠시 좋은 햇빛 아래에서 밥을 먹고, 님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라. 

가서, 그 자리에서 머물러라. Rest in Peace!”   

  

재림이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사람들은 방금 벌어진 일이 믿어지지 않는 듯, 아무 말도 못하고 쳐다보기만 했다.     

 

“봤어? 하늘이 비를 빨아들였어.”

“비를 멈추게 하다니! 기적이야.” 

“저분이야말로 재림 예수시다! 구세주 예수가 재림하신 거야!”

“아버지! 잠깐만요! 제 애기 좀 들어 보세요!”  

   

갑작스러운 기적을 직관한 사람들이 놀라 웅성거렸고, 명근의 절박한 외침은 그 소리에 묻혀버렸다. 

재림 일행이 멀어져 감과 함께 사람들의 소란도 점점 커져갔다. 

명근이 급히 재림을 따라가려 했으나 제지당했고, 사람들은 재림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제2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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