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화 한 잔 할까?

by 천하태평

영화라는 이름의 카페에 들어서며


나는 폭포를 좋아한다. 세계 3대 폭포라고 불리는 이과수 폭포, 나이아가라 폭포, 빅토리아 폭포...

하나도 못 가봤지만 나는 폭포를 좋아한다.

내가 본 제일 큰 폭포는 제주도의 정방폭포이고, 제일 많이 가본 곳은 설악산의 비룡폭포일 뿐이지만 나는 폭포를 정말로 좋아한다. 하루 종일 그것만 보고 있으라고 해도 얼마든지 즐겁게 그럴 수 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작은 폭포라도 나는 그걸 보는 게 좋다.


언젠가 내가 왜 폭포를 좋아할까 따져본 적이 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그 떨어짐, 낙하운동이다. 물이라는 것은 흐르는 것이 기본인데, 폭포는 흐르지 않는다. 흐르기를 거부하고, 연속성을 거부하고, 지속을 거부하고, 떨어진다. 수직으로 낙하한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후략)

--김수영의 <폭포> 중에서


이 시가 훌륭한 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폭포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정확히 말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떨어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일종의 상징이며, 그래서 사람들은 번지점프나 고공낙하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의 스릴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폭포는 그런 공포가 없다. ‘무서운 기색도 없이’ 그냥 떨어진다. 어떤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떨어진다.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부서지며 생기는 하얀 포말과, 떨어지면서 일으키는 서늘한 물 바람, 바닥에 부딪쳐 쏟아내는 엄청난 소리가 나는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떨어짐의 항상성, 영원함, 유일함을 나는 좋아한다.


그런데, 근래 들어 좋아하는 것에 변화가 생겼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게 변화가 생겼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보통 게으름을 비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게으름과 태만을 구분하지 않아서 생기는 오류이다. 태만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무책임한 게으름이자만, 일반적인 게으름은 무책임하지 않다. 다만 해야 할 일과 관심을 최소화할 뿐이다. 할 일을 최소화시키고, 그 해야 할 일은 가능한 한 빨리 해치워버린다.

게으르다는 것은 단순한 삶, 심플 라이프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게으른 사람은 좋아하는 것도 많지 않고, 한번 좋아하면 잘 바꾸지 않는다. 바꿔야 할 결정적인 이유가 생기기 전에는 그냥 간다. 그런 나에게 폭포보다 더 좋아하는 게 생겼다. 아니 생겨버렸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난데없이, 내 눈에 쑥 들어왔다.

새로 생긴 것도 아니다. 늘 내 곁에 있었고, 언제든 볼 수 있었고 보아왔던 것인데 갑자기 처음 본 것처럼 내 마음에 들어와 앉았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나의 가장 좋아하는 대상이던 폭포를 밀어내고 첫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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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풍덩 뛰어들고 싶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정말 하늘을 보고 있으면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안기고 싶고 안고 싶고 하나가 되고 싶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것이다.


흔히 아름다운 하늘을 얘기할 때 멋진 구름을 떠올리게 되는데, 나는 구름 없는 깨끗한 하늘이 훨씬 더 좋다.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보고 있으면 마음도 덩달아 깨끗해진다.

처음에는 ‘이거 혹시, 내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때가 되었단 신호 아닐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아직 건강하게 살아있는 걸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구체적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언제 어느 때나, 어떤 모양 어떤 색깔이거나 상관없이 좋다. 나는 하늘을 좋아한다.


영화는 오랫동안, 가장 긴 시간을 나와 함께 한 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영화를 좋아했던 걸까? 폭도나 하늘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는 영화를 좋아하나?


그렇다고는 대답을 못하겠다.

폭포나 하늘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놓이고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하는데, 영화를 생각하면 일단 신중해진다.

무조건 받아들여지지 않고, 내가 정한 수준이나 방향에 맞는지를 따지게 된다. 말하자면 편식을 하는 거고, 좋게 말해봐야 미식가인 셈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 내가 영화에 욕심이 생기면서부터 나는 영화를 고르기 시작했고 따지기 시작했고 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는 나를 버리지 않았다. 내가 대다수의 영화를 멀리하고 소수의 취향에 맞는 영화만 좋아했어도 영화는 늘 나에게 곁을 내어주었다. 문득, 전혀 예기치 않은 시간에, 내가 보통 ‘결정적 순간’ 혹은 ‘아하 모먼트(Aha Moment)’라고 부르는 순간들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아하 모먼트’는 ‘아하!’ 하는 깨달음의 순간을, ‘결정적 순간’은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 제목에서 유래된 말로 피사체의 형태와 내용이 조화를 이룬 절정의 순간을 뜻하는 말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가끔 특별한 순간을 만나게 된다.

영화의 내용이나 수준과 상관없이 나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고, 놀라운 연기나 촬영이나 음악으로 감동을 주기도 하고, 극적 맥락과 상관없는 어떤 장면이 강력한 에너지로 나를 끌어당기기도 한다.


그런 순간을 만나면 나의 몸과 마음은 순식간에, 벼락을 맞은 듯이 충전이 된다.

몸은 지치고 마음은 짜증으로 가득 차있을 때 우연히 눈이 마주친 친구의 의미 없는 미소가 힘이 되는 것처럼, 비 온 후 우연히 쳐다본 하늘에서 무지개를 봤을 때 번쩍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가끔 영화는 우리에게 벼락같은 재충전의 시간을 제공해 준다.


그런 시간들을 공유하고 싶다.

사실 그런 경험은 말로 설명이 불가능하고 애써 설명해봐야 구차한 껍데기뿐일 수 있겠으나,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어느 순간 불현듯이 동일한 경험이 찾아올 수 있다. 최소한 알고 있는 것이 모르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전문적인 영화 이야기를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냥 차 한잔 하면서, 혹은 가볍게 맥주 한잔 하면서 수다 떨듯이 이런저런 영화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그렇게 가볍게...


우리, 영화 한 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