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의 부탁을 거절했다가 가슴아픈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자기가 준비하는 작품의 시나리오를 써달라는 거였는데, 제 작품도 제대로 못해서 발버둥치던 저는 안된다고 거절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친구가 야속했습니다. 그 친구는 첫작품이 빅 히트를 기록해서 형편이 좋았거든요.
본인이 회사를 차려서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었고, 저 아니어도 시나리오를 쓸 사람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저 혼자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는 양 옆을 가리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다’...
그때 친구가 저에게 한 이야깁니다. 제 욕심에 눈이 멀어 주변을 살피고 도와주고 하지를 못한다는 거지요.
인정합니다.
그렇게 나만 생각하며 20년 넘게 열심히 달렸으나 결국 저는 실패했습니다. 꿈을 다 태워버리고 재만 남았지요. 꿈이 꺼지자, (그동안 한번도 안된다는 생각을 한 적 없었는데) 잿더미뿐인 현실이 보였습니다. 경주마처럼 질주하던 제 인생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아주 조금씩,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옵니다.(이 편지는 그 작은 증거라고 할 수 있지요.)
무얼 어떻게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또 경주마 소리는 듣지 않았으면 합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제가 상처를 주었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늦었지만,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
사랑하는 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아빠한테 엄청난 충격이었어. 쓰나미처럼 아빠의 정신세계를 강타하고 기존의 모든 가치체계와 사고를 흔들어 버렸지.
(솔직히 말해서 아빠와 할아버지는 그렇게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어. 옛날 아빠들이 다 그러하듯이, 할아버지 역시 집안에서 말이 없고 별다른 애정표현을 하지 않으셨으니까. 그래서 아빠도 의외의 충격이 당황스러웠지.)
그리고, 몇 달이 걸려 진정된 후 맞이한 결론은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이었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듯이 할머니도 돌아가실 것이고, 아빠도 죽을 것이고, 엄마 역시 죽을 거야.
그리고 너도 마찬가지지.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니까...
너도 알다시피 할아버지는 건강하셨어. 돌아가시기 전날이 어버이날이어서, 우리 온 가족은 모여 함께 저녁을 먹고 헤어졌잖니.
그리고 일요일, 교회를 다녀오신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정** 힘 내. 내가 있잖아! 화이팅!’ 하고 외치고는 목욕하러 가셨다고 하지. 그게 우리에게 남겨진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어...
인생은 그런 거야. 누구나 언제라도 죽을 수도 있고, 갑자기 눈이 멀 수도 있고, 기억을 잃을 수도 있지. 내일을, 아니 한치 앞도 장담할 수 없는 게 우리 인생인 거야.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지킬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차피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면 지금 이순간 최선을 다해 사는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뭐가 최선일까?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아빠가 너에게 무엇을 하는게 최선일까?
엄마가 출근할 때, 아빠는 왜 엄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복도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을까?
아빠는 멀어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엄마가 하루를 잘 지내기를 기도하지. 즐겁게 지내고 부디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이게 마지막일수도 있으므로, 아빠는 최대한 열심히 엄마를 본다.
내일을 위해 남겨두지 마라! 남겨둔 것은 후회가 되어 돌아온다.
아빠가 좋은 아빠는 물론 아니야. 좋은 아빠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어. 그저 나쁜 아빠는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 정도였지.그러나 막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그마저도 자신이 없었어.
아빠가 없다면, 너는 아빠를 어떻게 기억할까? 나는 너에게 어떤 아빠일까...? 낳고 기르고 가르치는,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하는 일 말고, 정말 너를 위해 해준게 뭐가 있었나?
아...! 있기는 있구나! 딱 하나... 아침마다 네 안경 닦아주는 일! 너보고 닦아서 쓰라고 해봐야 안 닦을게 뻔하니까 그랬던건데, 그것 말고는 널 위해 한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래서, 너에게 뭔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 뭘 할까 궁리하다가 편지를 쓰기 시작했던 거야.
사랑하는 딸!
편지밖에 남겨줄 수 없는 아빠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빠는 돈을 많이 벌지도 못했고, 높은 지위를 얻지도 못했고,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한 것도 없어. 오직 하나,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왔지만 그마저도 이루지 못하고 포기했지.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이후 한번도 바뀐적 없는 아빠의 꿈, 영화감독...!
그러나 현실은 꿈을 허락하지 않았고, 아빠는 영화감독의 꿈 대신 우울증과 패배의식을 가슴에 담았지.
아빠의 경우가 일반적인 건 아니야. 30여년 동안 한가지 꿈을 위해 살다가, 전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한 경우는 매우 드물지.
대개는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이루고 사는데, 아빠는 영화감독을 시작도 못해보고 포기해야 했으니까. 세상 보기를 꿈꾸던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죽은 느낌이라면 이해가 갈까?
예술의 기반은 자기확신이야. ‘내가 옳다’는 확신이 없이는 예술가가 될 수 없어. 아빠는 그 확신을 잃었고, 끝내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완벽한 패배자로 남았지. 그리고 세상과의 단절...
매일 집에만 있는 아빠를 보는 네 기분은 어땠니?
그런 아빠를 보면서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분명히 궁금했을텐데, 속이 깊은 너는 한번도 아빠에게 왜 일하러 나가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지. (아빠는 남들한테 너를 ‘음흉하다’고 말하는데, 이게 사실은 속이 깊다는 말의 아빠식 표현인거 알지?) 혹시 아빠가 상처받을까봐 걱정스러웠겠지.
늦게나마 고맙다고 말할게. 네가 그렇게 물었다면, 뭐라고 대답은 했겠지만 어쨌든 가슴이 아팠을 거야.
아빠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어.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한번도(!) 영화 이외의 일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막상 영화를 포기하고 나니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나지 않았어. 일종의 공황상태인거지.
그리고 우울증...
우울증은 참 고약한 병이야. 심각하게 아프다거나 괴롭거나 그러면 오히려 경계심을 가지니까 덜 위험한데, 우울증은 생각의 병이어서 그런게 없어.
그냥 덤덤하게 ‘아, 더 이상은 살 필요가 없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고, 그 확신이 하도 명료해서 아무 망설임 없이 그냥 자살에 이르게 되는 거야.
우울증에서 벗어나니(그럴 수 있게 도와준 엄마에게 감사를!)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더라.
영화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으로 세상을 살았는데, 그게 없으니 살아갈 동력이 생기지 않는거야.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왜 그렇게 대단하게 보이는지! 각자 나름대로 일을 하면서 먹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정말 기적처럼 보였어. 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데...
아빠는 한번도 돈을 벌기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 돈이란 내가 하고 싶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벌어지는 것이므로 돈 자체를 목적으로 일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지.
솔직히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어.
다행히 엄마가 일을 하니까 아빠가 돈을 벌기 위해 뭐든 하지 않아도 됐지. 그 점 엄마한테 항상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 엄마가 돈을 벌지 않았다면 아빠는 무슨 일이든 해야 했겠지. 우리 세 식구, 먹고 살아야 하니까.
영화는 아빠의 전부였어. 영화를 해서 돈도 벌고, 영화를 해서 명예도 얻고, 영화를 해서 세상에 기여도 하고, 영화를 해서 좋은 남편도 되고, 영화를 해서 좋은 아들도 되고, 영화를 해서 좋은 친구도 되고, 영화를 해서 너한테 좋은 아빠도 되는, 영화는 아빠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쓰는 유일한 도구였지.
아빠가 쓸 줄 아는 유일한 도구를 잃어버리고 나니, 세상에 아빠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어. ‘인간은 사회적 동물’ 이라고 하는데, 아빠는 사회인으로 살아갈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거야.
기본적인 것-- 먹고 입고 자는 것의 위대함을 처음 느꼈지! 내가 무시하고 경멸하기까지 한 그것들이 삶의 기본이구나 생각하니, 먹고 일하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더라!
왜, 아빠가 요리를 배우겠다고 법석을 피우던 때가 있었잖아?요리는 사람이 배워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 중의 하나라고 (지금도) 생각해. 요리를 못하는 아빠는 사람으로서의 기본이 안되어 있었던 거고, 그래서 요리를 배우겠다고 책도 보고 네 간식도 해가면서 소란을 피웠지.
그렇게 막 새로운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중에 맞이한 할아버지의 죽음...!
긴 얘기가 됐는데,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볼까?
아빠는 영화감독이 유일한 꿈이었는데 실패했고, 그 결과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영원한 것은 없다.
어차피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면 지금 이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얻은 결론... 지금 나의 최선은 사랑하는 딸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딸!
또 하루가 가고 새 날이 온다.
엄마와 너는 곤히 잠자고, 아빠는 사랑하는 두 사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이 글을 쓴다.
고마운 사람들...!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줄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사랑할 수 있어서, 줄 수 있어서 아빠는 행복하다!
영화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니... 이건 정말, 기적이다!!!
앞으로는 기적의 사나이라고 불리고픈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