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6
존재와 본질 사이의 멀미, 시큼한 구토증을 표현하다.
앙투안 로캉탱은 방황한다. 드 로르봉에 관한 책을 저술하기로 한 4년간 그는 부빌에 머물렀지만 그의 행적이 기이했기에 확실하게 단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물을 바라보는 순간에 무엇인가 석연치 않음을 느낀다. 사물은 그 사물로 존재하기 이전에도 그 본질적으로 그 형태, 쓰임으로서 사물인가. 그 특유의 이인증(離人症)을 느끼는 순간 로캉탱은 사물이 사물로 다가서기 이전의 괴물 같은 무엇을 바라보고 구역질이 치밀었다. 한 사물을 오랫동안 응시하며 면밀하게 관찰해 본 적 있는 사람은 분명하게 알 것이다. 이 쓰임과 필요, 용도가 시야에서 와해되고 하나의 뭉뚝하고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낯선 물체가 놓여있는 경험이 그것이다. 만일 그런 적이 없다면 당장에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5분 이상 바라보는 순간에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로캉탱은 그곳에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사물 그 자체(칸트 식으로는 ‘물자체(物自體 ding an sich)’를 뚫어보는 이는 드물다. 그는 그러한 점에서 존재를 통찰력 있게 바라본 인물이라 여겨진다. 아마 이는 사르트르 본인이 사물을 바라보고 구체화한 방식일 것이다. 그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은 사람에게도 가닿는다. 인격을 갖춘 사람은 당장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에 익숙해 있고 이를 단정적으로 판독하기까지 하는데, 그야 그러한 취급이 체력적으로 덜 소모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존재 자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로 독서광인 오지에가 도서관에서 수모를 당하고 있는 와중에 로캉탱은 격분하여 일어서는 까닭이 된다. 오지에는 포로생활을 했던 휴머니스트이지만 ‘인간이 있다. 인간을 사랑해야한다’는 그의 주장은 로캉탱에게 허망한 울림으로 가닿았으며 이들의 생각의 차이는 서로 다투는 계기가 되었다. 로캉탱에게 ‘인간’은 없다. 오로지 그 개인이 있을 뿐이다. 인간이라는 범적으로 포괄하는 거창한 단어를 그는 알고 있지 못하다. 고로 그는 모든 인간을 사랑해야한다는 박애주의적 관점에서 또한 심한 구토증을 느끼고야 만다. 대저 ‘모든’ 인간을 알고 있는 개인은 없기 때문이다. 또 모든 인간을 알더라도 그 인간들을 하나로 묶어 말하는 것이 얼마나 광포한 짓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