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떠나기 1일전,
[D-01] 여행 자금 모으기 그리고, 약간의 내 이야기
처음 여행을 결심한 것은 열일곱살 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까지 그로부터 약 8년이 걸렸다.
나는 자그마한 동네에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보냈다. 그래서 동네친구들이 다 같은 유치원, 같은 초등학교, 같은 중학교를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공부를 곧잘했다. 칭찬받는것이 좋아서 나름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비평준화 지역이었기에 우리는 고등학교에 가려면 시험을 봐야 했는데, 난 조금 욕심이 났다. 이 작은 동네를 벗어나 좀 더 큰 세상에서 공부를 해보자.
그래서 집에서 한시간이나 떨어진 나름 '도시'에 있는 지역에서 좀 유명했던 고등학교를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난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공부를 비롯해 뭐든지 뛰어나게 잘하는 영리한 아이들, 처음 들어간 교실엔 아는 친구 한명 없던 낯설음에 난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난 공부에 손을 놓았다.' 어차피 해도 안되는데' 라는 생각에 매일 보충수업과 야자를 빠지고 집에 왔다. 수업 중간에 나가 길거리를 배회한 적도 있다. 그냥 그 좁은 공간과, 삭막한 공기, 경쟁으로 과열된 그곳은 너무 답답했고,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다.
하지만 고2때 학교에서 특이하게 세계지리라는 수업이 있었는데, 그 때 난 처음으로 세상이 정말 넓다는 생각을 했다. 지리부도를 폈을 때 보이는 수많은 나라들과, 넓은 땅, 광활한 바다가 이상하게 나를 설레게 했다. 그 갑갑한 공간에서 지리부도책은 어쩌면 나의 유일한 숨쉴 구멍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때부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신기한 나라 이름 외우기에 나의 그 소중한 시간들을 쏟았다.
그렇게 삼년을 보낸 난 첫번째 입시에서 실패하고, 재수를 했서 간신히 대학에 들어왔다.
대학생이 되면 바로 떠나고 싶었지만, 그때 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성실하지 못했던 고등학교 3년과 재수 1년의 시간을 지나왔고 돈도 신뢰도 난 사실 그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여행을 떠나겠다고 어리광만 부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꽤 오랜시간 준비를 했던 것 같다.
주변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일단 내 앞에 놓인 학교생활과 여러 대외 활동들을 열심히 했다. 이때 학교 영자신문사에서 일을 했었는데 그때 약간의 돈을 모았다.
그리고 본격적인 자금을 모으기 위해 3학년 1학기가 끝나고 휴학을 한 뒤, 이태원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메니저로 7개월정도 일을 했다.
그런 뒤 올해 1월 엄마와 한달동안 인도여행을 하면서, 조심한다면 혼자서도 배낭여행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엄마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학기 학교생활을 했다. 다음 학기 다시 휴학을 하고 여행을 떠나려면 여행을 다녀와서 내 앞에 놓일 취업준비와 졸업작품에 대한 대책을 세워 놓아야 했다.
복수전공을 신청해 놓았지만 9학점밖에 들어놓지 않은 상황이었고, 혹시 모를 조기졸업을 대비하기 위해 최대한의 학점인 24학점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장학금이었는데, 다시 학교에 돌아왔을 때, 500만원이라는 큰 돈을 내고 학교를 다닐 수는 없었다.
사실 자랑을 좀 하자면 대학에 들어와서 계속해서 장학금을 받았다.
하지만 장학금은 나에게 있어 그저 단순히 잘했다는 칭찬을 받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장학금은 과거의 너무나 길었던 방황때문에 놓쳐버린 나의 시간들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이었다.
그 시절, 잘 해내지 못했다는 것보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그 사실이 너무 화가 났다.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뭐라도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텐데
난 좀처럼 권태로움과 우울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기에 장학금은 되돌릴수 없는 나의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바닥을 치던 나에 대한 신뢰감을 처음으로 올려주던 원천이었다.
전액 장학금을 받으려면 성적과 영어성적, 봉사시간, 제2외국어나 자격증이 필요 했다. 그 전 학기 장학금을 받는데 썼던 자격증이나 봉사시간, 영어점수들은 다시
쓸 수 없었기에 그것들을 다시 다 해야만 했다.
그래서 지난학기 정말 정신없이 학교를 다녔다. 새벽에 토익학원을 갔고, 24학점을 다 채우기 위해 매일 매일 학교수업을 꽉 차게 들었다. 그리고 모스자격증과 국어능력시험을 준비 했고, 여기저기 다니며 봉시활동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5개월을 보냈고 다행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내년이면 4학년이고 졸업작품을 해야하는데 그 수업은 1학기밖에 없기 때문에 내년 1학기엔 무조건 학교에 가야 했다. 그리고 모아놓은 돈과 나이를 생각했을 땐 원래의 목표인 1년을 다 여행 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약 6개월 정도 여행하고 내년 2월에 한국에 다시 들어오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내 자금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한 것과, 이것 저것 해서 내가 모은 돈 1000만원,
여행전 한달정도 아빠 일을 약간 도와주면서 받게된 100만원,
비행기같은 경우는 장학금을 받은 대신 엄마가 지원해주시기로 했다.(150만원)
그래서 총 1250만원 정도가 모였다.
아무튼 이 약간의 내 이야기에서 내가 하고싶은 말은 '하면 되더라.'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항상 무언가를 마음속에 새기고 있으면 언젠간 정말 하게 되는 것 같다.
4년 전 대학에 입학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난 정말 가진게 없었다.
엄마 아빠도 나의 여행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만큼 난 누군가에게 신뢰나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하나 작은 것들부터 노력하다보니 이만큼이나 와있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말하지만 난 이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꼭, 반드시 얻어오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단순히 여행 준비뿐만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참 많이 성장했으니깐.
여행 자체도 참 좋은 것이고, 떠나려면 어느정도의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것만큼 참아낼 수 있는 용기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산다는 것이 꼭 모든 것을 내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에 책임이 따른다는 말처럼,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 자신을 잘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큼 멋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여행을 떠나기 전, 묵묵히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큰 시험을 준비하며 나가고 싶은 욕망을 참아가며 꿋꿋이 공부하고 있는 친구
빡세다는 패션회사 신입사원 시기를 묵묵히 견뎌내며 일을 배워가는 친구
벌써 백개의 자기소개서를 썼지만, 안되면 될때까지 써볼꺼라 웃으며 말하던 친구
다들 마음속은 복잡하고 힘들겠지만 잘 다녀오라며 응원해 주었다.
이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면 나 역시도 또 다시 많은 것들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견디는 시기에 지금 열심히 견뎌내고 있는 친구들 역시 어딘가로 떠나게 될 것이다.
그때 나도 진심을 다해 응원해주고 싶다. 지금 잘 견뎌내고 있는 참 예쁘고 소중한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