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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원 Apr 26. 2024

만난 지 3375일, 같이 산지 1511일

2024년 4월 26일 금요일

처음 만난 지 어느덧 9년이 지났고, 본격적으로 너와 나 둘이 함께 살기 시작한 지는 4년이 지났다.

이렇게 숫자로 적어두고 되뇌고 있자니 시간이 언제 이렇게나 됐나 싶을 만큼 지나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 어느새 내가 나이를 먹듯, 너도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 나보다 좀 더 빨리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일상에서 미처 생각지 못하곤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누군가 나에게 네가 몇 살인가를 물으면 그제야 나는 잠시 멈칫하며 너의 나이를 생각한다.

9살 난 나의 작고 따뜻한 회색 가족 베리.


"9살..?"이라고 대답을 하면 어느새 질문한 사람도 대답한 사람도 은근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질문한 사람은 그렇다 치고 대답한 사람도 놀라는 이유는 아마도 일상에 늘 함께 네가 있었기에 미처 깨닫지 못한 시간이 질문자에 의해 숫자로 적나라하게 다가왔기 때문일 거다.


고양이가 9살이면 사람 나이로는 50대 초중반쯤 된다고 하니 어느덧 어엿한 중년의 고양이인데 하는 행동은 아직도 철없는 애기와 다를 바가 없으니 9살이 아니라 90살이 되어도 여전히 같아주겠지. (물론 90살까진 나도 힘들겠지만...)


2024년 4월 26일 금요일의 밤, 이렇게 갑작스레 두서도 없고 문맥도 없으며 딱히 이렇다 할 내용도 없을지 모를 글을 써나가고 있는 건 그냥 베리와 함께하는 일상을 기록해보고 싶어서다.

어느새 서로의 얼마나 더 이어질지 모를 삶 속에 9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냈으니 나에겐 1/3이 조금 못 미치는, 베리에겐 거의 한평생일 시간을 함께했다.


하루하루 당연하게 함께하고 있지만 인생도 묘생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짧든 길든 그저 하루하루 적어보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글을 써보려고 한참을 골똘히 앉아있다가 베리 뒷발에 손가락을 긁혔다.

보통 뒷발에 긁히는 일은 별로 없는데 무릎 위로 제 나름의 자세를 잡고 버티는 통에 서로가 편한 자세를 잡으려다 일어난 참사였다.


긁힌 것도 참 드물게 손가락 안쪽 정확히 마디 사이였다. 오늘은 이래저래 드문 것들이 모여 하루를 지탱하는 날인가 보다.


끝내 피를 보았으나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발톱을 너무 오래 안 깎아줬나..?'였다. 집사 된 숙명으로 제대로 케어하지 못한 책임이지 누굴 탓할까. 자연스레 곁에 있던 소독약을 뿌리고 밴드를 감았다.


피 튀기는 전쟁 후(?) 맥주 한잔에 치즈, 살라미를 곁들이는 내 안주를 방금 전에 밥을 먹고도 호시탐탐 노리며 기회를 엿보던 베리는 몇 차례 슬그머니 손을 뻗었다.

나도 나름의 휴식을 위해 맥주와 선물 받은 플래터 세트를 간단히 차려온 메뉴였다.


손가락을 긁고, 금지된 간식 탈환에 실패한 회색의 고양이는 아무 일도 없던 듯 또 다른 의자에 앉아 자리를 잡고 편안히 누워있었다.


나의 오늘은 일전의 일정들로 지쳤는지 급격한 무기력이 잔뜩 덮쳐온 하루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저 멍하니 있어보자 라는 마음으로 애써 가다듬어보는 중이었다.

그러다 베트맨 같은 뒷모습으로 저녁식사를 기다리는 베리를 보며 이런 글을 남기자는 생각까지 왔으니 그저 무기려하고 무의미한 하루는 아니었구나 안도의 숨을 내쉬어본다.

빨간색 피도 스쳤지만 그럼에도 회색은 오늘 하루 여전히 따뜻하고, 귀엽고, 건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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