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208편의 영화 평론집 (저자 이동진/위즈덤하우스)
초창기의 영화는 돈 있는 자들의 소비문화였다. 상류층의 귀족들이 식사 시간에 클래식 연주를 들었던 것처럼 영화 역시 그랬다. 전 세계에 몇 개 없는 영화관을 찾아 몇 시간을 이동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돈 많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매체였다. 필름값이 비쌌기에 영화 제작자 역시 자본을 가진 사람의 몫이었다. 때문에 한 편의 영화를 찍을 때 최소한 본전은 건져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하여 러닝타임이 4-5시간이 넘는 영화들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모습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헐리웃을 시작으로 대형 자본이 유입되면서 영화 제작이 활발해지고,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누구나 큰 어려움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영화 한 편 당 적게는 8천 원에서 많게는 만 이천 원~만 오천 원 사이의 돈을 지불하는데, 따져보면 연극이나 뮤지컬보다 티켓값이 저렴한 편이다. 생활권 안에 영화관이 서너 개쯤 자리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영화 보기'라는 답변을 내놓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영화를 관람하는 공간이 극장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VOD 혹은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며 '안방 1열'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수도 상당하다. 한마디로 영화라는 매체를 접하고 소비하는 진입장벽 자체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그만큼 영화에 대해 논하기도 쉬워졌다. 전문지식 없이도 마치 자신이 전문가인 양 떠들어대는 자들도 있고, 반면 늘 시원시원한 해설로 관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영화평론가도 있는데 그중의 하나, 이동진 씨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되시겠다.
이 책의 저자 이동진은 '영화 평론계의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르는 만큼 국내 영화 평론가 중에서도 많은 팬덤과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다. 이유인즉 '믿고 보는 이동진 평' 때문인데, 영화를 보며 잘 이해되지 않던 인물의 갈등 구조나 플롯 등도 그가 풀어내는 해설을 통해 궁금증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동안 네이버 블로그, 다음 브런치는 물론이고 CGV 라이브 톡, B tv 영화당, 팟캐스트 빨간 책방 등 여러 채널에서 그의 영화 평론을 듣고 볼 수 있었지만 따로 평론집이 발간되지 않았기에 이번 신간 출시 소식은 더욱 반가웠다. 지난 9월 초 예판을 시작하여 그달 말 바로 받아볼 수 있었는데 엄청난 두께에 한번 놀랐고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누드 사철 제본에 두 번 놀랐다. 1999년 <벨벳 골드마인>을 시작으로 2019년 <기생충>까지 20년 동안 써온 평론은 208편의 영화에 달한다.
내지 구성과 글이 참 깔끔하다. 내가 그동안 이동진의 평을 사랑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영화에 대한 본인의 주관적인 생각을 최대한 배제하며 이야기한다는 것. 여러 매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영화 리뷰들을 보면 없어도 될 개인적인 견해가 많아 불편했던 경우가 종종 있다. 그에 비해 이동진이 풀어내는 영화 글들은 항상 객관적인 톤앤매너를 유지한다. '~것 같다.', '~라고 생각한다'라는 식의 문체도 지양하는데, 그것이 곧 그가 영화를 대하는 마음과 같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조심스레 해본다.
한 편의 영화에 대한 해석은 자유다. GV와 같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님께서 의도한 바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반대로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하는 질문이 돌아오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영화는 이것을 소비하는 관객마다 각자의 여러 가지 배경지식 등 크고 작은 생각의 자유와 많은 여지를 남기는 종합예술이다. 하지만 씨네21의 주성철 편집장의 저서 『영화기자의 글쓰기 수업』 에서도 말하고 있듯 '영화평론가'는 일반적인 '관객'이 아니라고 한다. 영화를 보며 제작자의 온전한 기획 의도를 파악해 그것을 글로 남기는 일종의 '전달자'의 역할이 필요한 직업이라고 했는데, 나 또한 같은 생각이다. 이에 가장 적합한 행보를 보여주는 게 바로 이동진이 아닐까. 그가 쓴 평론을 다시금 읽으며 공감한다.
영화를 내 삶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던 극적인 순간 같은 것은 내 어린 날들에 없었다. 그렇지만 영화는 내게 정확히 찾아왔고 나는 그런 영화와 오랜 세월 곡진하게 동행했다. 나는 삶을 살고, 영화로 삶을 다시 한번 산다. 나는 영화를 만져보고 싶다.
-책의 서문 중에서
영음소녀 네이버 포스트를 통해 2019.10.21 업로드 된 글입니다.
해당 원고를 옮기는 과정에서는, 브런치 측에서 제공하는 맞춤법 검사 툴로 오탈자만 새로이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