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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본드의 서사를 담고 있는 역대 <007> OST

"Goldfinger"부터 "No Time to Die"까지

by 플레이

이 영화의 역사는 58년째 굳건히 쓰여지고 있다. 이언 플레밍의 소설을 원작으로 1962년 처음 스크린에 선보인 후 많은 주연배우 교체를 지나 올해 곧 개봉 예정인 <No Time to Die>에 이르기까지. 누적 관객 수, OST 판매량 등 매번 타이틀을 새롭게 장식하는 기록도 참 각양각색이다.


그도 그럴 것이 007은 시리즈물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와 대체 불가 캐릭터, 그리고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주제가까지 시그니처가 많아도 너무 많다. 때문에 현 코로나 사태로 개봉이 지연된 헐리웃발 영화 중 가장 큰 아쉬움을 샀으리라 짐작된다.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한 역대 007 시리즈의 주제가와, 빌리 아일리시 특유의 퇴폐미로 분위기의 정점을 찍은 이번 <No Time to Die>의 주제가까지 모두 모아봤으니 각각 비교해서 들어보자.





* 필자의 선호곡을 바탕으로, 모든 수록곡을 리뷰하지는 않았습니다.
* 이해를 돕기 위해 영상은 오프닝 시퀀스와 뮤직비디오로 첨부하였습니다.
* 해당 주제가는 'James Bond Original Main Theme'를 제외한 송타이틀로만 선별했습니다.

* 곡 제목과 본문 텍스트에 다수의 유튜브 링크를 첨부하였습니다.




<007 골드 핑거> (1964)
Shirley Bassey - "Goldf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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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번호> 이후 세 번째 시리즈인 <골드 핑거>의 송타이틀은 대영제국 훈장 3등급을 보유하고 있는 영국 웨일스가 낳은 최고의 디바 셸리 배시가 불렀다. 특유의 힘찬 발성과, 'James Bond Original Main Theme' 속 가장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브라스 선율과 섹션을 이 곡에 그대로 가져다 넣었기 때문에 많은 호평을 얻었다. 아쉽게도 아카데미 주제가상은 수상하지 못했지만 그래미상 명예 전당에 올랐고 덕분에 셸리 배시는 <골드 핑거>를 시작으로 다음 시리즈인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문레이커>의 송타이틀도 부르게 되었다. <골드 핑거> 제작 이전 시리즈인 <살인번호>와 <위기일발>에서는 송타이틀이 없었고 모든 수록곡이 스코어였기 때문에, 시리즈의 소제목과 송타이틀의 곡 제목이 일치하는 007만의 전통이 이 곡으로부터 태동되었음을 알 수 있다.




<007 죽느냐 사느냐> (1964)
Paul McCartney & Wings - "Live and Let Die"

비틀즈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심심치 않게 봐왔던 이 곡이 사실 007 OST였다는 것을 알고 조금 당황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폴 매카트니와 린다 매카트니가 함께 쓴 곡으로 녹음은 비틀즈 해체 후 폴 매카트니가 결성한 밴드 윙스가 맡았다. 당시 빌보드 ‘HOT 100’ 2위와 영국 싱글 차트 9위에까지 올랐고, 건즈 앤 로지스가 부른 버전은 그래미상 후보에 따로 오를 정도로 당시 이 곡의 인기는 대단했다. 폴 매카트니는 이전부터 제임스 본드 영화의 주제곡을 만들고 싶다는 입장을 여러 번 밝혔을 정도로 007 대한 애정이 남달랐는데, 이 소식이 여러 사람에 거쳐 마침내 007의 프로듀서였던 해리 샐츠먼의 귀에 들어갔고 제작사 측은 상대가 비틀즈의 전 멤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곡의 분위기가 다른 송타이틀에 비해 무겁지가 않은 편인데, 초창기 제임스 본드 캐릭터의 이미지가 ‘많은 여자들을 쉽게 꼬셔내는 천재 바람둥이 비밀 요원’라는 점을 고려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007 뷰 투 어 킬> (1985)
Duran Duran - "A View To A 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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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스 팝으로 1980년대 유행의 선두에 있었던 아이돌급 밴드 듀란 듀란과 'James Bond Original Main Theme'를 쓴 음악감독 존 배리가 함께 작업한 곡으로, 런던의 Maison Rouge Studio에서 녹음했다고 한다. 신스 팝 특유의 섹션에 기타와 베이스 라인과 사운드는 영화의 OST라기보다는 듀란 듀란을 그대로 투영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개봉과 동시에 빌보드 영국 싱글 차트에서 3주 동안 부동의 2위를 차지했다.




<007 어나더 데이> (2002)
Madonna - "Die Another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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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ctroclash'라는 장르가 영화음악판에 처음 등장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오케스트라 기반의 전통적인 OST 사운드에서 벗어난 팝 비트와 FX, 그리고 마돈나라는 스타의 네임밸류까지 비평가들은 열심히 떠들어댔고,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린 실험적인 곡이다. 안타깝게도 역대 007 시리즈 중 가장 망작으로 꼽히는 <어나더 데이>인지라 마돈나 버전의 뮤직비디오만 흥행했다.




<007 카지노 로얄> (2006)
Chris Cornell - "You Know My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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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시리즈에 가장 어울리면서도 제임스 본드스러운 면모를 가지고 있는 곡을 뽑자면 아마 필자는 망설임 없이 이 곡을 먼저 언급할 것이다. 흡사 마이클 볼튼을 떠올리게 하는 시원한 음색을 소유한 이 곡의 주인공은 미국의 기타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인 크리스 코넬이다. 거칠게만 느껴지는 일렉기타 사운드에 부드러운 현악기군이 함께 어우러져 시리즈의 서사에 한층 격을 올렸고, 새틀라이트 상 주제가상까지 수상했다. 멜로디와 기타 선율을 자세히 들어보면 이 곡 역시 다른 곡들처럼 ‘James Bond Original Main Theme’를 표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작 전부터 본드의 세대교체로 혹평을 받았던 다니엘 크레이그의 첫 등판 시리즈에 ‘You Know My Name’ 이란 곡 제목은 마치 그간의 많은 논란을 단번에 압살 해버리는 듯한 배포가 느껴진다.




<007 퀀텀 오브 솔러스> (2008)
Jack White & Alicia Keys - "Another Way to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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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잭 화이트가 즐겨 쓰던 기타 톤과 앨리샤 키스의 피아노 연주가 007이라는 영화에 절묘하게 섞여 들어 환상적인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두 아티스트가 가진 색감과 간주에서 들리는 007 특유의 브라스 선율까지, 이 세 가지의 조미료가 각각 느껴지면서도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밸런스에 필자는 이 곡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런 역대급 콜라보가 또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크레딧 외에 아티스트 버전 뮤직비디오가 따로 제작했으며, 이는 그래미상 최우수 뮤직비디오 후보에 올랐다.




<007 스카이폴> (2012)
Adele - "Sky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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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본드 탄생 50주년과, OST 제작에 아델이 참여한다는 소식이 맞물려 크랭크인 전부터 많은 화제를 몰고 다녔던 <스카이폴>. 극 중 나이 든 본드의 쓸쓸함과 본인이 존재하는 이유, 즉 정체성을 찾는 여정 때문에 역대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 곡 역시 007의 명성에 한몫을 제대로 해냈다. 아델이 직접 가사를 썼고 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당당히 주제가상을 차지했다. 다른 송타이틀에 비해 가장 많은 커버 영상을 유튜브에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아델의 파워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007 스펙터> (2015)
Sam Smith - "Writing’s On the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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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던 곡들의 가사에서 알 수 있듯 007의 송타이틀은 해당 시리즈의 대략적인 스토리를 가사에 담고 있다. 때문에 작사가의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는데, 아델에게 바통을 물려받은 샘 스미스가 이를 적극 수용하여 잘 해낸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For you I have to risk it all, Cause the writing’s on the wall”라는 가사는 영화를 본 많은 팬들에게서 탄성을 자아냈다.(네, 그중에 하나가 저예요.) 덕후들에게 엄청난 떡밥으로 다가온 해석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첫 번째는 영화 후반부 납치된 매들린 스완(레아 세이두)을 구하는 과정에서 알 수 있다. 빌런인 오버하우저(크리스토프 발츠)가 제임스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벽에 이름을 크게 써놓은 것을 발견하는 대목이다. 두 번째는 ‘Writing’s on The Wall’이라는 표현의 유래 때문인데, 성서에서 말하길 과거 바빌론에서는 종말을 예언하는 글귀를 벽에 써 내려갔고 이것이 오늘날 불행의 전조를 나타내는 어구로 쓰인다는 것이다. 샘 스미스는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 각각 주제가상을 받았다.




<007 노 타임 투 다이> (2020)
Billie Eilish - "No Time to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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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일까. 개봉이 무기한으로 연기된 시점에서 빌리 아일리시의 송타이틀이 먼저 공개됐는데 개인적으로 역대 007 송타이틀 중 가장 와 닿지 않는 곡이라 매우 안타까웠다. <노 타임 투 다이>의 스토리와 결말이 공개되지 않은지라 가사는 둘째 치고, 간주에서 하강하는 스트링 라인이 너무 촌스러워 두 번 세 번 듣기가 민망할 정도다. 아마도 작곡가인 피니어스 오코넬이 스코어 작업을 많이 해보지 않은 터라 편곡이 어색했던 게 아닐까.(차라리 한스 짐머한테 송타이틀도 쓰라고 하지 그랬어요...) 빌리 아일리시 특유의 뭉개는 딕션도 오히려 반감이 느껴진다. MGM의 선택이 빌리 아일리시의 팬들만 흡족해하는 결과가 아니기를, 하루라도 빨리 영화가 개봉해 극장에서 크레딧 속 이 곡을 들으며 전율을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영음소녀 네이버 포스트를 통해 2020.04.29 업로드된 글입니다.

해당 원고를 옮기는 과정에서는, 브런치 측에서 제공하는 맞춤법 검사 툴로 오탈자만 새로이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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