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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 Apr 04. 2024

내 인생을 살리러 온 구원자, 홈 퍼니싱

Part 5. 브랜드 : 날 가져요 이케아!



     엄마는 종종 기분 전환 겸 집안의 가구 배치를 바꾸곤 한다. 이제는 나이를 생각하셔야지, 힘들 게 혼자서 뭘 자꾸 옮기냐며 3박 4일 급의 잔소리를 이틀 전에도 또 늘어놓았지만 애석하게도 환갑이 넘은 엄마의 에너지는 서른셋 인 나보다도 늘 앞서있다.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우면 시작되는 그녀의 러브하우스 대작전은 미용실 한편에 자리 잡은 여성지에 실린 리폼 기사로부터 시작됐다. 예를 들자면 그런 것이다. 90년대 후반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중반까지 전국을 뒤흔들었던 체리색 몰딩 혹은 옥색 수납장과 같이 유행이 지나 흐린 눈으로도 보기 싫지만, 그렇다고 집 전체를 뜯어고치자니 너무도 대 공사라 그냥저냥 참고 살아야 하는 것들을 간단한 리폼으로 재탄생시키는 빛과 소금 솔루션! 손재주가 많다 못해 부캐를 한 스무 개쯤 가지고 있는 엄마는 지면을 오려 스크랩까지 하는 열정을 보여주더니, 마침내 내 방과 거실 인테리어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정권이 두어 번 바뀌는 동안 내 방구석을 지키던 검은색 책상은 흰색 시트지를 만난 후 가구 공장에서 갓 출고한 듯 새 생명을 얻었고, 책상과 멀리 떨어지지 못하던 책장은 세로가 아닌 가로로 돌려 눕힌 후 과감히 침대 옆으로 이동을 했다. 귀가 후 처음 방 문을 열었을 땐 생소한 이 배치가 와닿지 않았으나 그날 밤 나는 각종 세계관을 타고 문학 여행을 떠났다. 책이 가까이 있으니 야독이 시작된 것이다. 아니 서사를, 그것도 누워서 파밍 하면 얼마나 좋게요? 그제야 온전히 다가온 나만의 서가는 파티션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었다. 엄마의 말, 아니 “엄마의 스크랩북 속 기사”에 따르면, 구획을 조금씩 나누어 연출하는 것이 작은 평수의 공간을 조금 더 넓게 쓰는 방법이란다. 삶의 질이 한순간에 두 단계쯤 오른 딸내미는 챙겨주는 ‘방 꾸밈’을 쑥쑥 먹고 자라다 훗날 홈 퍼니싱이라는 대하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성장했다.(자 이쯤 되니 굳이 스포일러를 하지 않아도 예측 가능한 결말이지 않은가? 이 캐릭터에게 사건의 발단은 여기까지고, 전개는 광명에서 고양으로, 쇼룸에서 터질 뻔한 허리 디스크의 위기를 지나 절정과 결말은 아직 오지 않았다!)





     2015년, 모녀는 소비 유목민 여정을 마무리했다. 원하는 가격대와 내구성, 디자인적 취향, 그리고 쓰임의 목적까지. 이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단 하나의 브랜드를 드디어 만난 것이다. “이건 운명이 분명!”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도로를 기점으로 광명역 일대까지 길게 늘어선 차량들 사이에서 엄마는 찰진 라임을 보여 줬다. 그간 우리의 영혼을 반쪽만 채운 브랜드가 통장을 꽤 자주 스쳐갔으니 하는 말이었다. 분기별로 엄마를 끙끙거리게 만들었던 일룸과 한샘은 적정 예산 이상이었고, 무지 호텔을 가겠다며 내게 여행 적금까지 가입하게 만든 무인양품은 심플한 매력을 장착했지만 그에 비해 나는 너무 맥시멀리스트라 어딘지 모르게 상충하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네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쇼룸을 구석구석 핥.. 아니 훑다 체력이 방전됐고, 운전기사를 자처했던 아빠는 그 후 한동안 이케아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DIY 방식으로 소비를 독려하는 브랜드는 이케아 이전에도 여럿 있었다. 직접 노동을 함으로써 결과물에 애착이 생기게끔 만드는 ‘셀프 조립’은 내가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만족감을 주지만, 매 순간이 다 그렇진 않다. 도구를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 또 반만 부지런하고 반은 게으른 내 안의 두 자아가 싸워야 하는 갈등이 있는데, 텍스트 하나 없는 참 직관적인 설명서를 보고 있으면 마음속 대적은 이내 사라진다. 스웨덴에서 온 파랗고 노란 괴물은 내 손에 딱 맞는 조립 도구를 쥐어주고, 15분 이내로 작업을 끝내게 만들었다. 큰 오차 없이 꼭 들어맞을 때의 그 쾌감이란! 이케아는 변태가 분명하다.   


계산대 옆에 있는 자원 순환 허브. 쓰던 제품을 다시 이케아로 가져오면 검수한 뒤 일정 금액을 돌려주는 바이백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렇게 다시 매장으로 들어온 제품은 할인된 가격으로 다른 주인을 기다린다. 


서랍 두 개를 사서 이렇게 믹스할 수 있다니! 이케아의 시그니처 컬러인 파란색과 노란색 조합은 어떨까 잠시 상상했다. 





     내가 홀린 이케아의 브랜드 철학은 간접과 직접의 적절한 티키타카이다. 이케아는 A와 조합이 가능한 아이템은 반드시 B가 아니라 C 혹은 D 일 수도 있다는 ‘열린 결말’을 쇼룸에서 간접적으로 암시한다. 이걸 보고 영감을 얻은 소비자는 실제로 해당 제품을 사가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용하는데, 이케아는 그 이야기를 기획부터 제작, 발행에 이르기까지 무려 18개월이 걸리는 매거진식 카탈로그에 담아 배포한다. 그리고 입구에서 카탈로그를 보고 설득당한 나는 이 무한 디깅의 굴레에 합류한다. 이때 순서는 다시 쇼룸-홈퍼니싱 액세서리 코너. 부피가 큰 가구는 계산대로 나가기 전 창고 형태로 된 코너에서 ‘직접’ 픽업! 


     디깅의 포인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반적인 가구 브랜드는 쓰임새의 라인업이 꽤나 명확한 편인데(가정이면 가정, 상공간이면 상공간) 이케아는 그 경계를 허문다. 국민 선반이라 불리는 ‘레르베리’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취생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음은 물론 동시에 카페나 도서관, PC방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생활 잡동사니 대신 원두와 MD, 그 어떤 것을 올려 두어도 이질감이 없게끔 만든 디자인이다. 이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한 나는 다시 매장으로..


현재 살고 있는 집은 고양점과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재택근무를 핑계 삼아 평일 오전 노트북만 들고 와서 바짝 일을 한 뒤 오후엔 쇼룸을 둘러보며 머리를 환기시키는 날이 많았다. 진열된 제품들에서 다음 주에 발행할 홍보물의 컬러를 슬쩍 카피하기도, 언젠가 퇴사를 하면 먹고 살 공간 촬영 연습을 하기도 했었다. 쇼룸은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구나. 




     이케아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위기가 있었다. 디스크가 터진 적은 없지만 허리 근육이 남들보다 약한지라 평소에 관리를 잘해줘야 하는데, 며칠 폼롤러와 인사하지 않았더니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이다. 침과 마사지로 심폐 소생술을 이어가던 어느 날, 외출을 자제하며 방 안을 보고 있으니 하필 오래된 스탠드가 눈에 들어왔다. 아.. 저걸 바꿔? 말어? 파스와 보호대로 무장한 환자는 기어이 도내동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게 조심조심 걷고 반드시 필요한 것만 구매해 장바구니를 가볍게 채웠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셀프 계산대에서 리더기를 집으려는 순간! 뜨끔 하는 고통이 다시 한번 찾아왔고, 나의 허리 근육은 그대로 긴 안녕을 고했다. 남편이 데리러 오지 않았으면 엉엉 울면서 응급실에 실려갔겠지..?


얼마 전 남편과 거실을 작업실처럼 꾸미자는 작당모의를 했다. 책상을 두 개 놓고도 공간을 넓게 쓰고 싶어서 서랍은 곁에 두지 않고 작은방으로 보냈다. 대신 페그 보드를 두 개 사서 가까이 두고 쓸 최소한의 물건만 매달았다. 누가 옆에 있는 게 신경이 쓰여 혹시라도 곤두서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둘 사이를 갈라놓은 페그 보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역시 파티션이 집중력을 더해준다니까!


웁헤타는 블랙이 스테디 컬러이지만 가끔 다른 컬러도 볼 수 있다. 재작년 여름 민트 컬러가 출시됐을 때 이미 샀는데 이걸 어쩐담.. 이럴 땐 선물하기에 제격이다. 곧 나오와 디그다의 집으로 하나씩 배송이 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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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에디터와 번역가, 남에게 취향을 팔기보단 매번 본인이 사기만 하는 전직 마케터가 풀어내는 디깅의, 디깅에 의한, 디깅을 위한 에세이. 디깅을 처음 시작하는 분, 다수가 인정하는 프로 덕질러, 이 장르 저 장르 최애는 없고 차애만 가득한 우리 옆집 사는 분까지 두루두루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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