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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상념

냉면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냉면 상념     




한때는 짧고 굵게 살고 싶었다.

세상이라는 화선지에 뜨거운 피를 뿌려 한 획을 긋고 싶었다


면발은 한 젓가락에 잡히건만

세상은 두 손으로 잡으려 해도 빠져나간다


너는 식감도 좋아 목 넘김이 부드럽건만

인생은 걸리적거리는 것이 이토록 많단 말인가.


언제부터인가 나도 면발처럼 가늘고 길게 살고 있다.

하지만 겨자처럼 톡 쏘는 맛을 내지도 못했다.

벌컥벌컥 들이켜는 육수만큼 땀 흘리지도 못했다.

오이나 배처럼 시원하지도 다진 양념처럼 매콤하지도 않다.


그저 얹혀있는 반쪽짜리 삶은 계란

폭삭 익어버린 그 모습에 나의 실루엣이 겹쳐진다.


식초처럼 뚝뚝 흐르는 눈물


선지처럼 굳어버린 핏덩이를 녹이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입 안 가득한 면발도 말이 없고

애타게 불렀던 테스 형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가마솥 안에서 펄펄 끓는 진한 육수에 

인당수의 심청처럼 온몸 던지면 끓는 피가 용솟음 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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