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마음속 외로운 구멍을 잘 채워 주세요."

by 상담사 이경애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Rent-a-Cat) 2012

감독: 오기나미 나오코

출연: 이치카와 미카코, 쿠사무라 레이코


오며 가며 들르는 동네 공원이 있다. 뛰어놀 수 있는 공터가 있어 가족 단위로 도시락 싸들고 나들이 오는 곳이다.

"어머 귀여워라, 넌 애교가 많구나!"

"친구야, 친구~ 우리 애가 낯을 좀 가려요."

"얘는 몇 살이에요? 유치원 다녀요?"

"밥 먹일 때마다 아주 난리예요. 할아버지가 애 입맛을 다 버려놨어."


서로의 아이들 궁금해하고, 병원이나 쇼핑 보를 주고받으며, 챙겨 온 간식을 누기도 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울리는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다른 장소, 다른 상황에서라면 낯선 타인끼리 이토록 빨리 마음을 열고 웃지 않을 데. 함께 아이 키우는 장이그런지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진다. 우리 아이가 사랑스러운 만큼, 남의 집 아이를 한 눈길도 너그럽다.

유치원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 같다. 주인공 아이들이 어린이가 아니라 강아지일 뿐.

반려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동물을 대하는 람들 마음도 라졌다. 동물은 동물, 사람은 사람, 경계가 있던 예전과 달리 강아지도 고양이도 가족일 뿐이다. 건강 관리도, 먹을거리도 사람보다 관심을 덜 받지 않는다. 사람과 달리 동물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요구하지 못하니 더욱 신경 써서 돌본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는 제목처럼 고양이를 빌려주는 이야기다. 극적인 사건이나 충격적인 반전 없이 느긋하게 흘러가는데, 보다 보면 쿡쿡 웃 되고 느새 마음이 몽글몽글진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현실이 어렵다 해도 태평한 얼굴로 살아갈 것 같은 사요코. 집에서 뒹굴다 대충 묶고 나온 게 분명한 머리 모양, 색 대비 화려한 늬를 믹스매치한 패션 취향 보니 남의 선은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고양이들을 손수레에 가득 태고 사요코는 확성기를 들고 집을 나선다.


'고양이를 빌려 드립니다, 네꼬 네꼬(냥이 냥이)~ 외로운 사람에게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어릴 적 골목마다 울려 퍼지던 '찹쌀떡 사려~ 메밀묵~' 소리 닮았다. '고양이 할멈'이라 놀리는 동네 꼬마들도, 짓궂은 농담을 건네며 접근하는 청소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양이 수레를 보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있지만, 사요코가 먼저 다가갈 때도 있다. 고양이를 빌려줄 때는 먼저 심사 친다. 작은 동물을 괴롭힐 사람은 아닌지, 키울 만한 환경인지 가정 방문이 이루어진다. 심사가 끝고 계약서를 쓰면 고양이는 새 주인 품에 안긴다. 용은 천 엔, 기한은 원하는 만큼. 고양이를 키우다 어려움이 생기면 언제든 사요코가 출한다.



고양이를 빌려주며 만나는 사람들은 외롭다. 로 지내는 할머니는 아들이 릴 적 좋아하던 젤리를 만들어 냉장고에 가득 채워두었다. 가족과 오래 떨어져 지낸 년 남자는 아내와 딸이 어색해졌다. 작은 렌터카 회사 직원은 하루 종일 혼자 일하고 집에 가도 맞아줄 사람이 없다. 긴 줄을 서서 유행하는 간식을 사 와 혼자 먹어야 한다.


사요코는 어릴 때부터 친구가 없었다. 그러나 언제든 내 편이 되어주는 할머니가 있어 외로운 줄 몰랐다. 할머니 곁에도 항상 고양이가 있었다니, 고양이에게 인기 있는 유전자는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았나 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요코의 가슴에는 큰 구멍이 뚫렸다. 슬퍼서 채울 수 없었던 마음속 구멍을 채워준 것이 고양이들이었다.


사요코가 만나는 고객들에게도 저마다의 구멍이 있다. 아들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젤리를 한 스푼 뜨니 동그란 구멍이 생긴다. 혼자 사는 아저씨는 구멍 난 양말을 들키자 쑥스럽게 웃는다. 렌터카 업체 직원은 도넛의 가운데 구멍을 동그랗게 남겨서 한 입에 먹어치우는 습관이 있다.




통신망의 발달로 언제든 누구와도 연락할 수 있는 세상이 됐는데, 직접 사람을 만날 기회는 어들었다. 10년 전만 해도 집 밖으로 나가야 시장도 보고, 맛집 탐방도 할 수 있었는데 이제 방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저녁이면 TV 앞에 둘러앉던 가족들은 각자 문 닫고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남들이 밥 먹고, 연애하고, 이혼하고, 아이 키우는 모습을 화면으로 지켜보며 혼밥을 한다.


'혼자가 편하다.

구가 꼭 있어야 되는 건 아니다.

사람 만나는데 시간 낭비할 필요 없다.

나이 먹어보니 친구도 소용없다.'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정말 그럴까.


혼자가 편할 때도 있고, 혼자가 되어야 할 때도 있다. 모든 시간을 누군가 꽉 채워주리라 기대하는 건 곤란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다른 누군가가 필요하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결국에는 혼자 떠날 인생이라 해도 지금 아무도 필요 없는 건 아니다.


'혼자'와 '함께' 사이에는 적당한 균형이 필요하다. 사람마다 필요로 하는 거리는 조금씩 다르지만, 소속되고 연결되고자 하는 건 인간의 기본 욕구다.

상담실에서 만난 분 중에 '그동안 내가 사람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사람들한테 상처받는 게 싫은 거였어요.'라고 얘기한 분이 있다.

20회가 넘게 상담을 한 후, 오래전 관계에서 받았던 상처를 돌아보았고, 사람들을 경계했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혼자가 편할 때도 있지만, 늘 혼자이고 싶은 건 아니었다.


<뇌는 왜 친구를 원하는가>에서 신경과학자 벤 라인(Ben Rein)은, '우리 뇌는 타인과 상호작용 할 때 즐거움을 느끼도록 화학적으로 설계됐으며', '모르는 사람과 버스에서 나누는 가벼운 대화조차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기분 문제만이 아니다. 고립은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건강에 위험하며 모든 형태의 사망 위험을 높인다'라고 했다.

외로움은 생존과 관련된 문제다.



람 만나는 걸 편해하는 분들이 많다. 사람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도,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분이 있다.

모두에게 각자의 역사가 있어 풀어갈 방법도 조금씩 다르다. 그럼에도 리 모두가 고양이 할멈 사요코에게 한 수 배울 게 있다.


'세상이 나만 두고 어디 가버린 기분'이 무엇인지 사요코는 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외로운 사람이 아주 많다'는 걸 안다.

사요코 신이 그랬듯이 다른 사람의 구멍도 채워질지 모른다는 기대로 고양이라는 경험을 나누러 간다.


고양이는 사요코가 어릴 때부터 함께 해온 것, 가장 잘 아는 것이다. 고양이에 관해서라면 최고의 전문가임에 틀림없다. '부드러운 고양이로도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있을까' 궁금할 때도 있지만, 사요코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마음속 외로운 구멍을 잘 채워주세요.

이 아이(고양이)가 가득 채워줄 거예요."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지 않을까. 서로의 구멍을 채워줄 무언가가. 내가 아는 것, 좋아하는 것, 힘, 시간, 엇이든. 나눌 마음이 있다면.


단, 사요코처럼 찾아 나서는 게 먼저다. 거절당할 때도 있고, 상처받는 날도 있을 것이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날도 있을지 모른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은 건 관계 문제 마찬가지다. 깊은 친밀감으로 이어진 사이도 처음엔 가벼운 스몰 토크로 시작다.




해는 꼭 결혼하겠다는 포부를 벽에 써놓고 각오를 다지는 사요코에게 낭만적인 결말 있을까. 화는 로맨스보다 코믹 장르지만 혹시 모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외로운 마음에 손을 내미는 사요코니까.


덧붙여 영화를 보며 생긴 의문 하나. 고양이를 빌려주는 게 고양이 입장에서도 괜찮을까.

은 대여라지만 실상은 대여보다 분양에 가까우니 괜찮지 않을까. 만에 하나 파양 대비한 장치도 마련해 두었으까.

실제로 일본에서 시간당 비용을 받 수익 사업으로 고양이 대여를 하다 동물 학대로 고발당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고양이를 빌려 준다'는 설정은 영화 속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


의문 둘. 왜 강아지가 아니고 고양이일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천천히 다가가는 법을 배우는 데는 강아지보다 고양이가 좋은 스승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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