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한밤
문득 잠이 깨어 불을 켠다.
창문을 여니 싸아한 바람이 훅 밀고 들어오고
여름내 울어대던 개구리랑 풀벌레는 어디 가고
귀뚜라미 녀석이 내 세상인양 목청을 높인다.
뚜르르 뚜르르~
너도 잠이 오지 않는 것이냐
너를 핑계 삼아 책상머리에 앉았거늘
이 가을밤을~
내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여 선잠을 깨었다가
새 잠을 청하는 이가 있으니 평소에 하지 못했던
미안하고 고마운 말을 전해 보련다.
귀뚤아~
너는 아느냐
검던 머리가 희어지고
곱던 얼굴에 세월이 얹어지고
오래 묵은 돌꽃처럼 묵묵히 견뎌주는 이에 대한 애잔함을
수많은 시간을 함께 해 왔거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가장 소중하고 든든한 나의 울타리에게
정작 난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못 건넸구나.
청춘이라서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 때문에 고민하느라
당신의 전부를 보려 하지 않았고
불같은 젊은 시절은
직설적이기만 한 내 못난 마음을 표현하느라
당신에게 배려하려 하지 않았고
미리 져 줄 것을 알기에
잘못을 하고도 미안하단 말을 건네기보다
화를 내며 당신을 당황스럽게 했었지
귀뚤아~
라땐 말이야
목소리가 크면 이기는 것인 줄 알았거든?
난 사실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당신이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얼마나 반듯하고 고운 심성을 가졌는지
알면서도 항상 내편이었고 항상 나를 먼저 배려했으니까
내가 먼저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지
나는 당신이 가장 아끼는 당신의 아내니까
귀뚤아~
나 못됐지?
그래 그럴 거야
시도 떼도 없이 쏜 화살에
그 가슴이 얼마나 멍들었을까
당신 탓도 아닌데 말이지~
지나고 보니까 다 보이더라구
아니 어쩌면 그때도 다 보였고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미안하다 하면 왠지 내가 너무 부끄러울 것 같고
또 당신이 토닥토닥 달래주는걸 안 해 줄까 봐서~
귀뚤아~
너 알지?
똥 낀 놈이 성낸다는 말?
그래 바로 그거야
난 당신의 관심이 온전히 내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거야
파도 파도 끝이 없는 깊이에
어디까지가 내 몫인지 파고파고 또 판 거지
귀뚤아~
그런데 있지?
난 말이야 아직도 그 바닥을 못 봤다?
평생을 판 것 같은데 그 깊이도 알 수가 없다?
평생 헛 삽질을 한 거지
정말 바보같지만
속으로 얼마나 감동했는지
아마 당신은 모를거야
귀뚤아~
이제 와서 문득문득 맘이 저리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눈이 작아지고
볼살이 홀쭉해지고
키가 작아져가는 모습을 보니까
눈시울이 불거지더라?
내 탓인 것 같아서
내가 너무 힘들게 한 것 같아서
조금만 더 잘해 줄걸~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난 아직 미안하단 말을 못 했거든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바람 불면 바람을 맞고
해가 뜨면 따가운 햇살을 견디면서
그렇듯 묵묵히 돌처럼 버텨줘서
고맙다는 말도
귀뚤아~
내 부탁 하나 들어 줄래?
더 늦기 전에 전하고 싶은 말
그세월을 감싸주고 다독여줘서
감사하고 고맙다고
난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아내로
살고 싶다고
그리고
받은 사랑 조금이라도 돌려주게
오래오래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 달라고~
많이 많이 사랑한다고
전해 줄래?
꼭이야~
꼭!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