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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내려는 이들의 다양한 방식 <이재, 곧 죽습니다>

by 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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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을 드라마화 한 <이재, 곧 죽습니다>는 12번의 삶과 죽음을 주인공이 직접 제 몸으로 겪는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상황을 보고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이는 시청자는 그 생사를 마치 내 일인 것처럼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치다. 그래서 이 극적인 이야기에 몰입이 잘 된 것일까.


극 중 오정세 배우가 연기한 보신 주의자 캐릭터가 깨달음을 얻는 장면이 있다. "결국 살면서 어떤 마음이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행동했는지가 쌓여 사람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이제 와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주 막막한 벽에 가로막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근심하는 내게 힌트를 주는 대사.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죽음의 다양한 방식이 아니라 살아내려는 이들의 다양한 방식이었지 싶다. 나는 자주 선택에 관한 압박을 느끼는데,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즉 어떤 행동을 하냐에 따라 내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의 대답은 오로지 내게 있다. 그럼 나는 오늘부터 어떤 행동을 쌓아가야 할까. 마음이 들뜨는 걸 보니 삶이 조금은 가벼워졌다고 해야하나.


삶과 죽음에 대해 의문 속에 있었다. 모든 죽음이 필시 죄가 되는 걸까에 대한 의문. 갓 스무 살이 됐을 때 읽은 책에서 태어남을 선택할 수 없었기에 죽음은 자유로워도 되지 않겠느냐는 담론이 있었다. 드라마는 스스로 죽어버린 죄를 물어 12번의 끔찍한 죽음을 선사한다. 내용이 전개되는 내내 당위성을 의심했다. 나 또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죽음은 죄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삶에 책임감이 있는 이에게 죽음은 죄가 될 수 있다. 나의 탄생이 누군가에게 선물이었다면 말이다. 주인공 이재는 자신의 삶을 비관했지만 어머니와 애인에게는 선물이었던 삶이었다.


드라마는 하나의 메시지를 고요히 띄어주며 끝이 난다. '당신은 이 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입니다.' 검은 배경과 하얀색 글자. 대비가 높은 만큼 강조하고 싶었던 텍스트임이 분명하다. 이토록 확실한 드라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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