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원 출마 준비
2019년 가을, 이 동네로 처음 이사 오던 날을 기억한다.
1단지부터 8단지까지 길게 이어진 산책로 위로 나무들이 울창하게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평소 감수성이 메마른 편이라 자부하던 나조차도, 그 풍경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참 예쁘다”라는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세 살이었던 아이는 그 긴 산책로를 씽씽이로 내달리며 세상을 다 가진 듯 신이 났었고, 옆에 선 남편은 아파트 살이는 처음이라며 감개무량해했다. “내 평생 아파트에 들어와 살 수 있을 줄 몰랐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던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우리 가족의 시작은 서울의 작은 빌라였다.
엘리베이터가 2층부터 5층까지만 운행되는 건물이었는데, 갓난아이를 데리고 외출 한 번 하려면 몹시도 손이 많이 갔다. 거실에서 아기띠를 매고 한 손에는 기저귀 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접이식 유모차를 든 채 2층에서 지하 1층까지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다. 차 문을 열고 아기띠를 풀어 카시트에 아기를 잠시 앉히고, 접혀있는 유모차를 펴서 아기를 다시 옮겨 앉힌 후 짐을 정리해 지상으로 유모차를 밀고 올라와야 비로소 짧은 산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잠시 신혼 시절의 고생담으로 이야기가 샜지만, 요지는 하나다. 우리 세 가족은 2019년 그렇게 간절했던 판교동에 터를 잡았다. 평생 이곳에 뿌리 내릴 생각이었기에, 내 인생에 부동산을 다시 찾을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2025년 12월 29일 어제부터, 나는 다시 동네 부동산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감히 내가 할 수 있을까.’
‘과연, 진짜,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지난 몇 개월 동안 수만 번도 더 스스로에게 물었었다.
'됐어, 내 주제에 무슨.'
포기 했다가도,
'그래도 일단 해보자, 별거 아냐.'
마음을 다잡기를 반복했다.
수없이 흔들리던 저울질 끝에 결국 나는 ‘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다시 길 위에 서 있다.
선거사무소는 대로변에 위치해야 하고, 무엇보다 건물 외벽에 현수막을 걸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한다. 선거법상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에만 현수막 게시가 가능하기에, 사무실의 평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시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조심스레 명함을 건네며 사무실을 구한다고 인사를 드리면, 호의적인 분들도 계시지만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분들도 적지 않다. 어떤 곳에서는 인사를 채 끝내기도 전에 고성이 날아왔고, 문밖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엔 서슬 퍼런 축객령이 맺혀 있기도 했다.
이제 겨우 첫발을 떼보려는 참이다. 그런데 인사 한마디를 다 끝내기도 전부터 이미 저를 향해 겹겹의 벽을 세우고 불편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시는 모습에 심장이 내려앉곤 한다.
"정치인들, 다 똑같아. 믿을 놈 하나 없어!"
"우리 지역 민원 하나 해결 못 하면서 무슨 놈의 정치냐고!"
"전에 이 건물에 사무실 냈던 사람들? 우리 부탁 들어준 거 하나도 없어. 당신도 결국 똑같은 사람 아니야?"
쏟아지는 말들 속엔 단순히 거절을 넘어선, 시퍼런 한(恨)이 서려 있다. 그것은 나 개인에 대한 분노라기보다, 기대를 걸었다가 배신당하기를 반복해온 분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두른 가시 돋친 갑옷이다.
그 거친 표현들이 가슴에 깊이 박힌다.
'나는 정말 다를 수 있을까. 나 역시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에게 저런 한 맺힌 말을 듣게 되는 건 아닐까.' 무거운 질문이 어깨를 짓누른다.
하지만 이 낯선 거절들조차 이 길의 일부임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차가운 냉소 앞에서도 기꺼이 웃으며 다시 인사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비난의 말들 속에서 원망이 아닌 책임감을 먼저 발견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내가 넓은 품을 갖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더 단단해지기 위해 오늘도 기꺼이 버텨내려 한다.
이제 시작이다.
* 천천히 출마를 결심한 이유, 그리고 준비하면서 겪는 다른 이야기들을 풀어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