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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Apr 27. 2022

당신은 어떤 성장의 무늬를 그리고 있나요?


혼자 잘하는 디자이너


초등학교부터 5~6년동안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입시 제도에 크게 벗어나지 않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함께’보다 ‘혼자’, 그리고 ‘자라기’ 보다 ‘잘하기’에 훨씬 익숙할 거라고 생각한다. 1등부터 꼴등까지 한 줄로 세우는 경쟁의 세계에서는 ‘앞으로 얼마나 성장하느냐’보다는 ‘지금 당장 잘하냐’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혼자 잘하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받는다. 운동선수라면 최고 연봉을 받는 스타 플레이어. 예술가라면 나만의 작품을 발표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 연구자라면 학문의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선 사람.


적어도 나는 혼자 잘하는 게 잘 맞는(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혼자 열심히 입시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갔고, 대학에서도 전공 특성상 혼자 열심히 개인작업만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함께 자랄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함께 자라는 디자이너


그런데 그런 나홀로 성장러에게 갑자기 팀으로 일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쳐버렸다. 대학 4학년, 졸업전시를 하기도 전에 스타트업에서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쪼무래기는 순진하게도 ‘나만 잘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나 혼자 잘나서 할 수 있는 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객 한 명을 인터뷰하려고 해도 그의 연락처를 DB에서 찾아줄 팀원이 필요했다. 웹사이트의 버튼 위치를 조금 옮기려고 해도 팀원의 도움 없이는 단 1px도 옮길 수 없었다.


처음에는 삐걱거리기 일쑤였지만 일을 할수록 점점 팀원들과 손발을 맞춰나갈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절대 가능하지 않았겠지만, 팀원들과 함께 오랜 시간 고생해서 마침내 프로덕트를 런칭했을 때 비로소 ‘함께’라는 단어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지금 함께 자라고 있는가?


사실 혼자 잘하는 디자이너 진짜 너무 멋있다. 자신만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었고, 정확히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하지만 팀원들이 함께 힘을 합쳐 프로덕트를 만들고 비즈니스를 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디자이너가 나 홀로 고고하다간 정말 큰일 나더라. 내 디자인을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는 논리적인 커뮤니케이션과 협력 능력은 디자이너에게도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역량이다. 그래서 일을 하는 내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 질문인 것 같다. “나는 지금 함께 자라고 있는가?”


하지만 인간의 관성이란 정말 무섭다. 평생의 대부분을 혼자 잘하는 훈련을 받으며 살아온 탓에 뇌가 그렇게 굳어져버린 것인지, 아니면 혼자 잘하기보다 함께 자라기가 원래 더 어려운 것인지, 조금만 한눈을 팔면 또 혼자 잘하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보다 나아진 점도 있다. 이제 나는 신뢰할 수 있는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요청한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 끊임없이 묻고 또 귀 기울여 들으며 목표점을 향한 나의 방향을 재조정한다. 매일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더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또한 회사 밖 사람들과도 적극적으로 만남을 도모해 ‘우물 안 개구리’ 시각을 의도적으로 넓힌다. 책을 읽고 글을 써서 이야기를 나누고, 목표를 세워서 공유하고 서로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준다.


우리에겐 더 많은 ‘함께 자라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과 협력 능력 등의 ‘소프트 스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때는 대부분 실무자에서 매니저의 위치가 되면서 매니징해야 하는 팀원들이 생겼을 때이다. 하지만 빠르게 성장해야 하는 주니어들에게는, 특히 첫 직장에서 사수가 없을 확률이 큰 요즘 시대의 주니어들에게는 서로가 서로의 롤모델이 되어 ‘함께 자라는’ 이야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성장의 무늬


혼자 오랜 시간 연마해 만든 성장의 무늬도 물론 아름답다.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그 사람 고유의 무늬로 빛날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무늬가 섞여 있는 사람은 더 아름답다. 다양한 배경과 상황에서 만들어진 무늬들이 마치 만다라처럼 어우러져 단단하고도 황홀한 사람을 만든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 무늬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하나하나 곱씹어보는 것도 재미있고, 탐나는 무늬가 있다면 그 조각을 하나 가져와 나의 만다라에 어울리게 놓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앞으로 오래 남은, 나의 일할 시간들이 더 이상 외롭지 않다. 나는 또 무수한 사람을 만나 배울 테고, 그렇게 모은 무늬의 조각들로 더욱 단단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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