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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온 Sep 27. 2023

갑작스럽게 아기고양이를 만났다  



 오전 11시.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평소처럼 수업 준비를 하던 중 누군가 에브리타임에 새끼 고양이가 비를 맞고 있다는 글을 올렸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 글을 보고 새끼 고양이를 수건에 싸서 데리고 있다고 글을 올렸다. 과거의 나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글들을, 오늘의 나는 못 본 척 넘어갈 수 없었다.

 

 몇 년 전 오늘보다 더 비가 세차게 내렸던 어느 날이었다. 우박이 내리는 듯한 빗소리를 뚫고 적어도 세 마리는 되어 보이는듯한 새끼 고양이들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불쌍한 마음보다 당장 내 앞에 있는 문제들을 푸는 것이 급했기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이 날의 후회 비슷한 감정 때문에 결국 내가 케어하겠다고 댓글을 달았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기숙사 앞에서 수건에 둘러싸인 채 떨고 있는 녀석을 받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보다 낮은 체온으로 아무런 저항이 없는 녀석이 걱정되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총동원했다.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담고 양말에 넣어 바구니 바닥에 깔고 녀석을 그 위에 눕힌 후 수건으로 덮어주었다.

 

10분마다 온도를 체크해 보며 상태를 확인하다 어느 정도 체온이 올라온 후 다시 물을 갈아주었고 급하게 다음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로 갔다. 3시간 연강에다 토론 위주의 강의였기에 말 그대로 카오스 상태로 수업을 듣다가 끝나자마자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녀석이 살아있는지부터 확인하려고 했으나 바구니를 확인한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체온증으로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녀석이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마와 뒷덜미를 만져보니 이제는 나보다 따뜻해서 고비는 넘겼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학교에서 본가까지는 약 2시간 30분의 거리, 내일부터 추석 연휴라 고속버스를 타고 본가에 가려 했으나 이동장 없이는 이 녀석을 태울 수가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입양하겠다고 연락 주었던 사람이 갑자기 입양 취소를 통보하면서 걱정은 커져만 갔다. 내일까지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녀석을 원래 있던 밖으로 돌려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만 흘러가고 녀석에게 아기 고양이용 파우치와 물을 먹인 후 다시 잠든 녀석을 보며 내가 가입했던 고양이 카페들을 돌면서 임시보호 요청 글을 올렸다. 불행히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시간은 저녁 7시를 넘겼고 녀석은 자신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곤히 자고 있었다. 그러다 천만다행으로 처음으로 입양하겠다고 얘기해 준 학우 분께서 임시보호를 맡겠다며 택시를 타고 데리고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정신없던 하루에 샤워하고 일찍 자려던 나는 5분 만에 다시 모든 준비를 끝내고 카카오 택시를 잡았다. 하지만,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양손으로 바구니를 들고 있어서 우산을 쓸 수 없었기에 내리는 이슬비를 그대로 맞고 있는 상황에 20분 넘게 어플에서는 주변에 택시가 없다고만 알림을 보내왔다. 녀석은 수건을 이중으로 덮어놓아서 괜찮았지만 나의 경우 안경에 내리는 빗방울이 묻으면서 시야가 흐려졌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렇게 서있길 25분째, 캠퍼스 근처에서 택시가 잡혔고 차로 4분 거리였던 그곳에 간신히 도착했다. 마지막까지 걱정하면서 만난 임시보호자는,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내가 바랐던 모습이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해 보이면 다시 택시를 타고 녀석을 데리고 돌아오겠다고 했던 내 다짐은 불필요한 것이 되어 안도의 한숨으로 바뀌었다. 간단하게 대화하다 나중에라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연락 달라고 했던 인사를 끝으로 녀석을 임시보호자에게 건넸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 눈물이 날 뻔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렇게 다시 방에 들어갔다. 비록 한나절의 시간이었고 혹시라도 녀석을 다시 밖에 내보내는 상황을 대비해 최대한 사람 손에 안 태우려고 최소한의 터치만 했었지만 그래도 조금의 정이 들었나 보다. 임시보호자께서 녀석의 사진을 보내준 것을 끝으로 정신없던 나의 하루가 끝나갔다.

샴고양이 새끼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예쁜 녀석. 누군가 유기한 것만 아니길. 물론 좋은 분에게 입양 가는 것을 무엇보다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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