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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by 이시랑



이 글은 맥도날드에서 쓰였다. 언제나 시작은 이곳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친구들의 생일파티는 맥도날드에서 주로 열리곤 했다. 나는 축하를 위한 들러리였고, 몇 번의 박수를 치고 나면 불고기버거 세트를 먹을 수 있었다. 마치 참가상을 받는 기분이랄까. 누군가의 생일 파티를 기다리는 일은 곧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가장 저렴하고 소스에 절어진 달콤함과 고소한 마요네즈가 입안에 베어물 때의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비록 난 선택권이 없었지만, 초대만으로도 선택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중 율의 초대는 유난히 기억에 자리하고 있다. 율은 트레이 구석에 케첩을 잔뜩 뿌렸다. 점원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케첩을 조금만 더 주시면 안 되냐고 물었다. 율은 작은 손에 들린 케첩 3개를 전쟁에서 승리한 전사의 전리품 마냥 들고 와서는 구석에 케첩산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렇게 먹는 게 맛나다며 듬뿍 찍어 내게 건넸다. 새콤달콤하고 짭조름함이 내 혀를 감쌌다. 율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상하이 치킨 버거를 시켰다. 자신의 취향이 확고해서 끼어들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한동안 율을 따라 했다. 불고기버거 대신 상하이 치킨 버거를 먹으려 했고, 케첩을 일부러 더 받은 뒤 감자튀김에 듬뿍 찍어 발라먹었다. 나에게도 나만의 영역이라는 것을 가지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상하이 치킨 버거는 너무 자극적이었다. 낯가림이 심한 내게 케첩을 더 달라는 말은 붉어진 뺨에 토마토소스를 뿌리는 격이었다. 나는 율이 될 수 없었다. 그렇게 억지로 하던 행동들은 점차 사그라들어갔다. 원래 하던 대로 불고기 버거를 먹었고, 감자튀김을 먹을 때도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나는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늘 하던 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키오스크 앞에서 메뉴를 골랐다. 손끝이 익숙한 메뉴를 가리켰다. 자연스럽게 불고기 버거를 주문한 뒤 자리에 앉았다. 일상의 한 장면인 것처럼 익숙했다. 맥도날드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고요한 새벽에 불쑥 찾아와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환대해 주었다. 어떤 차림으로 들려도 어색하지 않은 곳. 나를 제외한 이들도 같은 마음일까? 문득 이곳에 들리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모자를 푹 눌러쓴 저 젊은 여자는 에어팟을 낀 채 왼손에는 핸드폰을, 오른손에는 햄버거를 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떤 중년의 남자는 묵묵히 햄버거를 곱씹는 듯 보였다. 그러던 중 학생들 세 명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감자튀김을 트레이 위에 산처럼 쌓아놓고 케첩을 듬뿍 찍어 먹고 있었다. 저렇게 짠맛과 신맛을 섞어먹는 게 맛있나 생각하던 중 내 9979번이 전광판 위에 떠올랐다. 불고기 버거 세트와 스낵랩을 들고선 테이블로 돌아왔다. 케첩은 한 개만 주어졌다. 이상하게 오늘은 관성이 가는 대로 먹고 싶지 않았다. 쭈뼛거리며 다시 카운터로 발걸음을 향한다.


"혹시, 케첩 2개만 더 주실 수 있을까요?"

목소리의 톤이 낮았지만, 떨리진 않았다. 이미 부끄러움에 말을 못 꺼냈던 나이는 18년이나 지났으니까. 덩치만큼이나 변한 내 모습이 가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트레이 구석에 케첩을 가득 짰다. 마지막 한 방울도 놓치지 않을 것처럼, 트레이 위에 종이 적셔질 때까지 힘껏 뽑아냈다. 그리곤 감자튀김을 집어 그때의 맛을 다시 느껴봤다. 여전히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나쁘진 않았다. 율이 기억의 호수에서 넌지시 떠올랐다. 율이 좋아하는 게 있다면 내게도 마음이 자연스레 가는 것이 있지. 나는 율이 될 수 없구나. 그렇다고 율이 될 필요도 없네. 추가로 달라고 한 케첩은 더 달라고 한 말이 무색하게도 소외당했다.


누군가가 되고 싶어 살았던 날을 기억한다. 다른 이의 모습을 닮고 싶어 힘차게 애썼던 적도 잊지 못한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얻고 싶어서 발을 힘차게 굴리던 장면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나는 맥도날드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시작은 언제나 이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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