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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이슬 Oct 20. 2021

나는 한복 입는 행복한 덕후라네

본새 나는 디자이너? 덕질에 진심인 행복한 덕후였을 뿐인걸요

한복에 진심이었던 덕후
한복 디자이너가 되다

오! 한복한 인생, 황이슬

"어떻게 한복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하셨어요?"

가장 빈번하게 쏟아지는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만화 주인공에~푹 빠져있던 대학교 1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당시 저는 산림자원학과에 재학 중이었는데, 주변인들의 권유로 조용히 공무원 준비만 하던 제게 만화책 '궁' 은 유일한 낙이었어요. 

궁은 조선왕실이 현재까지 존재한다는 가상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 주인공들은 한복을 일상복처럼 입고 다녔는데  여주인공이 입은 화려한 반팔 미니스커트 한복이 첫사랑처럼 쿵! 제 심장에 날아와 박혔어요.

 
한복을 입으면 왠지 행동거지를 양갓집 규수처럼 조신히 해야 할 것 같지만 

여주인공이 입은 복장은 짧은 반팔 한복과 미니스커트 한복으로 왈가닥처럼 팔랑팔랑 뛰어다녀도 무리가 없었던 데다, 편하게 데이트하고 생활을 하는 모습이 보통 본새 나는 것이 아니었기에 '와! 저건 입어줘야 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어요. 


마음이 움직이면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천성 탓에 만화책 여주인공을 코스프레해야겠다고 결심했죠디자인 전공도 아니지만 자투리 천으로 작품  의상을 모티브로 퓨전 한복 의상을 제작했고그렇게 완성된 한복드레스를 입고  용기를 내어 친구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경험이 없고 서툴다 보니 이상하다 오타쿠 같다는 평가를 들을까 봐 마음이 폴딱거렸지만반응은 예상외로 굉장히 뜨거웠어요

예쁘다, 우아하다, 오늘따라 분위기가 다르다손재주가 좋다 등등...

  

"어, 나 손재주가 짱이네?" 


라고 의외의 재능을 각성하게 된 계기였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경험이 행복한 덕후를 한복 덕후로 바꾸어 놓은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싶어요직접 만든 한복 코스튬을 입고 난 후부터 제 한복 사랑은 본격화되기 시작하였고 전공과 관계없이 패션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게 됐죠.

 


취향이라서가 아닌
'패션'이니 존중해주시죠

2006년, 제 나이 20살에 처음으로 모던 한복 브랜드 '손짱(=손재주 짱)'을 창업하게 됐어요. 

사만 오천 원의 창업자본만 가지고 시작했지만, 1년쯤 지나니 주변에 '직업'으로 당당하게 소개할 만큼 자리를 잡았지요. 한복을 직업으로 삼고 보니 현장의 언어들이 생생하게 와닿았어요.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면 '참 예쁘다, 보기 좋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젊은 분이 젊은 옷을 배우시지, 한복을 하시네요?'라는 '한복=나이 든 사람의 옷'이라는 선입견이 느껴지는 말도 들었고요. 가장 많은 반응은 '도대체 왜 입었느냐'는 것이었어요. 거리를 걸을 때마다 누군가와 마주칠 때마다 한복을 왜 입었는지에 대해 설명을 하느라 곤욕이었답니다. 한복은 코스프레가 아닌데 마치 코스튬을 입고 돌아다닐 때와 같은 묘한 시선을 받았달까요.


'취향이니 존중해달라능!' 이라고 회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내면으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한복은 가장 한국적인 것인데, 착용한 이유를 왜 설명해야하며 좋아서 입는 일에 왜 명분이 필요할까? 

이유는 바로 한복이 일상에서 편히 입는 복식이 아니기 때문이었지요. 지금까지 한복은 옛세대 사람의 옷, 결혼식, 돌잔치, 환갑잔치 등에 사용되는 이벤트 복이었거든요. 그러니 자연히 한복을 입은 사람은 나이 들거나, 취향이 유별나거나, 어떠한 사유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거죠. 


그러나 만약, 한복이 '패션'이 된다면?
 
패션에는 나이도 국적도 이유도 필요 없기에 저는 한복을 이벤트성이 아닌 대중적 패션 장르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답니다. 한복을 입고 거리를 걸어도 이상한 눈총을 받거나 이유를 물어오지 않는 그날을 꿈꾸며 말이에요. 




한복 덕후에게도
한계는 찾아왔다



지금은 옷장에 양말을 제외한 모든 것이 한복이지만 초창기에는 저 또한 일상복을 자주 입었기에
2011년 황이슬의 개인 숙제로서  '한복 100번 입기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죠. 사람들이 한복을 자주 입지 못하는 이유를 연구하기 위해서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차에 탈 때도 오로지 한복만 입어보자! 는 취지였는데 

스무 번도 채우지 못하고 참담한 실패를 했어요.

밥을 먹을 땐 넓은 소매에 모든 반찬이 범벅되는 웃픈 일이 발생했고 차에 탈 때는 치맛자락이 문에 끼이기 일쑤였으며,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어요. 옷과의 전쟁을 치러야만 했던 화장실은 꾹 참게 되었고요. 머리를 묶거나 기지개를 켤 때는 짧은 치마 고리가 들려서 상체가 노출되는 문제가 발생했죠. 


한복, 아름답고 절제되고 우아하지만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과는 결이 맞지 않았죠.
한복 디자이너로서 제가 걸어야 할 분명한 방향이 보이는 순간이었어요.

그렇게 메모한 기록을 매일 되새기며 연구한 끝에 2014년 동성과 착용감을 업그레이드한 모던 한복 브랜드 '리슬'을 탄생시켰습니다.

리슬 창업,
그 이후의 이야기

리슬의 모던 한복


2006년부터 시작한 한복 사랑,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고집스럽고 열정 있게 지켜온 결과.... 
 지금 저의 브랜드는 어떤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하신가요? 
  
만화 '궁' 작가님의 실물을 영접하게 된 에피소드, 한복이 엮어 준 유명 
셀럽들과의 인연까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잔뜩 쌓여 있답니다.

앞으로 '성공한 덕후' 리슬이 들려드릴 재미난 이야기들을 지켜봐 주세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예요:)

우리의 인연이 닿은 것은, 아마도 독자님이 '한복'에 관심이 있는 분이기 때문이겠죠?
리슬이 16년간 한복을 만들 수 있었던 힘, 한복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님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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