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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이슬 Oct 29. 2021

왜 전주에서 사업을 계속 하세요?




전주는 '뭐'가 없어.

21년 리슬의 모습
2006년부터 2020년까지 리슬은 이 건물의 지하에 있었답니다.

지금은 깔끔한 모습으로 구색을 갖추었지만 리슬은 오래 전 전주역 앞 날긋한 철물점 지하에 터전을 잡고 있었답니다.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한 역전 유흥의 거리와 그 속에 어딘지 앓고있는 건물 한채는, 역을 이용하는 관광객들에게 보여지는 전주의 첫인상이기도 하였지요.

이 곳에서 한복을 만들다 보면 관광객들이 하는 말이 귓가에 자주 닿곤 했어요. 


"살 만한 게 없더라."
"전주스러운게 없더라"
"뭐가 없네."


전주는 명색이 1천만명이 다녀가는 관광도시인데 볼 게 없다는 이야기가 속상했습니다. 
언젠가 같은 뜻을 품고 있는 지역 사람들을 모아 전주다움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컨텐츠 큐레이션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전주에 '뭐'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뭐' 가 한가득 떠올랐거든요.


조금씩 '뭔가' 되어가다


공사 당시 철물점을 철거하던 모습


2019년, 철물점 지하에 있던 리슬은 지상으로 이전하게 됩니다. 이것을 이뤄내기까지 1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요. 그래서인지 직접 도면을 그리고, 바닥자재와 페인트 칠 하나에도 숨을 불어넣으며 작업하기까지 총 45일의 시간은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리슬은 마침내 근사한 모습으로 재탄생 하였답니다. 


<관련 뉴스>

어패럴뉴스 모던한복브랜드 리슬 전주점 리뉴얼 오픈
전주다움 오래된 철물점이 여행객 마주하는 '리슬'로

황송하게도 전주역의 풍경을 바꾼 도시재생사례로 리슬이 많은 미디어에 소개되었는데요
 매장을 찾는 사람들과 취재하는 매체들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왜 전주에서 사업을 계속 하나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14년간 사업을 하셨으면 대도시로 가실 법 한데, 전주에 애착이 있는 이유가 무엇이죠?"


그런 질문을 들으니 머쓱했습니다. 대단한 애향심 때문에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단지 사업에 지리적 어려움을 크게 느끼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전주 토박이로 살아왔으니 편안하구요, 코앞이 전주역이니 필요하면 서울로 출장가면 되니까요. 

매장 안에서 창밖으로 전주역이 보여요. 횡단보도 바로 건너편이거든요.

특별한 애향심이 있기보다는 주어진 자리에서, 나의 배경을 인정하고, 그것을 나의 강점삼아 최선을 다하면 길이 보이거든요. 그게 우리 지역에 도움이 되고 주변에 선한 영향력이 되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오히려 제가 전주에 있으면서 느낀 아쉬움은, 지방은 기회가 적고 물리적 제약이 있고 수준이 떨어진다고 여기는 인식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편견을 깨고 싶었습니다.


로컬메이드 상점.
전주의 '뭔가'를 보여주리라



'살 만한 게 없다' 고 말하던 분들에게

'전주스러운게 없더라' 고 말하던 분들에게
'왜 전주에서 계속 사업하세요' 라고 하던 분들에게 

로컬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전주에 활동하는 작가님과 전통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 소품을 수소문 하여 
공유상점 '로컬메이드ZONE'을 만들었습니다. 전주다움을 필요로 하는 토박이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원하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전주다운 소품을 선보일 수 있는 선물샵입니다. 리슬 매장에 샵인샵 형태로 옷을 쇼핑하면서 함께 구경하실 수 있게 비치하였지요.

최은희 패턴디자이너의 리아라인 - 직접 개발한 전통패턴 한지 노트, 떡살무늬 티매트 등

김보미 한국화 작가의 봄그림 - 직접 그린 민화작품을 활용한 엽서, 휴대폰 케이스, 그립톡 등

김진아 디자이너 역서사소 - 전라도 사투리 엽서, 가방, 달력 등

정혜민 가죽 크리에이터 헤이민 - 전통문양 여권케이스 등

한국의 이케아라고 불리는 집꾸미기 브랜드 마켓비 - 조명, 도마, 진열장 등 (위탁계약 했어요)

로컬메이드의 로고입니다. 서로 다른 손이 모여 +를 만드는 형상이죠

리슬이 런칭한 로컬메이드는 지역에 크리에이터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돕고 지역을 찾은 관광객에게는 다시 찾아고싶은 곳이 될 수 있도록 볼거리와 살거리를 제공하는 일을 합니다. 또한 지하는 문화클래스와 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활성화 되는 커뮤니티공간으로써 대관할 수 있답니다.


어려운 시기 큰 매장을 운영하는게 부담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고, 이게 내 고장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기쁘게 하리라는 마음으로 꾸준한 운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리슬이 증명하고 싶었던
전주의 '뭔가'는 가능성


전국에서 손 꼽히는 실력있는 브랜드, 이 브랜드를 보기위해 찾아오게되는 강력한 브랜드, 내로라하는 기업, 최고 전문가와 협업하는 브랜드, 고객을 전세계에 두고 있는 브랜드가 되자. 내가 전주의 얼굴이 되자고 

지하에서 14년간 같은 꿈을 품으니 마침내 지상의 빛이 들더군요. 주어진 리소스를 최대한 활용하니 안될 것이 없었습니다.

전주의 얼굴이 되고자 했던 리슬은, 황송하게도 올해로 7년 연속 우수문화상품으로 선정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복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리슬을 만나기 위해 유명 기업과 아티스트들이 전주를 방문하기도 하고, "전주를 돌아보니 살 것도, 먹을 거리와 볼 거리가 참 많더라" 며 극찬을 하고 가신답니다. 


전주에서 왜 사업을 하냐는 사람에게, 전주에 볼 것이 없다는 사람에게 리슬이 보여주고 싶었던 건
 로컬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 이었는지도 몰라요. 잠시 머물었다 가는 관광도시를 넘어, 사업을 정착시키고 삶의 터전을 꾸려가기 좋은 도시 말이죠.


전주에서 16년째 사업을 꾸려가는 리슬의 살림살이는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답니다.
https://leesle.com

언젠가 전주를 방문하신다면 역 앞 리슬에 방문해 주세요. 차 한잔 마시며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답니다. 그럼 근황과 소식, 또 많은 브랜딩과 창업스토리로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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