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문학을 위하여

by 이순직

1. 들어가는 말

비평문학의 딜레마(Dilemma)는 이론비평(Theoretical criticism)과 실천비평(Practical criticism)의 거리를 좁힐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창작문학이 그 거리를 좁힐 수 있다. 이론은 두꺼운 책 속에 갇혀 있을 뿐, 거리를 활보할 수 없다. 거리에서 버스들이 내뿜는 매연과 왁자한 시끄러운 소음(騷音)들에 시달리면서, 돌부리나 빙판길 위에 엎어지며 코가 깨지는 쪽은 언제나 창작문학 쪽이다. 그러나 창작문학이 비평문학보다 더 고생한다고 해서, 거리에서 독자를 직접 만난다고 해서 우쭐해서는 안 된다. 의식하든 못하든 창작문학의 시원(始原)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시학(Poetics)이기 때문이다.

이론비평의 측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견줄 수 있는 것이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의 서사극이다.① 시학의 핵심은 카타르시스(Catharsis)이고, 서사극은 소외효과(Verfremdung)이다. 그 차이는 어떻게 생겨날까?

카타르시스라는 말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시학을 살펴보자. <시학> 제 6장을 보면,

비극은 드라마적인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인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바로 이러한 감정의 catharsis를 행한다.


카타르시스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이 없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용어를 어떤 의미에서 사용하였는지 알 수 없다.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catharsis는 감정의 정화를 의미한다는 윤리적인 견해와 감정의 배설을 의미한다는 의학적인 견해로 양분된다. 전자는 바로크 시인들, 프랑스 고전주의 시인들과 더불어 레싱(G.E. Lessing)이 주장하는 견해이고, 후자는 버내이스(J.Bernays)가 주장하는 견해이다. 문맥으로 보아 연민과 공포를 전제하지 않으면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논의할 수가 없다. 연민과 공포는 플롯(Plot)에 의한다기보다는 이야기(Story)에 의해 유발된다. <시학> 13장을 살펴보면,

연민의 감정은 부당하게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환기되며, 공포의 감정은 우리 자신과 비슷한 자가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환기된다.


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것으로 이야기(Story)와 관찰자(Observer)를 이미 상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문제는 이야기와 관찰자의 거리이다. 둘 사이에 심리적인 일체감이 이루어지고, 또 이루어져야만 연민과 공포가 형성될 수 있다. 또한 연민과 공포가 일어나야만 카타르시스가 존재할 수 있다. 등장인물이 부당하게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환기되는 연민의 감정은, 그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관찰자의 가치관이 기준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감정의 판단이며 그 판단은 당대의 문화역사적 상황과 관계있다. 가령 Los Angeles의 흑인 폭동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면 충분한 이해가 가능하다. 로드니 킹(Rodney King)에 가한 백인 경찰의 폭력은 흑인들로부터 부당하다는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연민의 감정은 자신과 비슷한 자가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환기되는 공포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로드니 킹(Rodney King) 사건은 허구가 아니기 때문에 감정의 카타르시스(Catharsis)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매개가 필요했고, 그 매개가 한인(韓人)에 대한, 한인 상가에 대한 약탈과 폭력이 되었다. 흑인들은 한인에 대한 폭력과 약탈을 통해서 감정의 배설(Catharsis)을 가질 수가 있었다. 이것은 한인들이 소수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백인처럼 행동하고, 사고하고, 살았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정리해 보자. 로드니 킹(Rodney King)에 폭력을 가한 자들은 백인이며, 경찰이다. 폭력현장의 비디오 테이프를 본 대다수의 흑인들은 부당한 불행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자신도 언제 저런 불행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잠긴다. 이러한 심리적 상황은 동일시 현상을 전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런 감정의 덩어리는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요구한다. 그것은 카타르시스를 하게 할 매개를 필요로 하며, 흑인들은 정작 백인들을 상대로 카타르시스를 얻어낼 수 없다. 따라서 백인처럼 살아가는 한인들에게서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얻어낼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카타르시스는 연민과 공포를 전제(前提)하고, 그것을 전제하게 하는 심리적 현상은 동일시 현상이다. 동일시 현상에 의해 등장인물과 관찰자는 심리적 일체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소외효과(Verfremdung)를 살펴보자.

소외효과(소격효과)는 브레히트(Brecht)에 의해 개진되는데 서사극의 중추신경이다. 소외효과(Verfremdung)를 파악하고 있으면 서사극의 절반을 알고 있는 셈이다.


소외효과를 이룩하려면 배우는 극중 인물로의 ‘완전한 전환’을 포기해야 한다. 배우는 극중 인물을 ‘보여주고’ 그의 대사를 ‘인용하며’ 실생활에서 일어난 일을 ‘반복한다’. 관객은 완전히 ‘넋을 잃지’ 않는다. 심리적 일체감을 느낄 필요도, 묘사되는 운명에 대해 숙명론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도 없다. <극중 인물이 기쁨을 느낄 때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 관객은 자유롭다. 때로는 별도로 사건의 전개를 상상하거나 새로운 전개를 찾도록 고무되기도 한다.> 극의 사건은 ‘역사화’되고 사회적으로 ‘정립’된다.


소외효과는 온전히 브레히트가 고안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연극적 관습을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한 것이다.


중국의 곡예사는 무엇보다도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 개의 벽 이외에 또 하나의 네 번째 벽이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지 않는다. 그는 관객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즉시 유럽 무대의 일정한 환상을 제거시켜 준다. 관중은 실제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의 숨은 관객이라는 환상을 더 이상 가질 수 없다.


제4의 벽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마당극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자세는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화자로서 작가를 인정하고 작가가 소설을 써 나가는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소외효과(Verfremdung)는 연기자(Aactor)와 극중인물(Role)의 분리를 기초로 하며, 이야기와 관찰자의 분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동일시에 기초를 둔 심리적 일체감을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다. 브레히트가 소외효과를 러시아의 형식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받아 개진한 것이라는 추측은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켰으나,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주창한 낯설게 하기와 소외효과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둘의 영향 관계가 전무하다고는 보기 어렵다.

서사극은 극작가(Playwriter)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단지 극작가는 관객에게 의견을 제시할 뿐이며 의견이 고스란히 관찰자에게 수용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전통극의 극작가는 전지전능의 신이다. 그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강요하며 관찰자가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요구한다. 햄릿(Hamlet)이 무대 위에서 고통스러운 몸짓과 표정으로 천천히 to be or not to be ― That's the question이라고 중얼거릴 때 관찰자 역시 마음속에서 그렇게 중얼거린다.

메타픽선(Metafiction)은⑥ 작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의 몰락에서 오는 것이며 작가의 몰락은 작가의 권위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미 브레히트에 의해 실험되었던 작가의 몰락이 소설로 드러난 것이 메타팩션으로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작가의 몰락은 심리적 일체감을 배제하는 데에서 나오며 심리적 일체감을 배제하는 것은 소외효과가 노리는 결과이다. 카타르시스(Catharsis)는 감정에 호소하며 소외효과는 이성에 호소한다. 결론적으로 카타르시스와 소외효과는 동전의 양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우리의 비평, 무엇이 문제인가?


모든 실천비평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브레히트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다. 그것은 불행한 현실이다. 우리는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브레히트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오로지 소외효과 뿐이라고 단정 짓는다면 오산이다. 과거는 거대한 창고이다. 온갖 것들이 순서도, 체계도 없이 알몸으로 뒤엉켜있는 만물창고이다. 우리는 그 창고의 문을 열고 순서와 체계를 주고 논리의 옷을 입히고 냉철하게 자신이 사는 시대를 통찰한다면 새로운 이론비평을 정립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도 그런 노력의 결과이다.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언제까지 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순 없다. 창작문학이 타인과 다른, 독특한 자아의 변별성을 획득할 때만 가능하듯이 비평문학도 세계문학과 다른 변별성을 획득하기 위해 비평문학적 창작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하일지가 <경마장 가는 길>을⑦ 출판하였을 때 많은 비평가들이 역겨움을 표시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이지만, 가령 어떤 평론가 하나는 내 소설을 두고 <이런 종류의 소설은 아무래도 외래종 소설이다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박래품의 냄새가 전편에 진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내 작품을 한 번 할퀴기는 했지만 내 소설에 무엇이 어떠하기 때문에 <외래종>이며 <박래품>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데 대해서는 불행하게도, 코로 냄새를 맡아보았다고 말하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해 낼 재간이 없다.


산업사회에 편입하였음에도 완고한 유교적 도덕관의 잔재(殘滓)는 요지부동이어서, 몇몇 평론가들은 주자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학에 대한 편견의 일단을 웅켜쥐고 있다.

주자학자들이 바라보는 문학의 본질은 재도지기(載道之器), 관도지기(貫道之器)이며, 문학 활동은 여기(餘技)이며, 문학작품의 모범은 경전(經典)으로 집약된다.⑨ 방외인인⑩ 허균이나 이수광의 문학관도 문학의 내용이 도(道)를 담아야 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 문학의 효용으로서의 교세(敎世)가 중요시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홍길동전의 율도국은 타락한 주자학의 현실에 대한 주자학적인 비판이자 동시에 이상적인 유교국가에 대한 모델 제시라고 설명할 수 있다.


三代六經인 聖人之書나 黃老, 諸子家百의 글은 모두 각기 그네들의 道를 주로 하는 것이어서 그 글이 알기 쉽고 古雅하다. 후세에 와서는 文과 道가 분리되어 비로소 극한 章句가 있어서 그 공교로움을 다툰다. 이것은 文의 재앙이다. 文의 지극한 경지가 아니다. 나는 우둔하지만 감히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주자학자들이 문학의 본질을 載道之器, 貫道之器라고 보는 것과 허균이나 이수광을 비롯한 방외인들이 載道之器, 貫道之器라고 보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듯하지만 궁극적으로 주자학자들은 도를 표현 기교로 보지만 방외인들은 도를 문장의 내용으로 직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문학이 담아야 하는 도(道)가 윤리나 도덕 문제로만 국한될 때 문학작품은 문학 이외의 것이 되거나 한정된 내용을 어떻게 다양하게 담아야 하는가 하는 데서 오는 문학작품의 폐단은 형식적 기교에 치우칠 우려가 높다. 이러한 폐단을 직시한 방외인들은 문학이 담아야 할 도(道)가 윤리나 도덕의 차원을 넘어선 도문일치(道文一致)로서 문학작품의 표현 기교와 내용의 합일 문제를 주장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문학은 내용과 형식을 통하여 완전한 조화미를 이룩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與夫黃老諸子家百語 皆爲論其道라는 시각은⑫ 주자학자들이 경전에 얽매인 것과는 달리 문학작품의 모범으로서의 경전 탈피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뿐만 아니라 주자학자들은 작가의 도덕적 인품을 중요시하여 피지배 계층의 시인은 시평의 대상에서 제외하였지만, 허균이나 이수광에게 작가는 조화옹(造化翁)이기 때문에 통찰력이 중요시되며 경험이 작가의 능력 향상에 관건이 된다고 보고 피지배 계층의 시인도 당연히 시평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⑬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을 놓고 벌어진 소동은 우리 시대의 문학적 경전(經典)에⑭ 얽매이는 일부 비평가의 편협한 문학관(文學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金煥泰의 비평관


평론에서 찾아볼 수 있는 김환태의 비평관에 대한 총체적 인상은 그가 소박한 문학주의자라는 것이다. 문학주의자라는 다소 모호한 말이 담는 의미는 문학이 구원의 수단이 된다는 식으로 인간의 창조행위 중에서 가장 궁극적이며 최고선(最高善)을 향해 있다고 믿는 문학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문학이란 감동을 주는 것 이상이 아니다.⑮ 따라서 그의 비평관은 작품을 통해 받은 감동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창작하는 것이다.⑯ 그는 평론을 창작한다고 말한다. 이는 평론이 작품에 귀속되는 독후감이 아니라 독립된 장르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독립된 작품으로서 평론을 창작하니까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주장일 뿐이다. 창작이 실현되기 위해선 소박한을 벗어 던져야 한다.

그가 소박하다고 한 것은 비평의 가치관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인상주의자라고 선언한다.⑰ 실제로 그의 평론 <鄭芝溶論>이나 <詩人 金尙鎔論>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인상에 충실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인상주의 비평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작품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해설로 평론의 차원을 떨어뜨린다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그가 왜 스스로 인상주의자라고 했을까? 아마도 목적 문학인 프로문학과 연결시켜서 이해해야 할 듯 싶다.⑱

작품을 읽고 받은 감동을 인상의 측면에서 평론하였다는 것으로 그가 소박했다고 말하기에 충분하다.

평론가와 평론에 대한 학위논문이 거의 없는 한국의 연구 풍토가 점차 개선되고, 몇몇 뜻 있는 평론가들이 창작으로써 평론을 써서 발표하는 등, 평론의 홀로서기에 노력하여 연구 풍토의 인식이 바뀌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김환태의 비평관에 대한 보다 자세하고 논리적인 논문이 나오리라 믿는다.

김환태의 비평관은 두 가지의 상반된 입장에서 전개되었다. 즉 문학에 대해서는 감동이 영혼을 震憾시킨다고⑲ 하면서도 실제의 평론은 소박한 인상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


4. 나오는 말


창작문학은 분명 언어로 쓰여진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 없이 창작문학은 언어 너머에서 존재한다. 김수영의 자유가 그러하며 박두진의 수석이 그렇다. 그런 점에서 김환태의 비평 태도는 바람직하게 들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언어 너머로 가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언어를 이해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언어를 피해 가거나 논리를 따라가서는 결코 언어 너머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Aristotle, Poetics(시학), 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

Arnold P.Hinchliffe, The Absurd(부조리문학), 황동규 옮김, 서울대학교 출판부.

金煥泰, 나의 批評의 태도.

金煥泰, 文藝批評家의 態度에 對하여.

金煥泰, 批評文學의 確立을 위하여.

金煥泰, 藝術의 純粹性.

金煥泰, 作家·評家·讀者.

李源洋,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後期戱曲硏究, 서울大學校 獨語獨文科 박사학위논문, 1984.

林熒擇, 朝鮮前期의 漢文學, 國史編纂委員會編, 韓國史, 第11卷, 1974.

全鎣大 外, 韓國古典詩學史, 弘盛社, 1979.

하일지,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민음사.




① 서사극에 대한 자세한 이론은 서울대 독문과 박사학위 논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後期戱曲硏究, 1984>를 참고.

② Aristotle, Poetics(시학), 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 47쪽.

③ Aristotle, Poetics(시학), 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 74쪽.

④ Arnold P.Hinchliffe, The Absurd(부조리문학), 황동규 옮김, 서울대학교 출판부, 6쪽.

⑤ 李源洋,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後期戱曲硏究, 서울大學校 獨語獨文科 박사학위논문, 1984. 67쪽. 재인용.

⑥ 허구를 구축하면서 동시에 그 구축방법에 대해 말하는 소설.

⑦ 문학은, 특히 소설은 민족의 정체성(正體性)을 찾아 주는 메커니즘(mechanism)을 가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경마장 가는 길>을 본다면 영락없이 ‘외래종’이다. 그러나 한국문학사는 국외자(Outsider) 한 명 쯤은 충분히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

⑧ 하일지,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작가의 말, 민음사, 243쪽.

⑨ 全鎣大 外, 韓國古典詩學史, 弘盛社, 1979, 231 ~ 244쪽 참고.

⑩ 林熒擇, 朝鮮前期의 漢文學, 國史編纂委員會編, 韓國史, 第11卷, 1974, 252 ~ 253쪽을 보면, 朱子學의 도덕적 사회적 규범을 초탈한 인물을 그 시대의 ‘outsider’를 뜻하는 方外人이라고 하였는데, 그들의 문학 세계는 官僚的 문학과 處士的 문학에 입각한 주자학적 도덕주의 문학관을 극복하려 했다고 하였다.

⑪ 全鎣大 外, 韓國古典詩學史, 弘盛社, 1979, 250쪽. 재인용. (許筠, 「惺所覆剖藁」 券十二, 文部九, 文說.) 三代六經聖人之書 與夫黃老諸子家百語 皆爲論其道 故其文易曉而文自古雅 隆及後世 文與道爲二 而始有棘章棘句 以險辭巧語爭其工者 此文之厄也 非文之至 吾雖駑不敢爲也.

⑫ 孔孟의 道도 道요, 黃老의 道도 道요, 諸子百家의 道도 道라는 視覺은 各其 自身들의 道를 文章의 內容으로 하여 表現하면 좋은 文章이 될 수 있다는 論理가 成立된다.

⑬ 全鎣大 外, 韓國古典詩學史, 弘盛社, 1979, 262 ~ 319쪽 참고.

⑭ 개화기 이후 축적된 이 땅의 문학적 관습과 인식, 그리고 각각의 작품들로부터 얻어진 문학의 모형(模型)들로 규격화된 보이지 않는 ‘문학의 모습’을 문학적 경전이라고 볼 수 있다.

⑮ 김환태, 批評文學의 確立을 위하여, “다시 말하면 宣傳이나 敎化의 역할을 버리고, 사람을 감동시키고 기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⑯ 김환태, 文藝批評家의 態度에 對하여, “그는(비평가-연구자 주) 감동하고 표현하는 예술가입니다.” <作家·評家·讀者>, “그리하여 作家는 현실의 肖像畵를 그리며, 評家는 作品의 초상화를 그린다는 이 점에서 批評家는 또한 일종의 創作家이며 (……) 批評家도 또한 그의 비평에 있어서 讀者와 聽者 없이도 행복과 愉悅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⑰ 김환태, 나의 批評의 태도, “나는 批評에 있어서의 印象主義者다.”

⑱ 金煥泰, 藝術의 純粹性, “사상은 專制적이다.” “목적을 위한 手段이나 道具로써의 예술품이 가지는 社會的 機能은, 결코 진정한 예술품으로서의 社會機能은 아니다.”

⑲ 김환태, 藝術의 純粹性, “그러나 위대한 예술적 天才들의 作品은 감동의 旋風으로 우리의 영혼을 根底로부터 震憾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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