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섭식장애입니다. (13)

몸은 기억한다.

by 리솜


식욕 촉진제를 끊은 지 약 일주일. 80일 만에 생리를 시작했다. 왜인지 이번 달은 평소보다 월경통이 심하다. 오랜만에 겪어서일까. 문득, 생리통을 처음 느꼈던 날이 떠오른다.


사실 어릴 때의 난 생리통이 무엇인지 몰랐다. 중학교 2학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학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던 길.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던 푸르고 맑은 여름날의 오후였다. 집에 놀러 와 있던 친구와 얼른 만나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이유 없이 쎄하다고 해야 하나. 어딘가 소름이 돋았던 것 같기도 하다. 누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속도가 빠르지도 않았고 아직 나에게 무슨 짓을 하거나 말을 붙인 상황도 아닌데. 이런 걸 육감이라고 하는 건가. 단순히 가는 방향이 같은 사람은 아닌 듯한 느낌이, 그래 말 그대로 느낌이. 온몸으로 들었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고, 놀이터를 지나 우리 집 쪽으로 향했다. 일부러 태연한 체 걸어갔다. 혹시나 뛰면 쫓아올 수도 있으니. 바로 눈앞에 내가 사는 아파트 동이 보였다. 몇 걸음만 더 가면, 된다. 이제 한 번 돌아서 꺾기만 하면 되는데. 방향을 틀려던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발뒤꿈치를 세게 밟았다. 넘어졌다. 돌아보니 아까 그 남자다.

이후의 기억은 드문드문 끊겨있다. 과거를 회상할 땐 보통 영화처럼 장면이 이어지는데. 사진을 찍듯 단발적으로만 남아 있다. 그 사람은 내가 자신의 가는 길을 막아 기분이 상했다는 이해되지 않는 말을 했다. 나에게 잘못이 있으니 어딘가를 가야 한다고 요구했고, 어렸던 나는 어설픈 핑계라도 대서 도망쳐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는지 '가려면 엄마 허락을 받아야 해요'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 장면은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원래 알던 사람인 척 해."하고 명령하던 모습. 그대로 얼마간 걸어가다 아파트 주차장 앞에 멈춰 섰다. 그는 계속해서 어디인지 기억나지 않는 어떤 곳을 가자고 했고, 나는 허락받기 전엔 안 된다는 말만 속절없이 되풀이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칼로 찔러버리겠다는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장면은 그가 나를 강제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던 모습. 어린 나이였지만 밀폐된 공간에 잠시라도 갇히게 되면 무슨 일이든 당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있던 계단 난간을 붙잡고 온 힘을 다해 버텼다. 동시에 스친 생각은, 그때 나는 생리 중이었어서. 아주 만약 성폭행을 당하더라도 그의 성기가 안으로 들어오진 못할 거라고 여겼다. 아마도 어려서 누군가와 섹스를 하는 일이란 월경 중엔 결코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지. 다행히 그의 뜻대로 되진 않았다. 나는 아직도 그 장소를 지날 때마다 그곳에 묵묵히 자리했던 난간에 고마움을 느낀다. 다음 장면은, 어떤 이유로 다시 아파트 밖 주차장으로 나오게 된 건진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곳에서 아까와 같은 일이 반복됐다. 어딘가로 나를 데리고 가려는 그,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답하는 나.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가지고 있는 칼로 나를 찌르겠다며 손을 주머니 쪽으로 가져갔다. 그때 그의 얼굴이 선명하다. 눈엔 살기가 어려있고 입은, 웃고 있었다.

혹시나 아는 사람이 근처를 지나가진 않을까 간절히 비는 마음으로 그에게 들키지 않을 듯한 선에서 주위를 살폈다. 안타깝게도 그런 기적은 없었다. 이후 어쩌다 운 좋게 도망갈 틈새를 찾았는진 떠오르지 않는데. 동물적인 생존 본능이 나를 살렸나 싶다.


집에 도착해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누가 나를 칼로 찌른다고 했어."라는 말만 끊임없이 내뱉으며 눈물을 쏟아냈다. 집에 와 있던 친구는 돌아갔고, 부모님은 경찰을 불렀다. 그의 인상착의와 함께 내게 벌어진 일을 진술했지만 잡기 어려울 거라는 답을 들었다. 이유는 잘 떠오르질 않는데, 아마도 근처에 CCTV도 없었던 데다 내 몸에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었고. 육안상으로 보이는 상해도 없다 보니 어쩌면 경찰들 입장에선 큰 사건이 아니라고 여겨 그랬나 싶기도 하다. 이후로는, 아파트 근방을 순찰하고 온 경찰로부터 결국 찾지 못했다는 말을 들은 아빠가 화내던 장면이 이 날의 마지막 기억이다.


아니러니하게도 그날 이후의 나는 멀쩡했다. 그러니까, 제정신이 아니어야 맞는데 아무 일 없던 듯 평온한 일상을 살았다는 거다. 이사를 가지 않아 십수 년간 그 길을 매일 오갔으면서도 일말의 두려움조차 느끼지 못했다. 시간이 오래 흐른 20대 중후반 무렵, 상담소에서 이 일에 대해 꺼내기 시작하면서야 알게 됐다. 그날로부터 최소 몇 년 동안 부분 부분 단발적인 '해리 현상'이 내게 있었다는 걸. 희한하게도 그때 일을 회상하려 하면 머릿속에 하이얀 실뭉치들 몇십 개가 나타나선 둥둥 떠다녔다. 하루는 엄마와 같이 상담을 가게 된 날이 있었는데 나의 기억과 엄마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아 혼란스럽기도 했다. 엄마 말로는, 경찰이 돌아가고 난 뒤 내게 이 일에 대해 한번 더 물어봤었다고 한다. 그때 내가 "생각하기도 싫으니 물어보지 말라"며 크게 소리를 쳤다는데. 삭제된 장면이다. 이후 부모님은 일부러 단 한 번도 그날에 대해 묻지도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으셨단다. 있었지만, 없어진 사건. 우리 집에서 그 일의 정의는 그렇게 내려졌다.


그러나 감정은 어떻게든 분리됐어도 몸엔 새겨져 있던 걸까. 없던 생리통이 그즈음부터 말 그대로 "갑자기" 생겼다. 여느 날처럼 생리를 시작했던 어느 날. 학교 교실에 앉아 생전 처음 겪어보는 낯선 통증에 영문을 몰라 이 아픔이 뭔지 정의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이게 말로만 듣던 월경통이라는 건가? 왜 갑자기? 지난달까지만 해도 생리 중에 이렇게 아픈 적은 없었는데?

주위 친구들에게 증상을 말했더니, 반응이 정확히 생각나진 않지만. 아마도 내가 예상했던 만큼의 걱정이나 공감을 해주진 않았었나 보다. 불현듯 서러움이 울컥 올라온 나는, 수업시간 내내 꾹꾹 눌러 참다 쉬는 시간에 보란 듯 엉엉 소리 내며 울었다. 아프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사실 난 멀쩡하지 않다는 걸, 그저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걸 몸은 이미 알았던 걸까.


이제와 새삼 그 시절이 다시 떠오르는 건 이제라도 내 안에서 좀 더 선명해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거겠지. 덕분인지 때문인지 이번 달 생리통은 유독 평소보다 심하다. 나 아직 여기 있으니, 구해달라는 걸까.

그 울음을 따라 문장을 적어 내려가 본다. 아직 다독이기엔 나도 너처럼 여전히 울고 있어서. 이 위로가 차마 닿을 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주저앉은 네 곁에 가만히 멈춰 서선 등을 도닥이다 나지막이 한 마디를 건네본다. 무너져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