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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 Mar 31. 2022

괜찮다는 함정

노희경 작가의 '괜찮아 사랑이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중 하나인데, 이 드라마를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주제가 잘 드러나는 제목에 있다. 사랑에 불안하고 서툰 모든 이들에게 '그 또한 사랑이니 괜찮다’며 건네는 덤덤한 위로의 말이 좋았다.

'괜찮아'라는 말은 통상 긍정의 언어로 인식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의미로, 누군가를 위로할  또는 스스로에게 힘을 실을  주문처럼 외우기도 한다. 추워도, 바람이 불어도 괜찮다는 동요도 있지 않은가.  또한  '괜찮다' 말을 평소에 자주 사용해왔다. 그런 내게 긍정의 언어로만 여겨지던  ‘괜찮다 말이 묘하게 거슬리기 시작한  서점에 들른 어느  날이었다.


즐비한 '~라도 괜찮아', '~해도 괜찮아'라는 식의 에세이들.

이상하게도 '괜찮아 사랑이야'의 '괜찮아'는 괜찮았는데, 에세이들의 '괜찮아'는 괜찮지가 않았다.

둘 다 '괜찮다'라고 말하는 건 같은데 왜 다르게 느껴질까.

생각하던 그때, 마냥 긍정의 언어로만 여겨지던 '괜찮아'라는 말의 함정 아닌 함정을 발견했다.

괜찮다는 말은 우리의 감정을 다듬는 데 있어 뭉툭한 도구와 같아서

상처가 난 곳을 문질러 아물게도 하지만 자칫 섬세한 부분을 뭉개버리기도 한다.

유행처럼 번진 '괜찮아'의 향연은 내게 후자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완곡하지 못한 말로, 회피와 도피, 합리화, 무기력을 느끼기도 했다.


아무래도 괜찮다는 식의 책들이 베스트셀러 코너를 가득 채운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불만 많고, 까칠하고, 비관적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라는 말에 대한 나의 인상은 이제 이전의 그것과 달라졌다. 뭉툭한 도구만으로는 정교한 작업을 할 수가 없고, 특별함은 디테일에서 나온다 믿는 나는 괜찮다는 말로 나를 둥굴리기보다 괜찮지 않은 나를 마주하고 정교한 도구로 나의 모양을 섬세히 다듬고 싶다. 괜찮다는 말이 불편해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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