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을 동경하는 아직은 맥시멀리즘인 존재
책을 트럭 단위로 싣고 다니는 아버지와 그에 못지 않은 취미와 살림용품을 보유한 어머니 밑에서, 경제학적으로 비합리적인 삶을 살면서 체크카드와 신용카드를 골고루 잘 돌려쓰던 나는 미니멀리즘과는 영 반대되는 삶을 살아왔다.
품목은 생애주기별로 달라졌다. 미취학 아동 시절에는 동화책과 전집이 많았고, 10대 시절에는 내가 사랑했던 모 아이돌 오빠의 사진과 앨범, 그리고 현해탄 너머의 오빠도 사랑하게 되어 다른 언어로 된 앨범과 굿즈를 사모았다.
20살에는 백화점에서 100만원 어치의 화장품을 한 달 만에 사버리는 바람에 아버지께 불려가서 카드내역서와 함께 꽤 엄한 훈육을 받았다. ‘이소야, 네가 이런 소비를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경제적 능력이 좋아져도, 이렇게 백화점에서 사치하는 것은 결코 좋지 못한 소비야. 한 번 네가 하는 이 구매들이 네 인생에서 진정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보고 반성해 보거라.'
- 이 얘기는 당시 내게 큰 충격적인 일이었고, 처음으로 나의 소비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허나 훈육이 효과가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부모님께 의지해야 했던 대학생때까지였고, 직장생활을 하게 되어서는 스멀스멀 옛날의 못된 소비습관이 나오기 시작했다. 돈은 벌어도 막상 문화생활에 투자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어서 옷과 먹을 것에 돈을 쓰기 시작했다. 온갖 맛집과 카페, 아울렛과 백화점을 다시 돌아다녔고, 그것은 아직 제대로 깨닿지 못한 몹쓸 외로움에서 비롯되었다. 점차 물건은 쌓여가고 택배박스는 고이 모셔만 놓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여기에 직장생활의 지역이 지방에서 본가로 옮겨가고, 온갖 사모임을 하며 1주일에 6일을 참석하는 건강함을 발휘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활기차고 사람이 그리웠던 것 같았다.
결정적인 문제는 ATM출금을 하는데 잔액이 부족하다는 경고가 떠서 돈을 출금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분명히 돈을 꾸준히 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잔액이 없다니, 이 무슨 끔찍한 아이러니인가. 깜짝 놀라서 혹시 해킹인가 싶어서 통장내역서를 다 검토했는데 분명 내가 쓴 돈이 맞았다. 커피값 4천원, 저녁 모임참가비 2만원, 원피스 10만원, 여행 MT비 5만원....모든 것이 다 사교활동이라고 애써 외면하며 쓰던 돈들이었고, 내가 잔액 확인도 않고 긁어댄 소비들이었다.
충격을 받고 회사 자리에 돌아와서 이번 모임은 못 가겠다고 다급하게 단톡방에 채팅을 보내고, 한동안 원인을 분석하는 데에 집중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러다간 사회인으로서 자립은 끝장이라는 두려움의 파도가 몰려왔다.
한편으로는 모임에서 소외될까봐 걱정됐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아무리 노는게 좋다지만 파산은 다른 문제가 아닌가? 급히 주에 5-6번 나가던 모임횟수를 1-2번으로 줄이고, 그 외 쓸데없이 나가는 소비항목들과 개선방법을 찾아보았다.
커피는 카누를 타 먹으면 되었고, 점심식사도 다행히 탕비실이 있으니 조금만 더 고생해서 도시락을 싸면 되었고, 화장품도 바르는 종류를 조금 줄이고 백화점 브랜드에서 저렴이 대체로 알아보았다.(당시엔 다이소도 없어서 올리브영이 최선이었다. 그 때 다이소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옷들도 천계영 작가님의 웹툰 [드레스코드]를 보며 갖고 있는 아이템으로 활용하는 법을 익혔고, 미용실도 파마나 염색보다는 한 번 단발로 확 잘라버리고 최대한 파마나 염색 시술을 줄였다.
무엇보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빈도를 줄이는 데에 집중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외모에 대해서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고 더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서 꾸밈 비용에 적지 않은 돈을 쓰곤 했다. 그래서 이성들에게는 호감을 받고, 동성들에게는 칭찬을 받았다.
허나 그래도 마음이 허했다. 왜냐하면 어딜 가나 나보다 예쁜 사람들은 당연히 있었고(지금 생각하면 각각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었건만, 세간의 평가-특히 내가 관심있는 남자들의 눈이 가는 곳을 주시했었다. 다 쓸모 없건만...), TV에는 아름답고 잘생긴 사람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들을 흠모라는 위선을 담아 따라하려 했고, 그곳에 나다운 나는 없었다. 그저 이쁘다고 칭찬받는, 그리고 그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부질없고 불쌍한 존재가 있었다.
그렇게 노력했건만 당시 만나던 사람에게 우습게 차이고, 경제력으로 자립하려던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지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나 자신에 대해 곰곰히 성찰을 하고자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하며 방법을 찾아보았다.
여러가지 사유 끝에 나온 결론은, 세상의 온갖 부정적인 잡념이나 편견에서 벗어나며, 스스로의 능력을 키우고 차고 넘치게 가진 것을 비우며, 그럼에도 오롯이 갖고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며 여백을 즐기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예쁘지 않은데, 가진 게 없는데 나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대로는 싫었다, 그래서 속는 척 비움을 따라해보았다.
화장품을 기초 화장품과 선크림을 제외하고 색조 화장품을 버리기, 옷도 회사생활과 깔끔한 외출복과 실내복을 빼고 과하거나 야한 것들은 버리기, 잡화나 소모품들도 유통기한이 있는지 살피고 유통기한이 지나면 당연히, 그리고 영영 쓸 것 같지 않은 약간의 아쉬운 물건들도 과감히 버리기, 사진이나 편지도 외장하드나 드라이브에 저장하고 인사를 한 뒤 버리기를 시작했다. 50리터 봉투가 서너개는 나온 것 같았다, 그리고 옷들은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하여 그 해 연말정산 기부금 공제에 쏠쏠하게 반영하였다.
버리고 나니 허전하고, 이게 맞나 싶었지만 남은 물건들을 살피며 찬찬히 바라보니 생각보다 훨씬 후련했다. 미니멀리즘 책을 보면 정말 생활이 영위될까 싶을정도로 가볍게(극단적인 예시로는 이민용 트렁크 하나로 사는 사람이 있더라) 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면 또 채울것을 알기에 내 기준 최대한의 미니멀을 적용했다. 한때 유럽여행가서 사온 기념품들과 엽서, 꽤 오래 입을 것 같을 아우터와 좋은 품질의 옷들, 부모님이 졸업식때 사주신 처음이자 나의 마지막 명품백, 그리고 마지막까지 포기못한 책들만 남기고 내 방 한칸이 제법 여백의 미를 발휘했다. 오롯이 내가 원해서 남긴 물건들은 내 취향과 족적을 대변했고, 그제서야 나는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을 시작으로 나름의 규칙을 세웠다.
더 이상 예쁘다는 칭찬은 못 받을지언정 깔끔하게 하고 다니자, (이것은 가끔 선을 넘나들지만) 회사 출근할때는 너무 프리한 캐주얼로는 다니지 말자, 이사를 제법 다니니 가구나 잡화도 되도록 처분이 쉬운 걸로, 그리고 다른 물건을 구매할 때도 한두번 더 고민해 보고 사자-이런 법칙을 스스로 세운지 벌써 5년 가까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책은 여전히 많이 사서 영 아닌 것은 알라딘에 가거나 굿윌스토어에 가서 기부금 처리를 하고 어김없이 다른 서점을 가고, 식량도 혼자가 아니라는 핑계로 양을 넉넉히 사서 소분하면 된다라는 여전히 타협이 덜 된 분야가 있지만 그래도 내 안의 소비욕구는 많이 떠내려보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내가 원하는 것이 도덕적이고 법적인 규율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기-이 두 가지를 행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나 자신다운 길을 찾지 못했다고 고민된다면 나는 감히 권한다, 내가 갖고 있는 물건 중 진짜 이건 버리면 우울증 걸릴 것 같고 꿈에도 나올 것 같은 물건만 한 박스 채워보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려보자. 울면서 다시 사면 어쩔 수 없는 건데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낄 것이다. 미니멀을 시도했다가 다시 돌아가도, 그 또한 나인 것이다. 그런 나 자신을 받아들이면 된다.
이는 여전히 가계부에 꽤 많은 소모품비를 기록하지만, 그래도 옛날에 비해 나아졌다고 자부하는 (구) 1급 맥시멀리스트->(현) 미니멀 지향의 맥시멀리스트가 과감히 추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