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공간에 존재하는 비밀번호 같은 시간들
오래 알고 지낸 교수님이 집이 너무 멀어 학교 근처에 아지트를 마련하셨다고 저녁 식사 초대를 하셨다.
교수님의 새로운 아지트는 24층이다. 엘레베이터에서 내리니 왼쪽 집은 아직 입주를 하지 않았는지 두꺼운 골판지 보양재가 그대로 문에 붙어 있었고, 오른쪽 집 문은 보양재를 뗀 깨끗한 상태였다. 당연히 오른쪽 집이거니 생각하고 현관문 옆 벨을 눌렀는데 누구세요? 하는 여자 분의 목소리가 들린다. 교수님이 아니었다. 설마 그럼 왼쪽 집인가? 싶어 반신반의하며 왼쪽 집의 벨을 누르니 교수님이 반갑게 문을 열어 주신다.
와, 현관 문 보양재를 뜯지도 않고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실 수 있다니! 정말 깜놀이었다.
입구에서 놀란 가슴은 집 안으로 들어서자 급 안정되기 시작했다. 거실에 오늘 배송되어 왔다는 소파가 너무 아늑해 보였기 때문이다. 소파 뒤 책장도 멋졌고,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어 왠지 평소 단정하신 교수님 성격과 많이 닮았네 하고 느꼈다.
주방 아일랜드 식탁에 낯익은 사진 액자가 눈에 띈다. 마크가 쿠바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냉장고에도 마크의 사진(원래 2023년 1월 달력이다.)이 붙어 있다.
교수님은 우리가 온다고 하니까 일부러 찾아 꺼내 놓은 것이라고 농담 삼아 말씀하시지만, 설령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너무 고맙고, 감동적이지 않은가?
근처 중국집에서 1차 양장피, 탕수육, 누룽지탕 순삭 후 아지트로 돌아와 (인천에서 온 다른 교수님이 어렵게 주문한) 방어회 한 접시, 편의점에서 산 군고구마, 새우(명인이 만든 과자 비슷한 것), 와인, 아이스크림, 커피 등을 두루두루 먹고 마셨다.
매운탕은 솜씨 없는 내가 괜히 손을 대는 바람에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너무 많이 넣었다) 아무도 한 숟가락 이상을 떠 먹지 않고 손을 놓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2026년이 이제 딱 하루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