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툴이 쏟아지는데, 나는 제자리라면

요즘 근황과 AI를 쓰면서 느끼는 생각들

by 앨리스


오랜만에 글을 쓴다. 그동안 CRM 이야기만 하다가 갑자기 AI 얘기를 꺼내면 좀 뜬금없을 것 같긴 한데.


요즘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생각들이 있어서, 정리할 겸 편하게 써보려고 한다. 혹시 CRM 글을 기다리셨던 분들은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요즘 AI 툴이 쏟아진다.

Black & Pink Grunge Coming Soon Instagram Post (웹사이트).png 뒤르켐이 말한 무규범(無規範) 상태를 표현하면 이런 느낌일까

매일 누군가 "이거 대박"이라며 링크를 보내온다. 나는 그것을 저장한다. 저장만 한다. 저장 폴더가 비대해지는 속도와 내 생산성이 높아지는 속도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어쩌면 반비례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여전히 ChatGPT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프롬프트를 복사하고, 붙여넣고, 결과를 받고, 다시 복사하고. 이게 AI를 잘 쓰는 건가? 프롬프트를 잘 쓰면 AI를 잘 쓰는 거라고들 하던데, 나는 프롬프트를 열심히 쓰고 있을 뿐 뭔가 잘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


회사에서는 툴비를 지원해준다.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헬스장 등록비를 내주면 직원들이 건강해질 거라고 믿는 것처럼. 우리는 등록만 하고 안 간다. 다들 알면서 모른 척한다.




가짜 일이 있고 진짜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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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일은 정말 바쁘다. 손이 움직이고 화면이 바뀌고 시간이 간다. 그런데 끝나고 나면 뭘 했는지 모르겠다. 진짜 일은 조용하다. 생각하고, 결정하고, 방향을 튼다. 남들 눈에는 멍때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산업화 시대에 우리는 가짜 일에 특화되었다. 분업이라는 이름으로. 나사를 조이고, 서류를 넘기고, 숫자를 옮겼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 덕에 세상이 돌아갔고,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 다만 그 과정에서 포기한 것이 있다.


인간은 원래 창조하는 동물이었다. 놀이하는 동물(Homo Ludens) 이었다. 쓸데없는 걸 상상하고, 말도 안 되는 걸 시도하고 실패해도 다시 해보는. 그런데 분업 시스템 안에서 그건 사치가 되었다. 효율 앞에서 창의성은 늘 뒷전이었다.



그런데 지금, AI가 분업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반복되는 일, 규칙이 있는 일, 패턴이 보이는 일. 그런 건 AI한테 시키면 된다. 그러면 나한테는 뭐가 남는가? 시간이 남는다. 생각할 시간. 이게 맞나 의심할 시간. 왜 하고 있지 물을 시간.

그런데 우리는 그 시간을 안 쓴다. 관성 때문이다.


뇌는 가장 편한 길로 가려고 한다. 어제 한 대로 오늘도 하는 게 제일 쉽다. 새로운 걸 배우고, 자동화를 세팅하고, 업무 방식을 바꾸는 건 귀찮다. 당장 급한 일이 있는데 그런 걸 언제 하나. 그래서 안 한다. 그렇게 1년이 가고 2년이 간다.


문제는 그 차이가 복리로 쌓인다는 거다. 매일 30분씩 아끼는 사람과 매일 30분씩 반복하는 사람. 1년 후에는 완전히 다른 곳에 서 있다. 그리고 그때 가서 따라잡으려면 이미 늦다.



그래서 나는 다니던 회사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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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M 마케터라는 직함도, 익숙한 업무 프로세스도, 큰 회사의 안정감도 내려놓았다. 아쉬웠다. 솔직히 무서웠다. 정해진 일이있다는 안정감, 동료들과 점심 먹으며 투덜대던 일상, 예측 가능한 일상. 그런 것들을 잃는 게.


그런데 거기 있으면 난 계속 그 방식대로 일하고 있을 것 같았다. 관성이 너무 강했다. 회의하고, 보고하고, 캠페인 세팅하고. 손은 바쁜데 머리는 멈춰 있는 느낌. 이대로 2년, 3년 더 가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끊었다. 나는 나를 강제로 던졌다.




나는 요즘 내 일을 낯설게 보려고 노력한다.

이 일을 왜 내가 하고 있지? 이걸 매번 손으로 해야 하나? 이 과정을 AI한테 넘기면 어떻게 될까? 처음엔 시간이 더 든다. 그리고 잘 안된다. 나도 노력해서 겨우 하려고 하는 중이다. 세팅하는 데 한 시간, 오류 고치는 데 한 시간. 그냥 내가 하면 30분인 일인데.


스크린샷 2026-01-19 오후 6.13.58.png 요즘 자주 쓰는 AI IDE antigravity, 대부분 이걸로 로컬에서 자동화 프로그램을 만든다

그런데 그 한 번의 세팅이 앞으로 백 번의 30분을 돌려준다. 나는 그 시간에 다른 걸 할 수 있다. 진짜 일을 할 수 있다. 시간이 아껴진다는 내적동기가 생기면 그 때는 누가 말려도 알아서 한다. 이 과정에서 지금 회사 대표님의 가르침이 매우 컸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신기한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AI 말고, 나를 대신해서 지루한 일을 해주는 AI. 나는 그쪽에 관심이 있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새 툴 소식을 쫓아다니는 것보다, 내 일 하나를 제대로 자동화하려고 요즘 노력한다.

(아직 미정비 상태인 우리회사 블로그, 다양한 자동화 사례들이 작성되어있다 : https://retn.kr/blog/)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도 새로운 게 나왔다고, 이전보다 성능이 더 좋다고, 남들은 다 쓴다고, 나만 모르는 것 같다고. 중요한 건 내 일이 대체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다. 대체할 수 있는 건 대체하고, 대체할 수 없는 건 왜 대체 할 수없는지. AI 와 함께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해야한다.


다만 정말 불안해야하는 건 오늘 하루가 바쁘다고 미루고, 내일도 바쁘고, 모레도 바쁘다는 내 자신이다.

그렇게 영영 안 하게 되는 나 자신.



그러니까 지금 해야 한다. 조금씩이라도. 어색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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