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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네클로시 Mar 29. 2023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전시]

[Review] 예술가를 사랑한 사람들

한 부부는 그들의 재산으로 거액의 예술 작품들을 사들여 고대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아우르는 컬렉션을 완성해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은 루드비히 부부의 컬렉션 중 일부를 보여준 전시다. 피카소를 필두로 20세기 화가들의 작품을 연결 지어 공간을 구성했다. 




피카소  


아마도 중학생 때 미술 수업의 과제로 피카소 전시회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동생이 그린 것 같은 그림들과 뒤틀린 얼굴과 강한 색감으로 뒤덮여있는 몸을 보면서 왜 피카소의 작품에 열광하는지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 피카소를 만난 이후로, 어떤 그림이든 멋진 액자에 끼여 비싼 대관료를 자랑하는 서울 한복판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으면 그게 곧 예술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전시회를 가기 전 피카소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지렁이 기어가는 듯한 터치와 뒤틀린 얼굴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는지 참 궁금했다. 그리고 분명 직접 보게 된다면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라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 전시를 둘러보았다.


정작 별 감흥 없이 이어지는 작품들과 충격의 복잡한 여자관계까지, 그렇게 나에게 박힌 피카소에 대한 이미지는 긍정적이지 못했다.


오랜만에 피카소 작품들을 이번 전시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번엔 그를 향해서 기존과는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방문했고, 오늘의 피카소는 자신에 대한 소개와 자기 작품을 자랑하는 대신 걸출한 20세기 거장들을 소개해주었다.  




20세기 거장들  

20세기 거장들이라고 압축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하고 강렬한 개성을 지닌 화가들로,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작품들이 많다. 그리고 많은 작품에서 고통과 함께하는 예술이 떠올랐다. 거친 표현, 직선, 색, 그림의 위치까지 모든 요소가 고통을 표현한다고 느껴졌다. 격변하는 사회에서 혼란스러운 시대상과 평범한 사람들의 위태로움을 묘사한다는 점은 거장들의 공통 분모였다.


추방표현주의의 아르 브뤼는 비전문가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단순하지만, 대담한 표현의 화풍을 살린 회화다. 선과 물감 덩어리가 유기적으로 혼합된 작품은 분명히, 명확히 나눠진 걸 좋아하는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마음의 안정보다 자극을 더 많이 받았다.


그런 특징 때문에 오히려 오랫동안 전시를 즐길 수 있었다. 도무지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을 것 같은 작품들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엇을 표현한 걸까, 어떻게 그린 걸까, 이게 눈인지 입인지, 사람인지 곰곰이 보면서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궁리하고 나서 작품명을 읽고, 부연 설명을 읽으면서 유추한 내용이 맞는지 따져보면서 작품을 바라보았다.


어릴 때 모든 작품을 부정적으로 쳐내던 전시회장에서의 나와 비교해 조금이라도 성장했다는 걸 새삼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작품들을 연달아 감상해나갔다.

 

 



루드비히 부부  


전시회를 보면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상상하지도 않았던 인생의 롤모델, 이상향을 찾았다. 부부가 힘을 합쳐 그들의 예술적 취향을 꾹꾹 눌러 담은 컬렉션을 완성하는 것은 언제 들어도 심장을 떨리게 만든다. 미술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재력, 마음이 맞는 평생의 동반자까지 완벽한 삼각을 이루다니.


결국 그들이 모은 컬렉션을 기증한 덕분에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세기의 작품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영향력이 전 세계에 펼쳐져 돈을 포함한 그들의 노력의 가치가 증명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의 끝판왕 중 하나라고 감히 말하며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예술과 삶


팝아트 부문의 작품들을 감상하다가 어느 댄디한 분께서 말을 거셨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2명 복제된 작품을 보다가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그분이 해주시는 작품에 대한 설명도 잠깐 듣게 되었다. 알고 보니, 말씀해주시는 친절한 태도를 지니신 이 미술관의 관장님이셨다. 전시회 오픈 2일 차에 방문했던지라 관람객의 반응이나 부족한 점들을 둘러보고 계셨던 듯했다.


그 옆에 전시되어 있던 앤디 워홀의 <페터 루드비히의 초상화>를 보며 내가 선망하게 된 루드비히 부부에 대해서도 물어보기도 하면서 짧지만, 좋은 기억을 갖게 되었다. 이 미술관을 처음 방문했을 당시,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그림들을 만나 한동안 휴대전화 배경 화면으로 해둘 정도로 마음에 들어 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마이아트뮤지엄에 오면 나의 영혼에도 따스한 예술의 햇빛이 들어오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참 인상 깊었다. 평생에 걸쳐 모아온 작품들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기증한 루드비히 부부와 그 컬렉션을 한국에 잠시 들여와 많은 사람이 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시는 관장님까지, 모두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예술은 빨리 흘러가는 나의 생활에서 잠시 바람처럼 다가와서 나를 홀렸다가 사라졌고, 이제 다시는 가까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열정을 다해 좋아했던 시기를 거쳐 책이나 공연을 보아도 잘 감흥이 느껴지지 않은 게 오래였기 때문이다.  


요즈음, 다시 예술이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그래도 점점 예술이 나에게 다가오고, 나도 예술에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마음이 확고해졌다.


내가 이래서 공연을, 전시를 좋아했었지. 다시 그 설레기도 하면서 시원하고도 뜨거운 감정을 온 맘 다해서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나도 꾸준히 예술을 사랑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고 언젠가 루드비히 박물관에 직접 가 하루 종일 작품들을 탐구해볼 것이라는 다짐을 하며 충만한 하루를 마쳤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4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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