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따뜻한 마음과 설렘
봄부터 다양한 음악 페스티벌이 열린다. 나는 딱히 음악 취향이 분명하지 않고, 아는 아티스트보다 모르는 아티스트가 더 많기에, 여러 음악인들이 연달아 나오는 페스티벌을 간 적이 몇 없다. 학교 축제에 여러 가수들이 와도 별 관심 없었기 때문에 가지 않았다.
내가 페스티벌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동생 때문이다.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동생의 티켓팅을 도와주며 인디 밴드, 락 밴드들을 알게 되었고, 동생이 집에서 연주하는 곡들을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다. 그리고 페스티벌 아티스트 라인업에 적혀있는 익숙한 이름들을 보며 페스티벌에도 눈이 갔다.
그렇게 작년 여름 처음으로 집 근처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 가보았고, 무척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내년 봄이 되면 여러 페스티벌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그렇게 24년 봄의 첫 페스티벌, 사운드베리 페스티벌에 가게 되었다.
<2024 Soundberry Theater>
나의 음악 폭은 좁다. 우선 잔잔한 노래를 좋아한다. 안정된 발라드 장르를 좋아하며, 쿵쿵대고 중독성 넘치는 빠른 비트의 K-POP 아이돌 노래는 거의 잠을 깨우는 노동요 정도로 간혹가다 듣는다. 갑자기 어느 아이돌 멤버에게 눈이 가면, 그 그룹의 노래들을 몰아서 며칠 동안 듣기도 한다. 뮤지컬에 한창 빠져있을 때는 뮤지컬 넘버만 반복해서 들었다. 그렇게 나는 음악 취향이라는 것이 분명히 정의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나는 다양한 장르에 열려있다.
누구보다 페스티벌에 적합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면서 기대했다. 이번 페스티벌에선 한 아티스트가 다양한 장르를 해내기도, 아티스트마다 다른 장르를 뽐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모든 무대가 좋았다. 카메라로 찍기보다 눈과 마음에 담고자 했다. 순간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그저 아티스트들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더 잘 지켜보고 싶었다.
매일 어두울진 몰라도
외롭지는 않아
내가 숨 쉬는 이곳에는
너를 닮은 꽃 한 송이가
시들지 않고서 여전히
내 곁에 함께 있어
외롭지는 않아
<야행성>
노래를 들을 때, 가사에서 <어린왕자>가 떠올랐다. 몽환적이면서도 노랫말로 나를 감싸주는 노래에, 밤에 혼자 별을 보러 간다면, 이 노래가 생각날 것 같았다.
밴드 멤버들이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대에 오랜만에 섰기에 그들의 떨림과 설렘이 동시에 느껴졌다. 살짝 떨리지만, 공연장에 있는 수많은 관객에 누구보다 무대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셋리스트 하나하나 열심히 해냈다.
동생이 좋아하는 밴드였기에 몇 번이고 그들의 공연을 가고자 티켓팅을 했고, 그들의 음악을 꽤 오랫동안 들었다. 정작 공연 전 코로나에 걸리는 등 여러 우연한 상황들로 인해 실제로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왜 밴드의 음악들은 공연장에 직접 와서 들어야 하는지 깨달았다.
기타, 드럼, 보컬 여러 악기들의 합주는 꼭 내 귀로 직접 꽂혀야 진가를 알 수 있었다. 너드커넥션의 락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감성이 담긴 인디 브리티쉬 팝을 더 더욱 좋아한다.
In this place we live in
In this air we breathe in
What do we look for
Where are we heading
Where are we going
Where are we now
So, what's the way we should take
Oh, what's the way we should
<Where are we>
정말 말그대로 멍때리는 듯이 그저 쳐다보며 들을 수 밖에 없던 곡이다. 그들의 지향점이자 소개글 '어지러운 세상, 따뜻한 음악'이 음악으로 전달되었다. 우리는 어디있을까,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일까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들의 음악으로 이 고민의 어려움이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겠구나, 모두가 그런 어려움을 겪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새삼 위안을 받았다. 공연 시간 내내 긴 멘트 없이 차곡차곡 자신의 곡들을 눌러 담아 전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할 즈음, 하현상의 노래들이 어디선가 나의 귀에 들어왔다. 그만의 아프게 느껴질 만큼 애절한 목소리와 선율들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하현상의 곡들을 좋아했고, 힘든 밤엔 하현상의 곡들을 찾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너는 몰랐지 네 안에 담긴
모든 걸 삼키는 너를 피해 달아나는 걸
너도 그랬지 아주 조금씩
그 누구도 널 알아주지 않는 매일에 죽어가는 걸
떠나지 않을게 다치지 않게
떠나지 않을게 나도 그래
떠나지 않을게 지치지 않게
I feel your pain
<Pain>
기타와 하현상만의 목소리로 노래를 이어간다. 나지막이 부르고, 기타 솔로 그리고 후반부 밴드가 들어와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나에게 혼자 아픔을 느끼지 말라고 진심을 전하고 기타, 베이스, 드럼 합쳐져 그 진심이 더 크게 나를 울린다.
<파도>의 마지막은 기타로 마무리한다. 그 노랫말 없는 공간에서 무엇보다 위로를 받았다. Samed>와 모두 건반과 함께하며 나에게 더 깊게 다가왔다. 다양한 악기와 구성으로 곡 하나하나 소중히 공연을 채워준 덕분에, 페스티벌에 와서 여기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해졌다. 부서질 듯 노래하는 아티스트 하현상은 나를 대신해서 울어준다. 그런 그의 음악을 계속해서 듣고 싶다.
학생일 때 로이킴의 노래들을 좋아했다. <봄봄봄>, 처럼, 세상 걱정이 없어지는 노래를 자주 들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본 로이킴은 특별하게 발라드에서 빛났다.
그의 발라드를 들어보면, 그렇게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관객들에게는 꽉 찬 감정들을 전한다. 그저 뱉어내는 노랫말만으로도 나를 풍성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그런 힘과 이야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티스트들은 모두 무대 위에 올라 노래를 부를 때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중간중간 다음 곡을 준비할 때, 작업실에서 하루 종일 곡 작업을 하니 힘들었는데 이렇게 관객을 만나니 좋다고 말도 하였지만, 내가 직접 보는 그들도 무대 위에서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했다.
그들을 보며 나도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진심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결과물을 보여주는 그들에게 약간의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고, 나도 진심으로 멋지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행복하게 노래 부르는 아티스트와, 그런 아티스트를 응원해 주는 많은 관객 사이에서 많은 힘을 받았다. 오랜만에 공연이란 이런 깊은 에너지를 전해주는 예술임을 다시금 느끼며, 페스티벌이라는 새로운 공연 장르의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