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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호 Apr 21. 2019

갈마의, 갈마에 의한, 갈마를 위한

Sundara Karma [Ulfilas' Alphabet] (2019)

선다라 카르마입니다.

 망각이 필요하다. 기지(旣知)가 높은 밀도로 존재하는 상태에서 변동을 기하겠다면 망각은 선결 조건이다. 혹은 내려놓아야 한다. 너무 많은 것을 든 손이 새로운 것을 쥐겠다면 손바닥을 선점하고 있는 것들에게서 점유 포기의 의사를 받아내야 한다. 새로움을 명확하게 취하겠다는 창작은 과거를 일정량 해체하는 데서 출발한다. 지난날을 견고하게 구성했던 요건들은 변화의 의도 하에 잔재가 돼야 한다. 쇄신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작품은 창작자가 지난 이력과의 결속을 무력하게 할수록 반갑다. 혁신의 가능성은 작가가 옛 경험을 이념처럼 여기지 않음으로써 발아하고, 자명성을 전제하지 않음으로써 효력을 확보하며, 반기억을 작용하게 함으로써 더 나은 위치로 나아간다. 그 지점에서 비움은 하나의 사명이 된다. 비움으로써 자연스러운 변화에 도달할 수 있다는 옛 말은 이 맥락에 끌어오기에 너무 거리가 멀고 시기가 오래됐는가. [도크]와의 인터뷰에서 선다라 카르마(Sundara Karma)의 프런트맨 오스카 폴락(Oscar Pollock)은 [Ulfilas' Alphabet]을 두고 “자신들이 겪은 자연스러운 변화를 반영한 작품”이라고 얘기했다. 앞선 관점에 의지하자면 [Ulfilas' Alphabet]은 아마 창작 과정에서 망각 또는 폐기를 잘 실현한 작품이겠다.


 그렇다면 선다라 카르마가 내려놓았을 것은 무엇인가. 거꾸로 얘기해 이들이 본래 가졌던 것은 무엇인가. 전작 [Youth Is Only Ever Fun in Retrospect]를 가져오자. 그 즈음에서 밴드가 내비쳤던 사운드는 1980년대 아레나 록의 인디 록 풍 변형 모델이었다. 음장 근방을 가득 채우는 사운드, 그것만으로는 모자라서 사방으로 힘 있게 뻗어나가 버리는 사운드가 바로 이들의 주된 증상이었다. 그 안에는 어떻게든 정박에 반드시 거대한 울림을 일으키는 드럼이 있었으며, 둔중한 잔향을 자랑하는 베이스가 있었다. 이 둘은 리듬 파트에 어린 에너지의 표징들이리라. 또 알리 베이티(Ally Baty)의 리드 기타는 밴드의 음악이 빽빽한 사운드를 표하는 데 있어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 주요 발화 중 하나였다. 빅 컨트리(Big Country)와 유투(U2), 심플 마인즈(Simple Minds)가 통용됐던 옛 방식처럼, 알리 베이티의 기타는 음을 촘촘하게 배열하거나 리드미컬하게 찰랑이며 후경을 재차 점거해댔고, 때로는 거친 톤을, 때로는 큼지막한 볼륨을 머금은 채로 음장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그런가 하면 선다라 카르마의 사운드 메커니즘을 이루는 다른 주성분, 오스카 폴락의 가창은 어떠했는가. 음계의 높은 층에서 쉬지 않고 선율과 언어를 날카롭게 뱉어내며 현장을 장악하는 보컬은 담대한 아레나 사운드에 적확히 상응하는 화언이었다. 요약하자면, 선다라 카르마가 음악에 품었던 것들은 대부분 상당한 규모와 세기를 지닌 것이었다.


Sundara Karma - The Changeover (Official Video)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Ulfilas’ Alphabet]에서 선다라 카르마는 지난날 자신들의 자아를 만들었던 특성 다수를 탈거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헤이든 에반스(Haydn Evans)의 드럼은 이 앨범에서 더 이상 정박에만 묶여있지 않다. 비트 각지에 투입한 오프비트는 전작에서의 정직한 스타일을 유연하게 전복한다. 여기에 잔향마저 줄어 드럼에서는 예와 같은 직선성과 부피감을 만나기 쉽지 않다. 더불어 선다라 카르마의 음악을 계속 기타 록이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기타의 비중은 여전히 상당함에도, 밀도 높은 질감과 공격적인 리프로 사운드의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기존의 대담한 양태는 존재를 줄였다. 알리 베이티의 기타는 다른 파트의 등장을 위해 무대 최전선으로부터 꽤나 물러난 모양새다. 이와 동시에 오스카 폴락의 보컬 퍼포먼스는 느슨하다. 끊임없이 음절을 쏟아내며 멜로디를 긴박하게 구성하고 가창에 완력을 끌어오던 프런트맨의 옛 모습 역시 형상을 적잖이 감췄다. 그 결과, 한 때 사운드의 모든 구성 요소가 적극적으로 한 데 나서서 음장을 빈틈없이 구축했던 아레나 스타일도 이제 [Ulfilas’ Alphabet]에서 유효성을 다수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앨범은 결별의 장이기도 하다. 선다라 카르마는 지난 작품의 대종을 이뤘던 언어를, 지난날 대범하게 완성했던 자신들의 예술 전형을 하나의 내력쯤으로 과거에 덮어둔다. 사운드에서 일어나는 대규모의 탈락은 변화의 징후를 자처한다.


 변이를 전제하고서 창작에 착수한 작가들은 자신이 조성한 공백을 결코 무미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망각이나 폐기를 적확히 이행한 다음에는 새로운 구성물을 선별하는 작업에 치열해야 하겠다. 그 지점에서 선다라 카르마와 [Ulfilas’ Alphabet]은 첫 번째 성과를 거둔다. 이들이 적확히 발탁해낸 자질들 덕분에 우리는 [Youth Is Only Ever Fun in Retrospect]와 [Ulfilas' Alphabet]를 완벽히 구별할 수 있다. 한 때 완전히 기타 중심으로 엮였던 이들의 오늘에는 (조금은 덜 어두운) 퓨쳐 아일랜드(Future Islands) 식 신스팝 성분이 들어서 있다. 곡을 이끄는 상당한 선율감은 이제 신시사이저에도 배치된다. 혹, 주제 선율을 위한 매개로 기능하지 않고 앰비언스를 확장하는 역할에만 머무르는 경우에도 신시사이저는 전작에 다수 배치됐던, 흩부옇고 다소 모호한 질감만을 내보이지 않는다. 네오 사이키델리아의 빈티지한 스타일링에서부터 스트링, 윈드 풍의 음향에 이르는 다양한 양태가 건반을 위한 새로운 질료로 적용된다. 더 나아가 앨범에서는 갖은 외관을 취하는 신시사이저뿐 아니라 팝 록의 스타일에서 자주 마주했던 피아노 형식도 설치된다. ‘Greenhands’와 ‘The Changeover’, ‘Ulfilas’ Alphabet’ 등의 곡에서 보이는 피아노의 사용 행태는 건반을 활용하는 방식에서 일어난 변주다.


 정박에만 머무르지 않는 드럼은 오프비트의 양식을 각양으로 이용해 트랙리스트 곳곳에 댄서블한 사운드를 계속 덧댄다. 싱코페이션에 따라 배치된 하이햇과 스네어는 분명 음악 기저의 층위에서 리듬의 유연성을 일으키는 장치다. 이와 함께 음을 밀고 당기며 그루브를 조성하는 베이스 역시 탄력성을 더하며 드럼과 함께 변이를 조성하는 하나의 제반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밑자리에서의 변동이 장르 차원의 이동과 결부되지 않을 리 만무하다. 지금의 맥락에서 ‘A Song for My Future Self’에 내재한 드럼 브레이크와 ‘Little Smart Houses’ 전반을 아우르는 펑키한 터치, ‘One Last Night on This Earth’의 버스 구간에 자리 잡은 갤럽 리듬과 ‘Illusions’를 나른하게 이끄는 디스코 리듬, ‘Higher States’에서 잘게 분할한 비트를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이 사례들은 모두 리듬 패턴에서의 가시적인 변화를 실증하는 결과이며, 댄스 스타일로의 일부 장르 이동을 만들어내는 동기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선다라 카르마와 [Ulfilas' Alphabet]은 기존의 아레나 록 스타일과 사이키델리아는 물론, 댄서블한 신스팝, 펑키한 아트 록, 소울과 디스코 풍의 글램 록 등 [Youth Is Only Ever Fun in Retrospect]에서는 접촉하지 않았던, 혹은 매우 옅게 접촉했던 방식들도 끌어들인다.


 이와 함께 우리는 오스카 폴락의 가창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레나 록의 앤섬 코러스에 맞아떨어졌던 날카롭고도 강렬한 보컬은 [Ulfilas’ Alphabet]에서 되려 울림 넉넉하고 느긋한 크루너 스타일과 결합한다. 완력으로 사운드를 휘어잡고 대담함으로 분위기를 장악하는 대신, 음의 저변을 거닐고 다양한 리듬을 향유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갱신한다. 이와 연관할 만한 옛 사례로 베를린 입성을 전후해 소울 음악에 의탁했던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목소리를 제시해 볼 수 있을 테고, 농밀한 에로티시즘에 누차 기투했던 브라이언 페리(Bryan Ferry)의 목소리를 한편 꺼내볼 수 있을 테다. 다분히 느릿하고 묵직하다 할 가창에서의 전환 사항은 작품 곳곳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예컨대 큼지막한 공간에서 종류 상당한 음향 편성, 드라마틱한 전개, 동적인 멜로디를 내보이는 ‘A Song for My Future Self’, ‘Little Smart Houses’의 사운드와 공존하면서도 오스카 폴락의 가창은 음의 높은 자리로 쉽게 이전하지 않는다. 혹은 ‘The Changeover’와 ‘Illusions’에서 이 보컬리스트는 나릿한 곡의 선율에 깃든 세밀한 율동을 재차 꼼꼼하게 살핀다. 이렇듯 오스카 폴락의 변화 이행으로도 [Ulfilas’ Alphabet]은 앞선 작품과 거리를 벌린다.


Sundara Karma - A Song For My Future Self (Audio)


 위와 같은 변화에 한 가지 의견을 덧붙인다. [Ulfilas’ Alphabet]이 취하는 새로운 표현의 중심에는 여유를 확보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를테면 신시사이저를 비롯한 갖은 악기가 저마다의 선율을 지니고 들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사운드를 가득 채우던 기존의 기타와 드럼이 대다수 이탈하고 구성상의 공백을 만들어냈기에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음장을 완전히 메우려는 몸부림 자체 또한 애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우리는 여유의 확보를 감지해야 한다. 이들의 사운드는 사방에 어렵지 않게 결핍을 만들어내고 이를 적당량 유지해낸다. 이러한 절제가 공간의 층위에서 여백을 만들어낸다면, 한껏 리드미컬해진 드럼 비트와 베이스 라인은 시간의 층위에서 여백을 만들어낸다. 음과 음을 탄력적으로 이격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경직성을 해소하고 보다 유연하게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을 조정한다. 말하자면 댄서블하게 설정한 리듬들은 시간적 공백이 위력을 발휘하는 매개고 현장이다. ‘Little Smart Houses’와 ‘One Last Nihgt on This Earth’의 댄스 리듬이 낳는 긴장감도 한 마디의 한정된 시간 안에 일정 이상의 여유를 배치한 데에 대한 반대급부다. 그러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리듬을 기반으로 여유롭게 구축된 신시사이저의 선율들도, 차분하게 음의 고저를 짚어가며 노래하는 오스카 폴락의 퍼포먼스도 결국 여백을 확충해나가는 일련의 창작이 빚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증거를 더 짚어보자. 재미있게도 곡을 전개하는 가운데 여유를 투입하는 작업에 있어서도 이들은 전작에서의 창작과 차이를 보인다. 다시 지난 앨범으로 돌아간다. 기왕의 이들에게서 전개상의 여백 대다수는 향후 후렴 구간에서의 절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버스 구간에서 사용된 바 있다. 그러니까 버스 구간에서의 차분하고 여유로운 사운드는 후렴의 격렬한 드럼 필인과 시끄러운 기타 리프, 보컬 코러스, 앤섬 식의 후렴 선율이 에너지를 위압적으로 방출할 수 있도록 사전 환경을 조성하는 도입부였고 유인책이었으며 안내자였다. 그렇게 조성된 버스 구간은 물론 그 자체로도 매혹적일 순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아레나 록의 스타일이 결정한 규범에 의해 소실점으로부터 먼 곳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다. [Ulfilas’ Alphabet]을 얘기함에 있어 ‘Illusions’와 ‘The Changeover’와 같은 트랙을 재차 언급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해당 트랙들에서 사운드는 쌓이되 큰 폭으로 누적되지는 않는다. 빈 공간은 철저하게 추구되고 여타 구체물에 의해 쉽게 잠식되지 않는다. 또 느긋한 선율은 좀처럼 조급해지지 않는 데다 편곡의 육박으로 뒤덮이지도 않는다. 위 곡들의 본질은 단연 단속적이고 정적인 성질에 있다. 어느 구간에 이르러 마땅히 사운드를 위력적으로 폭발시키는 습관을 이제 선다라 카르마는 확신하지 않는다.


 이러한 움직임이 배태하는 효과 중 하나는 선율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에 있다. 리듬에 다양한 여유를 부여해 리드미컬한 멜로디 동태를 다수 만듦으로써 선율은 작품 곳곳에서 캐치한 형상을 다각도로 품는다. 여기에, 공간에서 확보한 여유는 오스카 폴락의 가창을 강조해 선율의 선명도를 높인다. [Ulfilas’ Alphabet]는 분명 잘 들리는 팝 앨범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한 전에 흔치 않았던, 지극히 여유로운 사운드들이 앨범 사방에 놓인 결과, 선다라 카르마의 음악에서는 예외성이 발현한다. 생경함을 자아내며 작품을 흥미롭게 만드는 현상은 바로 그 예외성에서 기인하니 이 앨범에서 우리는 밴드의 낯선 매력 하나를 확인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성질로부터 논의를 발전시켜보자. 예술의 통사에서 예외성이 줄곧 작품의 변별성을 결정해왔다는 점 역시 현 위치에서 중요히 살필만하다. 소급하자면, 앨범의 러닝 타임에서 여러 차례 포획된 이례적인 여백들이 [Ulfilas’ Alphabet]와 밴드의 새로운 음악을 하나의 개별자로서 성공적으로 규정하기도 한 것이다. 동시에, 선다라 카르마의 음악은 이제 다른 장에 돌입한다. 사운드 다발로 주변을 촘촘하게 채워내는 일이 지난 첫 번째 단막을 이루는 주요 장면이었다면 두 번째 단막에서는 사운드에 다채롭고도 여유롭게 접근하는 일이 주된 장면을 이룬다. 이러한 사업과 함께 밴드는 가능성의 세계로 진입하고 새로운 방식을 낚아챘다. 미지의 잠재태를 육화했으며 다른 자아를 끌어안았다. 이들이 취득한 확장성은 자신들의 예술이 너른 범주를 수용하게 하는 계기로 기능한다.


 다만 갈마가 있다. 밴드의 이름뿐 아니라 선다라 카르마의 창작에도 갈마가 있다고 하겠다. 이들의 갈마는 두텁게 쌓아 올리고 풍성하게 엮은 사운드를 끊임없이 욕망하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운드를 과보로서 취하게 한다. [도크] 매거진과의 인터뷰 중 또 다른 일부를 인용한다. 매체와의 대담에서 오스카 폴락은 “우리가 좋아하는 앨범들은 팝 앨범이면서도 굉장한 층을 이루고 질감이 나며 어마어마한 작품들”이라고 얘기한다. 이와 함께 신보에서의 창작을 두고 “우리가 듣고 사랑했던, 작품들 속 요소들을 향한 최선의 시도”였다고 말한다. 우리의 논의는 지금껏 사운드 더미를 해체하고, 음악에 여유를 투입하는 행사에 맞춰 음반을 읽어냈다. 그러한 행사로부터 전작과의 확연한 이격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밴드의 갈마는 [Ulfilas’ Alphabet]에서 벌어진, 덜어내는 행위를 유별이 아닌 종차의 수준에 머무르게 한다. 이들의 갈마 속에서 창작의 최종 사역은 기왕의 해산과 일련의 변혁이 아니라, 사운드 일체의 두터운 집적을 다시 한번 이뤄내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개괄하자면, [Ulfilas’ Alphabet]가 가졌던 마지막 목표는 사운드를 구조적으로 쌓아 올리는 데 집중했던 [Youth Is Only Ever Fun in Retrospect]에서의 목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선다라 카르마의 창작은 결국 순환적으로 이뤄진다.


 그러므로 여유를 확보해나가는 변이에 초점을 맞췄던 이 논의는 최종적으로는 사운드가 합쳐지고 뒤섞이는 행위를 포착해야 한다. 즉, 선다라 카르마의 창작이 자신을 해체했던 공간에서, 여유를 품는 변화를 끌어안고서는, 자신들의 두 번째 사운드를 어떻게 쌓아 올리는가로 논의는 마지막을 향해야 한다. 이 흐름에서 살펴보기 좋은 결과물들이 있다. ‘A Song for My Future Self’는 여지없이 대담한 곡이다. 트랙에는 예와 같은 앤섬 식의 보컬 멜로디가 있고, 다채로운 편곡 구성을 바탕으로 한 컬러풀한 사운드 스펙트럼이 있으며, 위력의 누적을 꾀하는 극적인 전개 구조가 있다. 그러나 곡 전반에 놓인 펑키한 리듬은 각 파트에 저마다의 여유를 선사하는 데다, 개별 파트의 등장과 퇴장을 균형감 있게 배치하는 조율이 있어 곡의 사운드는 열광적으로 폭발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A Song for My Future Self’는 사운드의 누증과 해리 사이에서 발견한 균형감의 산물이기도 하다. ‘Greenhands’는 어떠한가. 곡에는 사운드가 점차 응집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작업은 초기의 너른 공간을 견지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곡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전반부의 여유로움을 조성했던 어쿠스틱한 피아노 사운드를 러닝 타임 중후반까지 곡의 중심에 머무르게 하며 제 이미지가 선사하는 효력을 지속한다. ‘Little Smart Houses’도 보자. 사운드를 구축하는 각각의 파트는 펑키한 리듬 테마를 모두 체화한 채로 무대에 등장한다. 리듬 속 시간적 여유를 사운드 성분 전부가 공유하는 기제가 여기 있다.


 공백과 집적 사이에서 균형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사운드의 집적 속에 공백을 지켜내기도 하며, 공백을 머금은 사운드를 집적하기도 한다. 여백을 품는 일과 사운드를 쌓는 일을 공재하게 하는 데 있어 선다라 카르마는 실로 상당하다. 그 상당한 역량은 이제 한 트랙에서 여유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도 은근하게 감추는 능란한 터치에까지 나아간다. 이쯤에서 조금 더 소란스러운 곡을 보자. 사운드 테마적으로 음반의 중심 트랙이라 할 ‘Symbols of Joy & Eternity’의 매력도 단연 분광하는 사운드에 있다. 주제 선율을 품은 키보드와 생동하는 베이스, 더블링 된 보컬, 리드미컬하게 변이해가는 드럼 비트,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효과음, 스트링 풍의 음향 등 많은 수의 성분이 러닝 타임에 쌓인다. 그러나 그 모두는 결코 쉽게, 그리 일찌감치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 점층적으로 사운드를 포개는 ‘Symbols of Joy & Eternity’의 전개 양상은 더 이상 전작에서처럼 코러스 구간에 맞춰 모든 사운드를 방출하는 구조를 허용하지 않는다. 기승전결의 구조 속에서 여백은 모습을 확연히 노출했다가 비중을 점차 줄여 나간다. 구성 성분 전반이 등장하는 후반부에 다다르기 전까지, 사운드가 가진 여유는 그렇게 하나의 내용으로서 치밀하게 유지되고 생명력을 길게 유지하며 연출의 초점을 받아낸다.


Sundara Karma - One Last Night On This Earth (Official Video)


 ‘One Last Night on This Earth’에서 인상적인 작업은 버스와 후렴 양 구간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공백을 관리하는 데 있다. 버스 구간부터 먼저 본다. 해당 구간에서 곡을 이끄는 주된 역할 중 하나는 사운드 기저에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그루브가 가져간다. 그루브를 형성하는 디스코 스타일의 갤럽 리듬에는 분명 사운드를 탄력적으로 밀고 당기는 특유의 긴장이 있다. 오프닝에서부터 조성된 이러한 리듬은 버스 전반에서 고스란히 계속될 뿐만 아니라, 음장 속에서 리듬 파트만을 남기는 사운드 제어에 의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 결과는 버스 구간에서 주요 인상은 리듬이 획책해내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버스 구간에서는 시간적, 공간적 층위의 여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주요한 역할을 이행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렴 구간 진입 전후로 밴드는 버스에서의 갤럽 리듬을 은닉한다. 이에 따라 시간적인 공백이 주는 효과는 다분히 소거된다. 또한 캐치한 기타 리프와 보컬 코러스 라인을 덧대며 사운드의 두께를 보다 두텁게 구성한다. 그 안에서 보컬 코러스 사운드를 이따금씩 투입하고 또 제거하며 공간에 공백을 만들지만 그 양상은 결코 극적이지 않다. 이는 매우 교묘하게 이뤄진다. 이에 따라 후렴에서의 여백은 무력하게 작용하거나 은근하게 감춰진다. ‘One Last Night on This Earth’의 여백은 그야말로 다채롭게 다뤄진다. 단언하건대 이는 매혹적인 변이가 교차하며 낳은 결실이다.


 이제 갈무리할 차례다. 위의 논의로 짧게 다듬자면 [Ulfilas’ Alphabet]은 기존의 사운드를 비워냄과 함께 여유의 다양성을 확인하고 이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수용한 결과일 테다. 트랙리스트를 다시 둘러본다. 공간감이 다분한 ‘A Song for My Future Self’로 선다라 카르마는 앨범을 시작했고, 사운드를 쌓는 가운데 여백을 정밀하게 유지하는 ‘Greenhands’와 ‘Symbols of Joy & Eternity’, 여백을 때로는 노골적으로도 때로는 은연중으로도 내비치는 ‘One Last Night on This Earth’로 이어간다. 또 그루브를 차분하게 지속하는 ‘Illusions’와 ‘The Changeover’를 통해서 그 자신들 역시 한껏 여유로울 수 있음을 내보이며, 펑키한 리듬으로 장단의 여백을 긴장감 있게 조성한 ‘Little Smart Houses’와 정적인 멜로디가 흐르는 곡에 사운드 규모를 키우는 ’Sweet Intentions’, 긴장감 있는 포스트 펑크 리프와 후반부의 큼지막한 보컬 코러스를 병치한 ‘Rainbow Body’를 거쳐서는 비움과 쌓음의 여러 결합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이들은 사운드의 구성 규모와 빈 공간의 규모를 동시에 키우는 ‘Ulfilas’ Alphabet’과 ‘Home (There Was Never Any Reason to Feel so Alone)’으로 긴 서사에 매듭을 짓는다. 소리 더미와 여백의 상당하고도 다채로운 공존으로, 이들의 사운드는 전과 어느 정도 비슷하지만서도 최종적으로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여유를 받아들이면서 차이를 확인하고 훌륭하게 변주하는 이들이 새로운 작품을, 새로운 자아를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생의 본능이다. 선다라 카르마가 사운드를 쌓아가면서 예술 작품을 완성한다고 한다면 이들의 예술에 놓인 생의 본능은 쌓는 행위를 통해 발현한다. 그렇기에 어떠한 해체, 해산 혹은 변형이 있다더라도 이들의 예술이 발생하는 매커니즘을 아우르는 것은 결국 쌓는 행위다. 이것이 선다라 카르마가 달라지면서도 그 자신일 수 있는 이유다. 비우는 것은 변혁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또한, 후일의 건축을 위해 새 재료를 준비하는 일이다. 또 다른 축적을 위해 새로운 질감과 색상을 채취하는 일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선다라 카르마의 창작은 제법 파격적이었으면서도 결국에는 스스로를 지속하는 데에도 성공적이었다고 하겠다. [Ulfilas’ Alphabet]를 시작하며 선다라 카르마는 그 자신이 아닌 채로 출발할 수 있었다. 앨범을 완결 지으면서는 결국 그 자신으로 종착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컬러를 하나의 유로서 다시금 정의하고 그 안에 포함될 다른 종의 사운드를 만든 결과 이들의 디스코그래피에는 오늘 하나의 언어가 있고 다양한 구성이 존재한다. 이를 두고 [Ulfilas’ Alphabet]에서 일어난 최종 의의라 하겠다.


-수록곡-

1. A Song for My Future Self

2. One Last Night on This Earth

3. Greenhands

4. Symbols of Joy & Eternity

5. Higher States

6. The Changeover

7. Illusions

8. Little Smart Houses

9. Duller Days

10. Sweet Intentions

11. Rainbow Body

12. Ulfilas' Alphabet

13. Home (There Was Never Any Reason to Feel so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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