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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호 Nov 29. 2018

여전하다. 좋다. 단,

Interpol, [Marauder] (2018)

 매혹적이라는 것에 있어 '새로움'이 필수 조건이라면 인터폴(Interpol)의 지난 10년은 매혹적이지 않았다. 물론, 인터폴은 변화를 아예 배척해버리는 밴드가 아니다. 데뷔작 발매를 기점으로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뉴 밀레니엄의 대표 밴드로 활동해오며 인터폴은 시장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고 자신들의 지난 행보에서 이탈하기도 했으며 처음으로 돌아가려 하기도 했다. 이들에게도 분명 새로운 창작에 동력을 제공한 전환들이 여럿 있었다. 다만 돌이켜보자. 그 전환들은 모두 대단한 새로움을 이끌어내는 대담한 전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쇄신의 기조는 미약했거나 모호했거나 혹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거나.


 그랬던 까닭에 앨범들이 가진 저마다의 새로움은 늘 명확하게 지속해 온 인터폴 고유의 색에 압도돼왔다. 그러나 예술 작품에서 새롭지 않다는 표현은 결코 나쁘다는 의미와 직결되지 않는다. 인터폴의 지난 10년은 이를 실증한다. 비록 매 앨범이 기시감을 다분히 촉발했다 할지라도 잘 들리는 선율과 리프를 섞어 만든 좋은 포스트 펑크 곡들은 작품들을 조금이라도 일정 수준을 웃도는 지점에 올려놓았다. 그래서 [Antics] 이후의 앨범들에 대한 평결은 종종 양가성의 영역에 진입해 '무언가 부족한데 좋다' 식으로 귀결되곤 했다.
 
 [Marauder] 역시 위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품은 근 10년간의 전작들과 동일한 특성들을 공유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싶었던 데이브 프리드만(Dave Fridmann)의 프로듀싱은 약간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정도에 그친다. 밴드가 그간 취해온 정교한 레코딩 방법 대신, 릴 테이프에 사운드 거개를 한꺼번에 녹음하는 방식으로 제작을 진행해 생동감과 공격성을 십분 부각했을 뿐, 인터폴과 작품 특유의 근간을 흔드는 지점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 한다.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와 엠지엠티(MGMT), 더 백신스(The Vaccines), 스푼(Spoon) 등 많은 밴드의 여러 변곡점에서 극적인 사운드 전환을 이끌어냈던 이 대범한 프로듀서의 대표적인 전적들을 생각해보면, 이번 앨범에서 보인 변화는 변화라고 하기에는 다소 민망할 정도로 그 세기가 밋밋하다.


 [Marauder]를 만들며 밴드의 작사가 폴 뱅크스(Paul Banks)가 텍스트에 자전(自傳)을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이번 앨범을 서술함에 있어 언급해야 할 변화의 증거다. 자신의 성격 일부를 떼어내 앨범의 주인공 '모로더(Marauder)'를 창조해내며 작사의 영역을 넓혔으니, 향후의 작품들에서는 더욱 다양한 폴 뱅크스의 알레고리를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행간에 은유를 투하하는 폴 뱅크스의 작법 본연은 여전한 데다, 기술(記述)의 변화가 음악 외피에 놓인 포스트 펑크 사운드의 색을 바꾸는 데에는 작용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변이의 표징들이 가져온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고 보는 편이 적합할 테다.
 
 미미한 변화의 특징들을 대신해 음반을 주도하는 요소들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진 지 오래된 것들이다. 리버브 톤을 머금고 짧고 명료한 모티브를 연주하는 다니엘 케슬러(Daniel Kessler)의 리드 기타, 다채롭게 리듬을 구성하면서도 절제를 유지하는 샘 포가리노(Sam Fogarino)의 드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폴 뱅크스의 보컬이 그렇고, 버스와 프리 코러스, 훅을 가리지 않고 러닝타임 곳곳에 녹아있는 캐치한 멜로디, 두 대의 기타가 만드는 불안한 하모니, 음장과 키보드를 활용해 조직한 어둡고 몽환적인 색채가 그렇다. 이 성분들은 모두 인터폴의 양식으로서 긴 기간 밴드와 동행해왔다.


 이들이 다양한 모양으로 결합된 곡들은 또한 어떠한가. 버스와 프리 코러스, 코러스 간의 전환이 뚜렷한 'If you really love nothing', 직선적으로 배치된 개개의 노트를 리드 기타가 날카롭게 연주하는 'The rover'와 'Nysmaw', 변칙적인 코드 전개와 독립적으로 배치된 두 대의 기타들로 묘한 조화를 연출하는 'Flight of fancy', 스트레이트한 펑크 록 'Number 10' 등 대다수의 트랙들에서 인터폴의 전범이 재차 노출된다. 조금은 '인터폴답지' 않다고 할 'Stay in touch'와 'Surveillance'의 디스코 풍 리듬도 [Antics]의 'Length of love'와 전작의 'Same town, new story'로 대표되는 몇몇 지난 결과물들에서 조금씩 시도했던 요소들이며, 'The rover'의 기저에 짙게 내려앉은 기타와 베이스의 드론 식의 운영 역시 독특하다만 밴드가 보여온 미니멀한 속성과 다분히 맞닿아 있는 장치다.
 
 동시에 좋은 곡들도 분명 많다. 전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새롭지 않아 매혹적일 수 없는 앨범을 그래도 괜찮은 작품으로 만드는 역할은 음반 도처에 놓인 훌륭한 곡들이 다시금 담당한다. 공기가 무겁게 내리 앉은 음장 속에서 까칠한 기타를 내보이는 인터폴의 전형 'The rover'와 'Complications', 나직하고 차분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간헐적으로 소리를 터뜨리는 'Stay in touch', 트랙리스트 중반에 자리한 펑크 트랙 'Mountain child', 'Number 10', 묵직한 톤을 입고서 생동감 있게 리듬을 운영하는 베이스와 드럼 위에서 기타와 보컬이 선율을 아득하게 뽑아내는 'If you really love nothing', 앨범의 장중한 마무리를 담당한 포스트 펑크 'It probably matters'와 같은 결과물들은 그 어느 작품의 수록곡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다.


 게다가 이 앨범에서는 트랙리스트 상의 진행도 좋다. 두 개의 인터루드 트랙들을 분기점으로 두고, 전반에는 변칙적인 포스트 펑크 사운드들을, 중반에는 캐치한 펑크 곡들을, 앨범 말미에는 몽롱하고 장엄한 컬러의 클로징 트랙을 배치해 분명한 구성미를 이끌어냈다. 더불어 3개의 막을 조성하는 트랙들이 각기 다른 사운드 정체성들을 갖고 있어 다채롭다는 점도 지나칠 수 없다. 곡 개개의 컬러는 심지어 러닝 타임 전체에 자욱이 깔린 뿌연 텍스처 속에서도 제 모습을 쉽게 잃지 않는다.

 
 그리고 [Marauder]는 정말로 여기까지다. 인터폴의 통상적인 앨범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작품이다. 다만 흡인력 가득한 곡들이 다수 포진돼있고 다채로운 선율과 전개가 매 트랙에 자리할 뿐 아니라 러닝 타임에서의 형식미를 명료하게 조성했다는 점에 있어 [Marauder]를 [Antics] 이후의 여느 작품들보다 앞선 자리에 놓을 수도 있겠다. 이 맥락에서 송라이팅과 퍼포먼스의 측면에서 다시 한번 발휘한 뛰어난 역량도 조명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각각의 기준에 따라 긍정의 정도가 현격하겠으나, 사운드 질감을 거칠고 흐리터분하게 마감한 데이브 프리드만의 프로듀싱도 기존과는 다소 상이한 각도로 밴드의 에너지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접근으로 여길만 하다. 그렇지만 이처럼 특기 가능한 일부 성질을 제외하면, [Marauder]는 인터폴의 전작들과 비교해 대단히 특별하다고 확신하기는 어려운 앨범이다. 짙게 유지된 인터폴의 천성을 압도할 특이점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장면은 인터폴의 가까운 과거로부터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었다.


 이제 간략하게 정리할 차례다. 인터폴은 여전하다. 앨범은 좋다. 두 문장을 아무렇게나 이어보자. 여전하고 좋다. 여전해서 좋다. 여전하나 좋다. 또, 좋으므로 여전하다. 좋다만 여전하다. 좋으나 여전하다. 그 유형이 나열이든 순접이든 역접이든 무관하다. [Marauder]를 얘기하는 데 있어 모두 유효한 서술이다. 단 전제가 있다. 재차 여전하기에 결코 매혹적이지는 않다는 것.
 
 -수록곡-
 1. If you really love nothing
 2. The rover
 3. Complications
 4. Flight of fancy
 5. Stay in touch
 6. Interlude 1
 7. Mountain child
 8. Nysmaw
 9. Surveillance
 10. Number 10
 11. Party's over
 12. Interlude 2
 13. It probably mat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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