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건져 올린 나의 20일
무기력한 날들이 지나갔다.
많이 흔들렸지만, 아주 쓰러지지는 않았다.
이 글은 그 20일 동안의 나를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한 기록이다.
글을 쓰는 데까지 20일이 걸렸다.
그동안은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쓰고 싶었고, 기록하고 싶었지만
‘뭘 써도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붙들었다.
우울할 땐 참 쓰기가 어렵다.
생각이 감정을 이기고,
감정은 몸을 주저앉힌다.
그렇게, 말이 멈추고 하루가 흐른다.
그래도 이번엔 아주 깊은 무기력은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지만 출근을 못 한 날은 없었고,
점심도 챙겨 먹었고, 사람들과 웃으며 대화도 나눴다.
점심시간에 절반은 산책을 했고,
미루고 있던 수련 수첩도 조금씩 정리했다.
사실, 생각보다 많은 걸 해냈다.
10년 전 수퍼비전 기록을 16개나 작성했고,
일주일 안에 보고서 3개도 완성했다.
부족했던 수련 횟수도 모두 채웠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것도 못 했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현실을 왜곡할 때,
기록은 그 감옥에서 나를 꺼내주는 창이 된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쓰기 시작한다.
내가 버텨낸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너무 쉽게 깎아내리지 않기 위해서.
한동안은 ‘완벽하게 정리된 글’이 아니면
쓸 가치가 없다고 느꼈다.
혼란스럽고 부족한 상태의 나를
보여주는 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완벽에 집착하는 그 마음이
나를 더 아프게 만들어왔다는 걸.
나는 아직 회복 중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를 기록하고 싶다.
나중에 이 모든 시간이 지나가고 나서
‘그냥 시간이 해결해 줬다’고 쉽게 말하고 싶지 않다.
정말 많이 힘들었다는 걸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나처럼 아파할 때
그 사람의 고통을 쉽게 위로하는 대신,
그 시간을 함께 봐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부끄럽고 부족한 모습 그대로지만
이렇게 적으며 다시 살아간다.
어딘가에서 나처럼 흔들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기록이 아주 작게나마 숨 쉴 틈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