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함.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단어는 없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보통 웅장함, 경이로움 등의 단어를 먼저 사용할 듯하다. 그러나 정욱은 겸허함으로 정의했다.
정욱은 수도원의 본당인 주앙 1세 예배당(Capel de Joao Ⅰ)에 들어가 양쪽 벽 쪽에서 천장 꼭대기 네이브(nave)를 향해 솟아오른 거대한 기둥들을 올려다보았다.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리고 그 경이로움 앞에서 겸허함을 느낀 것이다.
이곳은 포르투갈 중부지방의 조그만 마을 바타야(Batalha). 이 마을의 상징이기도 한 이 수도원은 1388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200년에 걸쳐 완공되었으며, 198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수도원의 정면 파사드(Façade) 장식에서부터 범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그 안의 회랑이나 예배당의 모습은 인류문화유산이 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더군다나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스페인 군대가 쳐들어오자 주앙 1세가 영국의 후원을 받아서 물리친 뒤 그를 기념해서 지은 것으로서 정식명칭은 ‘Mosterio de Santa Maria da Vitória’, 즉 ‘승리의 산타마리아 수도원’이다. 그리고 도시 이름인 ‘바타야(Batalha)’는 전투(battle)를 뜻한다. 이 도시 남쪽 14km 지점에서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전쟁의 승리를 계기로 해서 그 이후 포르투갈은 국운이 상승하여 결국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남미 대륙에까지 진출해서 거대한 식민지를 세우게 된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브라질이다. 따라서 포르투갈 국민에게 이 수도원의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더군다나 전 세계적으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2억6천만 명이어서 세계 6위에 해당한다. 나라로는 본국 포르투갈을 비롯해서 남미에서는 브라질, 아프리카에서는 앙골라, 카보베르데, 기니바사우, 모잠비크, 상투메프린시페,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지역, 여기에 적도기니가 포함되고, 아시아에서는 인도 남서부 최대의 관광지인 고아 주 일부와 말레이시아의 말라카 지역, 중국의 마카오, 동남아의 동티모르가 해당된다. 이렇다 보니 포르투갈어는 남반구에서는 최대사용 언어이고, 서반구에서는 세 번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이 바로 이 바타야 전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정욱에게는 이 지역이나 그 수도원이 위와 같은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도희가 이곳에서 엽서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리스본에서 보낸 첫 번째 엽서. 수도원 예배당 내부의 웅장한 기둥 모습을 실감 나게 찍은 사진엽서. 그리고 그 뒷면에 간단한 글과 함께 제일 아래에 하트를 그려넣었다.
그 엽서가 배를 타고 대서양과 지중해를 거쳐 홍해로 나와서 인도양을 거쳐 남태평양을 돌아 한국에까지 온 것이다. 예쁜 하트 그림이. 아니, 사실은 그 루트를 정확히는 모른다. 우편 차에 실려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으로 갔다가 철도편으로 유럽을 횡단하고 러시아와 시베리아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온 다음 부산으로 들어와서 서울로 올라왔는지도 모른다. 아무려면 어떠냐. 비행기에 실려 하늘로 공수되지는 않았을 테니 그 두 방법 중 하나, 또는 그 비슷한 루트로 왔을 것이다. 설마 아프리카 남쪽 희망봉을 돌거나, 대서양을 가로질러 남미 칠레 아래를 돌아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왔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그렇게 왔어도 상관없다. 하다못해 우편집배원이 리스본에서부터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도희의 하트가 실려 있는 엽서가 정욱의 손에까지 배달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밖의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하트만 정확하게 가져다준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하트뿐만이 아니다. 하트 옆에 써 있는 ‘Eu Te Amo.’ 알아보았더니 그것은 영어로 ‘I love you’였다.
이보다 정욱의 마음을 더 뜨겁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 그리고 도희가 엽서를 보낸 곳은 ‘Av. Miguel Bombarda 36-7, 1050-165 Lisboa’, 즉 포르투갈의 한국대사관 주소다. 도희가 포르투갈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부친을 따라 리스본으로 가서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보낸 엽서였다.
‘였다.’ 과거형. 조금 더 확실히 밝히면 과거완료형 ‘였었다’가 옳겠지만.
그렇다. 정욱은 지금 잃어버린 그 하트의 주인공을 찾아서 지구 반대편, 유럽 대륙 서쪽 끝, 대서양이 지척 간에 있는 포르투갈에 와 있는 것이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