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gumentum ad Antiquitatem
황 영감은 화가 풀풀 났다. 공중화장실 때문이다.
황 영감이 사는 빌라 뒷산은 일종의 사유지이다. 하지만 거의 공유지와 같은 상태다. 그 산 아래쪽에는 아주 넓은 마당이 있었는데, 예전에 무슨 편물공장을 하다가 문을 닫은 곳이라고 한다. 그 주인은 파산한 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나 도망갔다나 했다는데, 벌써 10년째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그 공장의 큼직한 3층 건물은 유리창이 거의 깨져 나갔으며, 문짝도 다 떨어져 나갔고, 아주 널찍한 마당도 잡터로 변해 있었다. 각종 쓰레기에 잡풀만 수북하고 마당은 여기저기 마구 패어 있어서 비가 오면 물웅덩이가 곳곳에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당연히 동네 건달들 아지트가 되어 있는 셈이다. 중학교 애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다 그 으슥한 곳 군데군데에 모이고 숨어들어 진 치고 난리를 피우는 것이다.
한때는 그곳에서 싸움도 많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요즘은 그래도 그런 법석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그런데 문제는 공장 건물 바깥, 즉 마당에 화장실 건물이 하나 세워져 있는 것이다.
공장 안에도 두 군데 있는데, 왜 하필 공장 문 바로 옆에 덩그러니 떨어진 채 그런 화장실을 지어놨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건물 안에 있는 화장실보다 잘 지어놓고 게다가 그 안에도 시설이 좋아서, 쉽게 말하면 동네 화장실이 되어 있는 셈이었다. 공장 안의 화장실은 고약하게도 옛 푸세식이었고, 밖에 있는 것은 수세식에다 건물 안팎을 아주 깔끔하게 치장해 놓았었다. 그러나 주인이 없다 보니 공장이고 화장실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황 영감은 자기 집에서 화장실 쓰는 것이 아까워 늘 그 공장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안이 너무 지저분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좋은 일도 할 겸, 또 자신이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그 화장실 중 한 칸만을 잘 관리해 오고 있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그곳을 찾아가 깨끗이 치우고 닦고 했다.
화장실 안에는 소변기가 둘에 화장실 칸이 세 개 있었다. 또한 화장실 건물 양옆에 출입문이 하나씩 있는데, 문 바로 안쪽에는 널찍한 세면대가 각각 양쪽에 하나씩, 그리고 그 옆 벽에는 각종 소모품을 넣어둘 수 있는 보관함이 있었다. 그리고 출입문 안쪽, 세면대 맞은편에는 기다란 대걸레도 빨 수 있고 다른 여러 가지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는 큼직한 물통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것도 모두 흰색 도자기로.
또한 화장실 칸 안은 모두 널찍하고, 좌변기 위 천장에는 송풍시설이 지나가 환기가 아주 잘 되었다. 게다가 화장실 건물 전체에 위쪽으로 좁다란 유리창이 둘려 있어서 불을 켜지 않아도 내부는 그리 어둡지 않았다. 게다가 전기와 수도까지 공급이 잘 되어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이것은 모두 황 영감이 시청에 수십 번도 더 찾아가 항의도 하고 읍소도 한 덕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물도 전기도 안 들어가는 탓에 그 안은 물론이고 화장실 건물 자체가 지저분하고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황 영감이 시청에 찾아가서 강력하게 항의했었다. 순전히 자기가 편하게 사용하기 위해서였지만.
“아, 다른 동네는 여러 형태로 공원이나 쉼터가 마련되어 있잖소.”
황 영감은 벽에 붙어 있는 행정지도를 가리키며 핏대를 올리고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우리 동네는 산비탈인데다가 흉물스러운 그 공장 때문에 사람들이 어디 가서 쉴 곳도 없거니와, 대한민국 온갖 불량배들 다 몰려들어 진 치고 있으니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는 것 아니오?”
황 영감의 말은 시청 사무실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 바람에 그 안에 있는 직원은 물론이고 민원인들 모두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차라리 폐허가 된 그 공장 터를 시청에서 잘 관리해서 건전한 곳으로 만들어달란 말이오.”
황 영감은 이런 식으로 여러 번 찾아가서 고함도 치고 살살 구슬리기도 해서 결국 큰 성과를 얻어냈다.
즉, 그 널찍한 공장 마당을 잘 정돈해서 반 공원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폐건물은 자신들이 건드릴 수 없다며, 그 대신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비록 겉보기 형식이지만 허름하게라도 울타리를 쳐놓았다.
그리고 웬일인지 화장실만은 깨끗이 청소해 주고 깨진 유리창이나 망가진 것들을 모두 수리해 놓고서 전기와 수도도 공급해 준 것이었다. 법적으로 그것이 가능한지 않은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해서 꽤 넓은 그 공장 마당은 아쉽기는 하지만 준 공원에 가깝게 만들어져 동네 사람들이 그런대로 드나들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황 영감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라는 것을 온 동네에서도 다 알고 있기에, 황 영감은 허리 주욱 펴고 마치 그 공장 지킴이처럼 늘 이곳저곳 살피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즉시 핸드폰으로 시청에 연락하곤 했다. 시청에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공원 하나 제대로 못 만들어 주면서 그것도 못 해줘요? 세금 남아돌아 별짓들 다 하면서, 그래, 정말로 이 동네 주민들한테 그깟 것도 못 해준단 말요, 응? 시장에게 말 좀 전해 줘요. 다음에 시장 안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시라고!”
황 영감 입심을 당해 낼 사람은 그 시청에는 없었다.
그 덕분에 화장실 안에는 한 칸마다 두 개의 휴지걸이에 항상 두툼한 휴지가 걸려 있었다. 그 휴지가 처음에는 자주 없어지더니 어느 시점에 이르자 더 이상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다. 게다가 세면대에도 디스펜서 물비누, 막대비누, 손 닦는 일회용 종이 타올, 손세정제, 소변기 탈취제, 천연향 분사기에 각종 안내판 등등이 깔끔하게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자 황 영감은 자기 집 대신 아예 그 화장실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날씨가 아주 안 좋은 날이 아니면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그 화장실로 먼저 출근했고, 저녁에도 그곳을 다녀오곤 했다. 그 공장 터가 아예 자신의 소유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황 영감의 신경을 끊임없이 긁어놓는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낙서.
화장실 칸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낙서가 씌어 있는 것이었다. 하이그로시 합판으로 된 문이나 양쪽 옆 칸막이뿐만 아니라 뒤의 흰 타일에까지. 어떤 경우에는 천장에도 낙서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올라갔는지 모르겠다. 설마 화장실 안에 사다리까지 가지고 들어가지는 않았을 텐데, 아무튼 놀라운 일이었다. 게다가 각종 스티커는 왜 그렇게 많이 갖다붙이는지, 그것을 떼어내고 떼어내도 다음날이면 또다시 떠억 붙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스티커를 때어내면 그 자리에 자국이 남아서 때가 끼고 하면 아주 지저분해진다.
황 영감은 이러한 것들을 지우고 없애는 데 글자 그대로 전쟁을 했다. 인터넷을 비롯한 온갖 곳을 다 찾고 뒤지고 해서 별의별 방법 다 동원해서 지웠다.
스티커 자국은 모기약을 뿌리기도 하고, 잘 안 지워지는 낙서나 자국은 처음에는 화학약품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어느 자료에 보니 그것이 하수구로 흘러들어가면 수질오염이 된다고 해서 그 짓도 하지 못하고 온갖 수단 다 찾아서 지우고 닦고 했다. 독성 없는 붕산, 베이킹소다, 식빵 뭉친 것, 지우개, 사포, 땀띠약, 아세톤, 콜드크림, 식용유, 맨 소금, 구운 소금, 식초, 치약, 땅콩버터, 콜라, 휘발유, 암모니아, 알코올, 우유 등등 안 써본 것이 없었다. 거기에 들어간 주머닛돈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까지 시청에다 손 내밀 수는 없어서 황 영감이 모두 해결했다. 애국하는 셈치고. 황 영감이 작기는 하지만 3층짜리 건물을 한 채 가지고 있어서 먹고 사는 데는 걱정 없으니 그 정도는 자신이 부담키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낙서 종류도 정말 다양했다. 누구나 짐작하는 것처럼 아리아리한 것에서부터 별별 것이 다 있었다. 심지어 성경 말씀이나 불경 또는 각종 속담에서부터, 심지어 뒷벽의 타일에는 타일 하나하나마다 한 컷 만화를 그려넣었고, 컬러로 색칠까지 해놓기도 했다. 이밖에 온갖 스티커는 물론이고.
이들 낙서를 유형별로 분류해 보았더니 의외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그 낙서들을 다섯 종류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주 진한 것 ― 10%
조금 진한 것 ― 15%
평범한 것 ― 30%
점잖은 것 ― 15%
심각한 것 ― 10%
그럼 나머지 20%는? 그것은 만화나 그림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분포는 어떤가?
만화나 그림들도 그 유형의 분포는 낙서와 비슷한 비율이었다.
그런데 그림 중에서 어떤 것은 거꾸로 그려놓은 탓에 황 영감이 그것을 보는 데 고개를 거꾸로 숙여야 해서 고생한 것들도 있다. 물론 거꾸로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은 아무리 보아도 그림이 이해되지 않아서 화장실 칸 문을 닫고서 완전히 물구나무서듯 해서 보다가 고개가 삐끗한 바람에 일주일 이상 고생한 적도 있었다. 한의원에 가서 침이라도 맞으려 했다가 돈 아까운 생각에 집에서 할멈에게 두드리게 하고 별짓을 다 하는 바람에 얼마나 약이 올랐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낙서들 중에서는 혼자 보거나 그냥 지우기 아까운 것들도 많아서, 황 영감은 언젠가부터 그런 것들을 핸드폰으로 찍어놓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예 모든 낙서를 다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는 나중에 몰래 꺼내보면서 혼자 킥킥거리기도 하고,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치기도 했다. 게다가 어떤 만화나 그림은 지우기가 정말 아까울 정도여서 며칠 동안 망설이기도 했었다. 색깔까지 정성껏 집어넣은 것들도 많았으니까. 그런 것들은 비록 화장실 낙서이긴 하지만 명화에 속한다고 황 영감은 생각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중에서 정말 아깝다고 생각되는 낙서나 그림들은 지우지 않고 놔두기로 했다. 혼자 감상하기 아까워 많은 사람들이 두고두고 보라고.
그러나 어느 날 새벽 볼일을 보려고 그 화장실로 갔더니 그 아까운 그림들이 싹 지워지고 없어진 것이다.
황 영감은 이것 때문에 화가 나서 하루 종일 풀풀거렸다.
어떤 인간이 이딴 짓을 했어?
화장실 낙서는 전통이잖아. 인류 공통의 문화유산!
개념도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Ψ Argumentum ad Antiquitatem | 전통에만 매달리는 논증의 오류. 현실성 없이 과거에만 집착하면서 억지를 부릴 때 흔히 이러한 오류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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