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top-Continue, KPT를 거쳐 3F로
PM이 되기 전에는 '회고'가 그동안의 잘못을 반성하는 것 정도의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년을 꽉 채워 PM으로서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회고를 진행하며 이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바쁜 중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배운 것을 개인이 아닌 팀 단위의 지식으로 축적시켜 실패 비용을 낮추기 위해
둘째, 개인의 업무 관점을 넘어 총체적인 관점으로 프로젝트를 이해하기 위해
첫번째 이유는 글로 익혀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이지만, 두번째 이유는 직접 여러 회고를 경험하며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각 실무자의 언어와 입장에서 재해석되는 프로젝트를 통해 '이런 상황에서 저 직무는 저런 걱정을 하게 되는구나', '그 태스크는 A팀이 아니라 B팀에서 하면 더 효율적이었겠구나' 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잘하는 회고는 남는 게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면서 회고 템플릿도 나름 여러 개를 시도해보았습니다.
CSS
Continue : 앞으로도 지속할 것
Stop : 이제 그만해도 되는 것
Start : 새롭게 시작해볼만한 것
이 템플릿은 입사 후 개인의 성장을 돌아보는 회고에서 처음 맞닦뜨렸습니다 예시도 적혀 있고 용어도 직관적인 편이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는데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결과 중심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도출하는 데에는 더 없이 분명하지만, 지금껏 어떻게 해왔는지를 되돌아보기에는 다소 어려운 템플릿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회고에 대한 친숙도나 이해도가 각기 다른 여러 구성원들이 모여 진행하는 회고 미팅에서는 이 템플릿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KPT
Keep : 이어 진행할 것
Pause : 중단할 것
Try : 새롭게 시도해볼 것
프로젝트 회고에서 자주 사용하던 템플릿인데, 개인적으로는 CSS 템플릿에서 느꼈던 장단점을 비슷하게 경험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회고 미팅에서는 이 템플릿을 채택하지 않았어요. 실제로 중단해야 하는 액션의 비중이 높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KPT 세 가지 요소 중 Pause만 가득 차는 것을 보고(허허) 회고로 발견할 수 있는 개선 기회를 구석구석 찾지는 못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3F
Fact : 실제로 벌어진 사실
Feeling : 그 때 느꼈던 감정
Finding : 그로부터 배운 점
사실 여기에 Future action, Feedback이 더해져 5F로 구성된 것이 템플릿의 완전체인데 3가지 요소만 회고에 활용했습니다. 회고 미팅의 시간 제한도 있었고, 기존에 사용하던 템플릿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만회하기에는 3가지 요소로도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조직의 회고 후기도 읽어보고 'Fact'를 짚음으로써 발생하는 이점에 대한 기대를 품고 3F 템플릿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3F에 입각한 회고를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나름의 특수성이 있었습니다. 프로젝트 진행 시점과 회고 시점이 두 달 이상 차이 나,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부터 다시 구체적으로 짚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때 Fact 요소를 통해 액션의 내용부터 담백하게 기록하는 것이, 프로젝트 당시를 생생하게 떠올리는 데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각 요소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덧붙여, 팀원들이 회고 회의 전에 미리 작성하실 수 있도록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회고 회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선순위' 열을 추가해두었습니다. 저희 팀에서는 중요도 순서에 따라 P0, P1, P2로 우선순위를 매칭하는데 P1까지만 이야기를 해도 회의 시간이 알맞게 꽉 찼습니다.
Feeling, 즉 그 때 느꼈던 감정에 대해 작성하는 것이 다른 회고 방식과 가장 다른 점이라 다들 낯설어하시지는 않을지 우려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의외로 회고의 분위기를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는 구성원, 조직 간 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프로젝트 회고 때에도 협업에 관한 이야기가 반드시 나오는데요. 아쉬운 점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팩트로만(?) 얘기하자니 어떻게 얘기해도 무언가 탓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장벽이 될 때도 있지요. 이런 순간에 '감정에 대한 서술'이 훨씬 더 부드러운 맥락을 만드는 쿠션 역할을 했습니다.
그 다음은 Finding, 회고의 핵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앞에서 Fact(객관적 사실)과 Feeling(주관적 감정)으로 탄탄히 맥락을 쌓은 덕분에 Finding을 간결히 서술해도, 어떤 배경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이해하는 것이 훨씬 쉬웠습니다. 동일한 Fact에 대해 서로 다른 Finding이 작성된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같은 일을 두고도 직무에 따라 체감하는 일의 임팩트가 다르기 때문이었는데요. 이런 것들을 조합해 더 완성도 높은 Future Action을 도출하는 것도 회고의 큰 수확이었습니다.
3F 템플릿 자체는 미래보다는 과거 지향적이기 때문에, 실제로 있었던 일에서 근거한 배운 점을 도출하기에 유리하지만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를 이끌어내기에는 난이도가 높은 편입니다. 단점이 분명합니다. 다만 저는 급성장하며 여러 액션이 진행되는 우리 팀 특성상 지난 액션에서 배운 점을 기록하고 전파할 수 있는 자리가 꼭 필요하다 생각했고, 그 점에 집중해 회고를 진행했습니다. 3F 템플릿을 나름 만족스럽게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제가 회고를 진행할 때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은 아래 2가지입니다.
'고생하셨고 아무튼 우리 잘했습니다!'의 형식적인 회고
솔직하게 얘기하기 망설여져 좋은 말만 하고 끝나는 회고
할 말을 편하게 하면서도 배운 것을 분명하게 형언할 수 있는 회고 분위기를 유도하기 위해 템플릿 변형 외에도 여러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이런 말 해도 되나?' 망설여질 때 쓰시라고 머리띠도 배치해놓고, 지금 이 자리의 목적은 '실패 복습'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실패에 대한 명언을 카드에 작성해 배부드리기도 했었지요.
이렇게 도출한 영양가 있는 회고 소재들을 갖고, '그래서 이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제시하는 것이 제가 PM으로서 해야 할 다음 과제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