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커리어 전환을 지속하게 만든 힘으로 ‘상상’을 이야기했어요. (혹시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본문 하단에 링크를 달아둘게요.)
이번 글에서는 상상을 하고, 이를 현실로 데려오기 위해 제가 사용했던 방법 세 가지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독서 많이 하시나요? 성인의 60% 이상이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다니 자신 있게 ‘예’라고 대답하기 어려운 분이 많겠지요. 지금은 저도 독서가 습관이 되었지만, 한때는 시간이 나면 유튜브나 OTT 플랫폼에서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쪽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책을 적극적으로 찾던 시기가 있었는데, 바로 선택을 앞두고 동일한 선택을 한 인생 선배들의 의견이 필요할 때였어요.
물론 영상으로도 훌륭한 인생의 선배들을 만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책은 영상에 비해 속도가 느리다는 특징이 있어요. 느린 속도 덕분에 읽는 사람은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중간중간 멈추어 사유하고 자기 삶에 대입할 여지가 생기죠.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다면, 이미 그것을 이룬 사람들의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어요. 목표를 이루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이루고 난 뒤에는 어떤 루틴으로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지. 타인의 사례를 들여다본 후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거예요.
'나는 이 과정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삶의 형태는 정말 내가 원하는 걸까?'
회사를 떠나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던 시절, 저는 프리랜서들이 쓴 자기 계발서를 많이 찾아 읽었어요. 프리랜서라면 여유롭게 아침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원하면 쉬는 삶을 살 거라 상상했거든요. 그런데 책 속 현실은 조금 다르더라고요.
돈이 더 중요해 시간을 갈아 넣는 프리랜서가 있고, 시간이 더 중요해 수입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프리랜서도 있었어요. 그때는 다른 질문을 하며 꿈을 구체화했습니다.
'나는 돈과 시간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가? 무엇을 선택하고 싶은가?'
워킹맘으로서 커리어와 육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때의 일입니다. 요즘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육아도 중요하지만 커리어도 중요하니 죄책감 갖지 말고 일하라’ 예요. 저는 흐름과 반대로 커리어보다 육아가 더 중요했고, 그래서 오히려 죄책감 없이 일을 멈추고 싶었어요.
관련된 책을 찾아보았지만, 제가 찾는 답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꿔 직장인 커뮤니티로 넘어갔어요.
워킹맘 육아, 퇴사 후 육아, 육아 휴직, 워킹맘 퇴사…
검색창에 여러 키워드를 넣어보다가, 육아휴직 복직 후 단축 근로를 하다가 퇴사했다는 한 분의 글을 보게 되었어요. 글에는 워킹맘이 아닌 전업으로 육아를 선택하게 된 이유, 그리고 회사원이 아닌 다른 챕터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감히 그분의 심정을 단순화할 수는 없지만, 글을 읽는 내내 ‘이건 내가 몇 년 또는 몇 개월 뒤에 쓸 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께 용기를 내어 쪽지를 보냈습니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임을 밝히고, 요즘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계신지, 마음은 어떤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무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분은 자신의 시간을 쪼개 답장을 주셨고, 짧은 대화 속에서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싶어요.)
요즘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참 많아요. 직장인 커뮤니티에서는 비슷한 고민을 가진 직장인을 쉽게 만날 수 있고, 스레드 같은 플랫폼에서는 더 다양하게 본인의 일을 하는 삶을 엿볼 수 있어요. 유료 모임에 참여하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이미 걷고 있는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경험은, 상상을 훨씬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어 줍니다.
저는 내향적인 데다가, 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중요한 결정을 혼자 오래 품고 있는 편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요. 확신이 생길 때까지 말하지 않고, 준비가 완벽해졌다고 느낄 때 비로소 말을 꺼내죠.
이 방식이 결정을 지연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말하지 않으니 생각은 검증되지 않은 채로 자꾸만 커지고, 스스로 만든 가정 위에서만 굴러갔습니다.
결정을 입 밖으로 자주 꺼내면 결과는 두 가지 중 하나로 수렴하더라고요. 결정이 더 단단해지거나, 수정해야 할 지점이 보이거나. 어느 쪽이든, 머릿속에서만 고민하던 때보다 훨씬 빠르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나는 이런 방향을 생각하고 있어.”
“지금은 이 선택이 맞는 것 같아.”
이 정도의 문장으로도 충분해요. 누군가를 설득할 필요도, 말하는 순간에 결론을 고정할 필요도 없어요. 말을 뱉으면 결정은 상상에서 벗어나 현실에 안착하게 됩니다.
말은 기록과 다릅니다. 말을 하면 즉각적인 반응을 마주하게 되거든요. 상대의 표정, 질문, 잠깐의 침묵 속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점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상대의 언어적·비언어적 반응들은 상상의 허점을 인지하도록 돕고, 내가 왜 이 선택을 하고 싶은지 더 분명하게 만들어 줘요.
어떤 사람에게 말하느냐도 중요해요. 무조건 응원만 해주는 사람도 좋지만, 질문을 던져주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좋아요. “왜?”라는 질문에 답하다 보면,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 또렷해집니다. 반대로 말로 꺼내는 순간 스스로 어색함을 느낀다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지점이 있다는 신호겠지요.
저 역시 커리어 전환을 고민하며 주변에 제 생각을 자주 말했습니다. 말을 여러 번 반복할수록 어떤 결정은 더 선명해졌고, 어떤 계획은 자연스럽게 제거되거나 수정되었어요.
책을 통해 타인의 삶을 빌려 상상하고,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을 만나 상상을 현실에 가까이 두고, 그 과정을 말로 꺼내며 계속 점검하는 것. 지금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 이 중 하나만이라도 시도해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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