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토양 교체
2026년 1월 26일 발행된 뉴스레터 <낯선 어휘집>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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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0번째 글이네요. 컵에 물이 반 정도 차 있을 때, 반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듯이 10번째는 '왜 아직도 10번째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만듭니다. 100번째이면, 아니, 50번째만 돼도 좋겠는데 말이에요. 처음의 외로움과 막막함을 감히 건너뛰고 싶은 거만함이 계속 피어올라요. 제 기준점은 화려한 절정에 가 있거든요.
몇 달 전부터 끊어놓는 비행기표의 출국일을 지루하게 기다리다가, 어느덧 현재가 되어 여행지에 도착하고, 또 어느덧 그리운 과거로 남는 것처럼, 그리고 벌써 1월의 마지막 주에 도달한 것처럼 시간은 의심할 여지 없이 흐릅니다. 조급함은 내려놓고 매일매일 주어지는 오늘을 성심껏 보내다 보면 지금의 초심을 더듬을 날이 오겠죠?
<이번주 낯선 단어>
객토: (명사) 토질을 개량하기 위하여 다른 곳에서 흙을 파다가 논밭에 옮기는 일. 또는 그 흙
이번 주 낯선 단어 '객토'를 사용한 짧은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사람이 변하는 방법은 딱 세 가지밖에 없다. 첫 번째는 시간의 쓰임새를 바꾸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는 장소를 바꾸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교제하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다. —오마에 겐이치(大前研一)
이 중 '사는 장소'라 하면 인생의 꽤 오랜 시간 동안 발을 붙이고 있는 집을 바꾸는 일이다. 단순히 마룻바닥의 모양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가을날 알알이 맺히는 빨간 열매를 따기 위해 도깨비 풀을 바지에 잔뜩 묻히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천변의 공기를 가로지르거나, 멀리서 오는 배달 오토바이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대신 두꺼운 패딩을 여미고 형형색색의 간판 사이를 배회하는 것이다. 사는 장소의 변화는 시간의 쓰임새 변화로 쉽게 연결되기도 한다.
꽁꽁 간직하며 영원히 훑고 싶은 익숙한 흙을 파내고, 너무 낯설어 두렵기까지 한 흙을 퍼다가 일상을 뒤적거리며 굳이 객토를 하는 이유는 고인 구멍을 빙빙 돌며 방황하는 마음을 구원하기 위해서. 쉼이 필요한 날에는 일부러 성근 흙을 담아 꽉 막힌 물을 흐르게 하고, 너무 물러졌나 싶은 날에는 확신으로 단단해진 사람들의 흙을 빌려 부족한 영양을 보충한다. 마음의 성질을 바꿔주는 시간이 가끔은 필요하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날, 강남역 주변 빽빽한 빌딩 사이를 바삐 오가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멀뚱멀뚱 서점을 찾는 제가 이질적으로 느껴졌어요.
'이런 데에 서점이 있다고?'
주인 버터컵님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의 문을 열자 훈훈한 기운이 맞이합니다. 마침, 예약한 사람이 저밖에 없었는지 두 시간 동안 온전히 제 소유인 공간에 들어섰어요. 집이 아닌 곳에 혼자 덜렁 남아있는 게 생소했지만 금세 호기심이 차올랐습니다.
파란 겨울 하늘, 동과 남으로 난 창을 투과한 볕과 함께 저를 기다리고 있던 노란 상자. 그 안에는 버터컵님이 저를 위해 고르신 책 네 권과 정성스러운 편지가 들어 있었어요. 방문 전 메시지로 보내드린 세 개의 키워드에 맞는 책이었죠.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새로움 (도전, 공간, 역할 등등)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감사함을 느끼기
그중 한 권을 들고 가장 편안해 보이는 소파에 앉았습니다. 준비해 주신 향긋한 유자차도 잊지 않았어요. 내가 골랐다면 찾지 못했을 책을 읽으며 적은 메모, 책장을 적당히 메운 책들, 강남에 이런 공간을 만들었을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며 제 상황을 들여다보니 부럽기도 부끄럽기도 했답니다. 선샤이닝 서재가 내어준 한 줌의
다과, 책, 온도, 경험들이 관성에 젖은 생각을 헤집으며 객토를 해준 것 같았죠.
'나도 할 수 있겠어. 나도 해보고 싶어.'
조금 달아오른 열의를 품은 김에 책 『터틀넥프레스 사업일기 2: WALKS』도 구매했어요. 의식적으로 새로운 장소에 들러보면 뇌가 다시 굴러가는 기분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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