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그 둘은 어떤 차이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저 둘 다 바로 잡을 순 없을 뿐이다.
그저 걸어 다니다 어쩌다 잡은 것일 뿐인 일들은 결국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기 마련이다.
결국 바로 잡을 수 없다. 모든 건 이미 흘러가버렸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부터 어떻게 어쩌다 잡을 수 있을까. 그것뿐이다.
결국 나는 32층이라는 높다면 높고 높은 자들에겐 낮은 그런 층 수에서 나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이 느낌은 언제까지 나를 따라올까.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온갖 물건들이 쌓여있는 책상 위에는 먼지가 있는 구역과 먼지가 없는 구역이 나뉘어 있다.
더 이상은 잡지 않는 기다랗고 검은 무언가는 더 이상 형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먼지가 쌓여 있었다.
닿을 수 없이 깊이 들어가 있는 나의 지남들은 이제 다시 발악해서 꺼난다고 하더라도 뭐가 달라질까. 결국은 지금 보고 있는 지금을 위한 지금을 위한 순간일 뿐이다. 지금이 지난다면 더 이상 잡을 수 없어.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나는 지금도 잡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조차 잡지 못한 채 그저 손을 뻗지 않고 그저 기회라는 바다 위에서 나태라는 배를 타고 우연이라는 섬이 나오길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저 멈춰있고 움직이지 않는 시간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책상 위에 쌓여가는 담배와 나의 기회들을 덮어주는 담뱃재들. 어째서인지 나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잡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렇게 떠다니기만 해도 되는구나. 그저 떠다니며 유랑해도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을 거야.
편의점을 갔다. 편의점 한구석에 쌓여있는 무언가의 상자들 저 안 속에는 내가 찾는 그 무언가가 들어있지 않을까. 점원에게 이걸 박스채로 구매한다고 했다. 무엇인지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잔액이 남아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나는 카드를 꽂았고 결제가 됐다는 말에 나는 내가 들기엔 조금 무거운 그 상자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한 소년은 나를 쳐다보더니 나를 제치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나는. “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실천하지 않은 내가 대견하다. 아니. 증오스럽다. 나는 또 잡지 못했구나. 그게 옳은 기회든 잘못된 기회든 또 놓쳐버린 나를 나는 나는 더 이상 이젠 모르겠다.
집에 들어가기 위한 문은 잠겨있다. 나의 양손도 잠겨있으니 나는 이제 뭘 해야 할까. 그저 집안에서 누군가 나와서 나를 도와주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혼자 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바닥에 쭈그린 채로 상자를 끌어안으며 오지 않을 무언가를 기다리다 나는 그저 더 기다렸다. 복도는 창문이 없고 전등은 깨져있었다.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유리조각들은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까. 너와 나의 대결이야. 너와 나 둘 중 누가 먼저 치워질지 대결하자고 대결.
잠을 잤다. 여전히 나와 함께 있는 이 상자. 안에 뭐가 들어있을까 기대를 하는 시늉을 했다. 이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나는 모른 척하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그냥.
가만히 앉아서 깜빡거리는 조명을 쳐다보고 있었다. 깨져버린 조명이 생각이나 바닥을 쳐다봤다. 바닥에 있던 유리조각은 온데간데없고 바닥에 남아있던 먼지마저 사라져 있었다. 네가 이긴 거구나. 또 네가 이긴 거네. 축하해 정말로 난 네가 이겨서 기뻐. 내가 이길 거라고 생각한 내가 너무 오만했던 거지? 하긴 분명 그럴 거야. 이긴 기념으로 우리 술이나 마실까? 아 바쁘다고? 아냐 다음에 보면 되니깐. 괜찮아. 아 간다고? 그래 잘 가, 이긴 거 다시 한번 축하하고 언젠가 한번 보자고.
그 여자는 나를 여기 남겨둔 채 누군가의 차를 타고 떠났다. 까맣고 까맣지만 빛들이 비치는 그런 차. 나는 버스정류장에 앉은 채 무언가를 계속 기다리고 있다. 나를 태워다 줄 무언가. 버스의 막차는 이미 떠났고 나는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릴 뿐. 그렇게 기다렸다.
기다리다 보면 큰 중형차가 나를 태우러 왔다. 토요일은 그렇기에 너무 행복했다. 온 가족이 차있는 시끌벅적한 차 안에는 아빠의 취향인 록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옆에는 남동생이 듣고 있는 어떤 아이돌노래가 흘러나왔다. 엄마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내가 비치기만을 기다리며. 매주 영화를 봤다. 가만히 앉아도 나에게 느낌을 주는 영화가 너무 좋았다. 영화가 끝나면 아빠는 나를 데리고 게임장에 데려갔다. 나는 할 줄 모르기에 나는 늘 아빠가 하는 걸 보며 호응할 뿐이었다. 너무나 기뻐 보이는 아빠의 표정은 어째서인지 지금 생각하면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웃어주었던 것 같다. 이게 아냐. 지금을 생각하지 말고 그때로 돌아가댜 된다고.
한껏 게임을 한 후에 나와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엄마와 손톱을 뜯고 있는 동생을 데리고 우리는 밥을 먹으러 갔다. 언제나 가는 백화점 안 햄버거집. 나는 언제나와 같은 메뉴를 시키고 언제나와 같은 음료를 시켰다. 아빠는 또 이거냐고 새로운 걸 시도해 보는 게 어떠냐고 말했지만 나는 거부했다. 한입 배어물자 입에 들어오는 다량의 세로토닌. 나는 너무 행복했다. 지금 이 순간이. 내일은 어떤 일이 생길까 두근거리며 지금 이 순간조차 두근거린다. 밥을 먹은 후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은 차를 탔을 때와는 비대되게 조용했다. 특히나 주차장으로 들어갈 때의 소리와 주차장 바닥의 끼익 소리는 나에게 이제 이 달콤했던 시간은 끝이라는 느낌을 주게 만들었다. 집으로 올라와 각자의 방에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누군가 나를 부를 때까지 그저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무언가를 시킬 때까지.
이젠 무슨 상관이야. 아무 상관없다. 나는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 가득 있는 가스통을 보곤 나는 살면서 자진해서 무언가를 해보기로 생각했다. 나는 일어나서 옷에 잔뜩 쌓여있는 먼지를 털고 상자를 집안으로 옮겼다. 전자레인지안에 가스통을 잔뜩 넣은 후 99분 99초를 맞춰둔 후 나는 소파에 앉았다. 소파옆에 쌓여있는 편지뭉텅이를 하나하나씩 까보기 시작했다. 가스비 전기비 보험비 쌓여있는 조의금. 절대 열지 않기로 했던 편지를 열었다. 편지에는 동생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안에 담긴 이메일의 스크린숏. 그곳에는 비행기에 차있는 가족들의 사진이 있었다.
너무해 나만 빼놓고 여행을 가다니. 엄마는 창밖을 보고 있었고 아빠와 남동생은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남동생이 유학을 가기에 나는 할머니집에서 잠깐 묵었었다.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비행기가 무서웠다.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살면서 자진해서 무언가의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 꼴인 것 같다. 나는 그저 말하는 대로 했어야 했다. 그저 오는 순간만을 따라갔다면 나만 여기서 이렇게 당신들을 기다릴 필요 없었을 텐데. 전자레인지에서 칙칙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은 굉장히 컸다. 이 소파에 앉아서 가만히 창밖을 보고 있자면 그때의 엄마가 정확히 이러고 있었다는 게 생각난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 우릴 증오했어? 사랑하긴 했어? 이젠 물어볼 수 돈 없는 이 질문들은 어디로 가야 되는 거야?
이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너무나도 행복하다. 따뜻한 햇살이 날 비추고, 빈 속을 가득 채우는 이 연기는 너무나도 충만했다. 몇 년이 지나고 지금에서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금까지 쌓여있었던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당신들이 흘리지 못했던 눈물은 전부 내 몫이구나.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내가 원하던 시간은 오지 않았다.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너희들에게 닿지 못했고, 나는 계속해서 기다렸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온 세상은 까매졌다. 초인종 소리가 들렸고, 밖을 나가보니 바닥에는 편지가 있었다. 계속되는 전기세 미납으로 인해 전기가 끊긴 거 같다. 그 어떤 나의 선택도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주지 않는구나.
나는 다시 복도에 앉은 채 깨져버린 전구가 달린 천장을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