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몇 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뜬금없이 튀어나와서는 나를 곤란하게 하는. 이번에도 그랬다. 내가 두 달째 집안에 박혀있을 때 주소는 또 어떻게 알았는지 집 방문을 온 세상에 들릴 정도로 크게 두드리고서는, 일반적인 안부인사나 담소 따윈 없이 나에게 지금 당장 떠나자고 했다.
날씨는 덥다기에는 밤에는 추웠고, 새벽이 되면 창문을 닫고 있어야 했다. 이국적인 공기의 냄새는 매 쾌하지만 그들만의 색깔이 있었고, 늘 풍기는 옆집의 토향적인 음식 냄새 또한 그 이국적인 공기라고 느끼는 데에 한몫했다.
그를 따라서 이곳에 온 지도 한 달이 다되어가는데 지금까지 한 일이라곤 매일 한번 수영장에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이런 애매한 날씨가 일 년 동안 유지된다는 이곳에서 매일 아침에 옷을 집어던지고 물에 들어가며 점심에는 반팔을 입고 저녁이 되면 긴팔을 입는 식이었다.
이 먼 타지에서 먹는 거라곤 이곳에 온 첫날에 이곳의 물가에 감탄해 잔뜩 샀던 고형식뿐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수영을 하곤 오후 1시쯤에 어딘가로 떠났다. 어딘지 물어보고 싶지도 않고 딱히 관심도 없어서 그가 오기 전까지는 수영장에 몸을 맡기거나 그저 누워서 천장을 쳐다볼 뿐이었다. 이 애매한 집의 누렇고 축축한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면 고향집이 생각난다. 온 지 한 달밖에 안 됐지만 그립지도 않지만 생각나는 그 공간. 답답하고 매 쾌한 담배연기와 옆집의 더운밥의 냄새. 어디선가에서 흘러오는 쇠 냄새에 머리가 아팠고, 죽어라 피웠던 담배냄새에 더 머리가 아파서 담배를 폈다. 이곳도 점점 그곳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매일같이 펴대는 담배에 천장은 점점 더 누렇게 변해갔고, 처음에는 특이했던 옆집의 음식은 어느샌가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내 입에 남아있던 이 보형식 냄새는 더더욱.
매일 아침 들어가는 이 불소 가득한 수영장만이 나를 그곳과 단절시켜 주었다.
이름 모를 나무의 잎이 떠있는 이 차가운 수영장은 발이 닿진 않지만 그렇다고 깊다고는 느껴지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의무감이 느껴졌다. 그가 들어가기에 나도 들어갔지만 이제는 그가 없어도 매일같이 들어가게 되는. 이상한 의무감에 사로잡혀서 매일같이 옷을 벗어던지고 물에 들어가면 흩날리는 머리가 내 몸을 툭툭 기분 나쁘게 쳐낸다. 간지럽고 누군가 건드리는 느낌이라 뭔가 이상했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이 간지러운 접촉들이 날 곤두서게 했다.
오랜 시간 접혀있던 관절에 차가운 물이 스며가고 나를 어떤 막으로 씌울 때면 느낌이 이상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가시지 않은 아침에 들어가 불쾌할 정도로 더운 정오가 되면 그가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그는 물에 있을 때는 언제나 물밑에 잠수하기를 즐겼는데 어떤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물 밑에서 쭈그려 앉아있을 뿐이었다. 태어나기 직전의 태아와도 같은 모습이 귀여워서 보고 있으면 곧 뜨거워질 날씨와 무관하게 몸이 달아올랐다.
12시 40분 즈음에 그는 늘 그렇듯 수영장을 나가 언제 빨았을지 모를 늘 밖에 내두었던 긴 타올로 몸을 슥슥 닦고는 아침에 벗어던진 옷을 입곤 나갔다. 그 어떤 인사도 없이. 그 어떤 인사도 기대하지 않았기에 어떤 인사도 주고받지 않았을 뿐.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본 후에 나는 다시 물 위에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기에 뜨거워진 내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들은 나뭇잎들과 같이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물안의 불순물들이 층층이 쌓여있다면 나의 분비물들은 네가 잠수하는 그 끝까지 닿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끝나지 않는 매미소리와 아지랑이들.
냉장고는 작동이 되는지 안 되는 지도 모를 정도로 물은 미지근했고, 보형식은 늘 그렇듯 딱딱했다.
이런 습기 많은 날씨에 조금이라도 눅눅해지지 않을까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이제는 매번 내심 기대를 하게 된다. 나도 촉촉한 고형식을 먹을 기회가 있지 않을까.
열려있는 베란다 문을 보고 있자면 가둬져 있는 저 불순물 가득한 물이 계속 눈에 밟힌다.
아직까지 내 몸에 남아있는 불소냄새는 어째선지 내 몸을 달아 올리긴 충분했고, 나는 계속해서 내 몸을 탐했다. 방안에 내 냄새가 가득 차기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찌든 내들이 그것을 방지해 주었다.
나는 잠에 들었고. 꿈을 꾸었다.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는 내 앞에서 걸으며 이어폰을 끼고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전화를 하는척하며 헛소리를 지껄이는 너의 뒤통수를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나는 양팔을 이제는 짧아진 코트에 넣고 최대한 머플러에 얼굴을 파묻으며 걸었다.
빠지직 뿌드득 눈 밟는 소리. 네가 남긴 발자국에는 인간미가 없었다.
"우린 지금 어디론가 향하는 게 아니야. 세상은 우릴 이 자리에 머물게 하도록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거든."
갑자기 그는 내 쪽으로 휙 뒤돌고는 이런 소리를 했다.
나는 무시한 채 그의 옆을 툭치고는 계속해서 걷기 시작했다.
나를 지나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샌가 흐르지 않는 물로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잠에 깼다.
날씨가 추운 탓인지 배가 아팠다.
수영장은 여전히 고요했고, 나뭇잎들과 나의 체액들은 기름처럼 둥둥 떠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