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감독
이영진
유명 성악가이며 오페라 연출가이신 오현명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 내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국립오페라단에서 김유정 원작의 오페라 <봄봄>을 지방순회공연으로 재공연하게 되었다. 조연출 겸 무대감독으로 처음 선생님을 뵙고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 뵙고 싶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싹싹하니 인사도 잘하누만, 내레 오현명이야요. 잘 도와주시구레.” 평북 철산에서 태어나신 선생님은 이북 사투리를 진하게 쓰셨다. 언뜻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어 당혹스러웠지만 투박한 말투에 정감이 넘쳤다.
선생님 대본에는 조그마한 액팅(acting)부터 의상과 분장까지 자세하게 메모되어 있고, 여주인공 얼굴의 점까지 그려두셨다. 그렇게 공연을 준비하던 중에 선생님이 갑자기 입원을 하셨다. 부득이 내가 선생님 대본을 보면서 연습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연습 중에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주인공 점순이였다. 봄바람 난 열일곱 살 점순이를 표현해야 하는데, 사십대 여女교수의 연기가 어색해서 좀 더 과장되고, 어린 소녀답고, 철없는 행동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봄바람에 살랑대는 시골 소녀임을 잊지 말라고 계속 어려운 주문을 했다.
건강이 회복되신 선생님은 다시 연습을 진행하셨다. 그런데 대뜸 큰 목소리로 역정을 내셨다.
“누가 액팅을 이따우로 경망스럽게 해놔서?”
순간 연습실 분위기는 경직되었고, 교수님은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게지셨다. 나이 드신 성악가들은 오 선생님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알므로 안절부절못했다. 선생님은 엄격한 원칙주의자여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용서가 안 되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큰일이다 싶어 무릎걸음으로 다가가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조금 바꿔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왜?”
“봄바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나비처럼.”
“나비?” 선생님은 침묵하시더니, “알아서. 계속하라우.” 하셨다.
몇 군데 지방공연까지 무사히 마치고, 귀경 버스에서 선생님은 나를 불러 옆자리에 앉히셨다. “내레 지금까지 수많은 조연출, 무대감독과 일해 봤어도 림자가 제일이야. 잘해서. 수고 마이해서.” 하며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나는 대大연출가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그동안의 힘든 과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서 오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어이, 리감독. 내레 오현명이야요.”
굵직한 목소리의 울림에 울컥했다. 아직도 나를 기억하시다니….
“선생님, 건강하십니까?”
“건강? 내래 암이야요.”
“예?”
“간암.”
“…… 요즘은 약이 좋아서 곧 괜찮아지실 겁니다.”
“아냐, 말기야요. 간암 말기.”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기래서 말이야. 내레 리감독 한테 부탁할 말이 있어서 전화해서.”
“예, 뭐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조금 있으면 내레 독창회를 해요. 이거이 내 마지막 독창회가 될 거이야. 기래서 말이야 리감독이 내 마지막 무대 좀 맡아줬으면 해서 말이야.”
“예, 선생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기런데 말이야. 거 가곡 중에 림진강이라는 노래가 있어. 그거이 부를 때 내가 림진강, 림진강, 림진강 하고 흐흐흑 하고 손으로 얼굴을 감싸면 컷 아웃 시키라우. 컷 아웃 알디? 암전暗轉 말이야.”
“예, 선생님. 그런데 독창회 중에 암전하면 흐름이 끊길 텐데요. 괜찮겠습니까?”
“암말 말고 고대로만 해주라우. 타이밍 놓치디 말고. 무대는 시간이 생명인거 잘 알디?”
그렇게 나는 선생님의 마지막 독창회 무대감독을 맡았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림진강’정확한 타이밍에 컷 아웃 해서 10초 간 적막 후에 다시 조명을 넣고, 무사히 독창회를 마쳤다. 선생님은 무대에서 나오시면서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우며 나를 껴안아 주셨다. “리감독, 고마우이. 이젠 여한이 없어.”
토닥토닥 내 어깨를 두드려 주더니 분장실로 들어가셨다. 나는 그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다 깊이 고개 숙여 원로 예술가의 뒷모습에 최고의 경의를 표했다.
그 후에 ‘림진강’이 북한의 대표적인 가곡이며,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리는 유일한 강이라는 걸 알았다. 무대감독이라면서 곡의 대본 분석도 안하고 무대를 맡았으니….
선생님은 ‘림진강’을 부르면서 갈 수 없는 고향이 그리워 울고 계셨을 것이다. 암전 사이에 눈물을 흘리고,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셨을 것이다.
몇 년 후, 선생님의 부음訃音을 들었다. 영전에 향을 올리고 큰절을 올렸다. 내 생전에 잊지 못할 큰 스승님께 좋은 곳에서 늘 그리워하시던 부모형제들과 평안하시라고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지금껏 선생님의 묘소가 어딘지도 모른다. 내 무심함을 자책하면서도, 선생님은 차가운 땅 속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계신다고 자부한다.
요즘도 밤늦게 공연 마치고 터덜터덜 집으로 가다 밤하늘을 보면, 가끔 오현명 선생님의 굵직한 목소리를 듣는다.
“이보라우, 리감독. 힘내라우! 당신은 최고의 무대감독이야. 그 사실을 잊디 말라우.”
밤하늘의 총총한 별처럼 그리움이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