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잠식된 사회
돈에 무릎 꿇은 사회
기원전에 탄생한 너는 오랜 기간 모습을 바꾸며 인간사회를 지나왔지만 그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너는 여전히 인간 위에 있다. 그런 네가 무척이나 괘씸하다. 결국은 너에게 굴복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물물교환을 대체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너의 등장은 참으로 획기적이었다. 더 이상 비슷한 가치를 지닌 물건을 낑낑대며 들고 와 원하는 물건과 바꾸는 수고 따위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까.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너만 있으면 인간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인간들은 더 이상 어떤 물건을 원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물건을 원하는 대신에 어떤 물건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원하기 시작했다. 너만 있으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결국 인간들은 ‘너 자체’를 원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것은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너를 품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심리적인 만족감과 안정감, 그리고 행복하다는 착각을 얻었다. 그렇게 인간의 욕망은 표면 위로 올라왔다.
너는 오래전 돌, 나무, 혹은 종이 따위로 만들어지곤 했다. 인간들은 다양한 원천으로 만들어진 너의 몸에 이것저것을 새겨 넣기 시작했다. 추앙받는 인물의 얼굴이라던가, 숫자 따위의 것들을 말이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추구하고 추앙하는 가치를 너의 몸 표면에 다양한 방법으로 표기했는데, 그런 모습은 꽤나 멋있게 보였다.
인간들은 언제부터인가 너와 굳이 같이 다닐 필요가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 전부터의 일이다. 너와 같이 다니는 것은 모든 인간들이 원하는 일이었지만, 너는 물리적으로 조금 무거웠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에 인간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너와 같이 다니지 않으면서도 계속 함께할 수 있을까. 결국에 인간들은 해답을 찾았다. 그것은 너를 ‘숫자’ 그 자체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인간들은 너를 물리적으로 보거나 만지지 않아도 너의 가치를 주고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너를 ‘숫자’ 그 자체로 만드는 갖가지 방법을 고안해 냈다. 예를 들면, 작은 플라스틱 재질의 물건에 진보한 과학기술을 입혀 네가 그 안에 존재할 수 있도록 어떤 환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작은 플라스틱 물건 안에서 너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온라인상의 주소만 있으면 이 세상 어디로든 너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어떤 실질적인 제약 없이 말이다.
인간들은 무언가를 원할 때 더 이상 너를 직접 주고받지 않아도 되었고, 너는 그저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할 뿐이었다. 너는 한계 없이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너는 그렇게 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