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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웨이 May 03. 2022

기획한 브랜드가 없어졌다.




기획한 브랜드가 없어졌다.



작년 봄, 오래도록 몸 담았던 화장품 회사를 퇴사하고 뷰티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 회사로 이직했다.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신규 브랜드 론칭을 위해 평일, 주말 밤낮없이 기획서를 작성하고 수정하고를 반복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는 오너의 선택에 따라 브랜드 방향성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고, 

바뀌는 방향성에 맞춰 여섯 번의 브랜드 콘셉트와 스토리를 기획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일곱 번째 기획한 브랜드가 최종 확정되어 신제품을 개발하였고, 

임상 시험을 준비하며 올해 7월 론칭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회사에서 집중하는 메인 사업이 변경됨에 따라 뷰티사업부 전체가 하루 아침에 없어지게 된 것이다. 대신 새로운 팀에서 다른 주제의 제품과 브랜드를 담당하는 기획자로 일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 고3 수험생들을 위한 취업 메이크업 강의 -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쏟은 시간과 노력이, 내가 맡은 업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들이 결국에는 내가 선택하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는 것이 허무했다.


나는 지난 6년 간 오로지 화장품 상품기획자로서 밀도를 쌓아왔다. (누군가는 나를 화장품 쟁이라고도 했다.)

첫 직업은 은행원이었지만 화장품 상품기획자가 되고 싶어 오랫동안 부모님을 득했다. 

2년 동안 메이크업 자격증을 따고, 퍼스널 컬러를 배우고 화장품 교육 강사로 차근차근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화장품 상품 기획자가 되어서도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을 위해 강의를 하며 내가 화장품 상품 기획자로서 배우고 나눌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해왔다.


지금껏 화장품 상품기획자가 아니면 다른 길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쉽고 빠르게 이루진 못했지만 차근차근 성장했고, 

무엇보다 내 의지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상황에 만족하며 그저 오래도록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개인이 아닌 산업으로 보았을 때 화장품 시장 이미 과포화 상태였다.

들으면 누구나 아는 유명 브랜드의 매출과 순이익이 마이너스라는 것을 알았을 때,

론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브랜드들이 운영 종료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감정이 들었다.


빠르게 변화하고 급속도로 성장한 만큼 품질은 상향 평준화되었지만
찍어내 듯 카피되어 쏟아지는 제품들로
 넘쳐났다. 

그만큼 앞으로 새로운 브랜드나 제품이 주목받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내가 하는 일의 한계를 느꼈다.

브랜드는 그냥 쉽게 얻어지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존하지 못하고 출시되지 못하면, 준비해 온 어떤 것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나 하나의 진심과 노력이 더해진다고 해서 오래도록 생존하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까?

그것 마저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쉽게 퇴사를 결정할 수도 없었고, 지금껏 준비해온 것들을 쉽게 놓아버릴 수도 없었다.





기획한 브랜드가 없어진 날, 올려다본 하늘은 너무나 맑고 높았다. 그리고 벚꽃잎이 흩날렸다.



그래서 결정했다.

기획자로서의 변곡점을 스스로 만들어 보기로.                      

바람에, 환경에 따라 피고 지는 잎이 아니라 단단한 '뿌리' 가 되기로.


익숙한 안전지대를 벗어나 평소라면 절대 가보지 않았을 길을 가보는 것

불안의 근원과 정면으로 맞서고, 낯선 방식으로 임해보는 것

그리고 기록하는 것



화장품 상품기획자를 준비하는 친구들

그리고 화장품 상품기획을 하고 있는 동료들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하는 기획자들과 같이 나눌 수 있는 것들을 남기고 싶다.


누군가에게 작은 응원과 영감 조각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변곡점에 서 있는 스스로에게도 현명한 답을 찾는 힌트가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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