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이우 프로젝트

세상과 소통하기

by 이우




인간은 대화 없이 살 수 있는가. 자신의 고민을, 고통을, 슬픔을, 기쁨을, 행복을,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살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반드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인간은 언어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들도, 청각장애인들도, 심지어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도 언어를 깨우쳤다. 하나의 존엄한 개체로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을 하기 위해 말이다.


소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삶의 수단이요 양식이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주구장창 대화를 나눈다. 저 히키코모리들도 세상과 단절된 것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신들의 견해를 끊임없이 개진한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긍정하고 변호하며, 상대방으로부터는 공감과 인정을 이끌어낸다. 대화를 통하여 우리는 존재감과 생의 감각을 느끼는 것이다.

허나 나는 그동안 대화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고독이 멋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대화하는 것을 꺼려했다. 고전문학에 심취되어 있을 때는 주변 사람들을 단정 짓기까지 했다. 다들 뭘 몰라도 한참이나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때문에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몇 달 만에 여행에서 돌아온 내게 친구들이 반기며 어땠냐고 물을 때면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음... 뭐, 좋았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대화를 해야 하는 필연적 본능이 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15년 동안 감금을 당한 오대수가 밖에 나와 사람을 처음 보고 하는 말은 이렇다. "대화를 하고 싶다." <캐스트 어웨이>의 척 놀랜드, 무인도에 홀로 표류하게 된 사내는 배구공에 '윌슨'이라는 인격을 부여하기까지 한다. 대화를 하기 위하여. 나 역시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말을 아꼈지만 대화를, 소통을 해야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많은 이야기들을 썼다. 스무 살 무렵부터 써온 일기장은 책장에 재미없는 전집처럼 꽂혀있다. 땔감으로 쓴다면 이 한파도 거뜬히 보낼 수 있을 만큼의 양이다. SNS에도 실로 많은 글들을 써왔다. 대화를 꺼려하던 나였지만, 이젠 주위 사람 모두 내가 소설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주구장창 SNS에 글을 써댔으니 말이다. 직접 이야기했으면 되었을 것을.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법이다. 애 굳은 손가락만 고생한 셈이다.

실로 어리석은 방법이었지만, 이제 쓰는 행위가 내게는 대화요 소통하는 방법이 되어버렸다. 굳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무언가에 대해 쓰고 싶은 마음뿐이다. 입이 아닌 펜으로 말이다. 오늘도 쓰고 싶은 주제들을 잔뜩 선정해보았다. 내 나이 서른하나. 이제 자신이 있다. 글을 잘 쓸 자신이. 글에 나만의 시선과 개똥철학을 담아낼 자신이 말이다. 그래, 인간이 서른은 족히 넘어야 무엇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주야장천 써왔던 이야기들과, 앞으로 해나갈 이야기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기로 했다. 이름하여 '일간 이우 프로젝트'. 주제의 경중함에 따라 다섯 개의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비바체, 모데라토, 안단테, 그라베, 렌토. 모두 있어 보이게 음악에서 사용하는 빠르기말을 차용했다. 경쾌함부터 장중함까지 다섯 단계이니 실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아무래도 나는 그동안 살아온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해야할 것 같다.

말을 아끼고 글을 쓰자. 일간이우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