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권의 책을 버리다

책과 함께 허영심을 버리다

by 이우

어느덧 서재에는 더 이상 꽂을 수 없을 만큼 책이 쌓여 있었다. 3년 전, 마지막으로 세었던 게 천이백 권 정도였으니 족히 천삼백 권은 될 것이었다. 서재의 책은 나의 역사이며, 소장품이며, 자랑거리였다. 나는 문학의 길을 걷는 소설가이다 보니 서재가 어느 정도 나를 대변하고 있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서재가 더 가득 차야 더 좋은 문학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편집증적으로 책을 수집해갔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 서재가 내 삶에 독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재에 쌓여가는 책들에 비례해 내 삶의 허영심도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나는 이 정도의 장서를 소유했다.“는 만족감과 자부심. 이 지적·문학적 허영심은 어느새 내 삶에 깊게 뿌리내려 있었다. 그동안 출간했던 7권의 작품, 인문학에 대한 미비한 지식과 식견, 그리고 점점 늘어가는 장서. 나는 그동안 이루고 소유한 것들에 집착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독서를 게을리하기 시작했으며, 인문학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이렇게 되다간 내가 꿈꾸는 소설가는 물론이거니와 발전 없는 인간이 되겠다는 위기의식이 들었다.


허영심을 버리고 그 빈자리에 열정을 채우기로 결심했다. 세 가지 기준으로 책을 솎아냈다. 읽었지만 별로인 책, 소장 가치가 없는 책, 앞으로도 읽지 않을 책. 꼬박 하루가 걸려 골라낸 책만 500여 권이었다. 가족은 책이 아깝다며 누군가를 주거나 중고서점에 파는 걸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버려야만 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절차와 과정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삶에 과감한 결정도 필요한 법이다. 나는 빠르게 나의 허영심을 처분해야만 했다. 박스에 허영심을 담아 폐지로 넘겼다.


빽빽하던 서재의 절반이 이제는 빈 공간이 되었다. 여백이 생기니 오랜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허영심도 함께 버려진 것일까, 나는 다시 인문학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가벼운 마음으로 본격적인 독서를 시작했다. 그리고 출간한 도서에 얽매이지 않고, 마치 어떤 작품도 출간한 적 없는 문학도처럼 열정을 갖고 새로운 작품 집필에 착수했다. 이제 서재는 나의 허영심이 아니라, 여백으로 채워져 있다. 나는 이 여백을 열정으로 채우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이 열정의 여백을 읽은 책들과, 읽을 책들, 그리고 나의 새로운 작품들로 채워나갈 것이다.


허영심을 버리고, 열정을 되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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