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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운진 Jul 18. 2023

[국경 2]

―여행 가방에 넣고 싶은 시 4



국경 2

-허연        


  

무엇이 되든 근사하지 않은가

선을 넘을 수만 있다면     


새의 자유를 생각하면 숨이 막혔다 남은 알약 몇 알을 양식처럼 털어넣고 소련제 승합차에 시동이 걸리기를 기다렸다 오한이 들이닥쳤다 서열에서 밀려난 들개 몇 마리 폐건물 주변을 서성이고 녹슨 기름통 위로 비현실적인 해가 지고 있었다 오늘도 선을 넘지 못했다 나는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는 듯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몇 마디 욕설을 중얼거렸다 또 밤이 오는 게 무서웠다 들개보다 AK-47보다 그리움이 더 끔찍했다 지난여름 폭격에 끊어진 송전탑에선 이따금씩 설명할 수 없는 불꽃이 일었다 아름다웠다 나는 어느새 저주했던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의 슬픈 무르가프     


오늘도 선을 넘지 못했다    

      

-『오십 미터』, 문학과지성사, 2016.     





    자동차를 타고 맘껏 달려가면, 동해, 서해, 남해 앞에 다다른다. 그 너머를 가려면 이제 비행기를 타든지 배를 타고 수평선과 날짜 변경선 같은 것을 넘어가야 한다. 그렇다. ‘선’을 넘어야 다른 바람, 다른 풍경과 조우하게 되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서 우린 늘 선의 안쪽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대체로 안쪽은 안전하고 따듯하다. 그에 비해 선의 바깥은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미지이다. 그런데도 늘 선을 넘고 싶어 하는 까닭은 현재의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이 되고 싶은 소망 때문이 아닐까. 선을 넘어 거기에 간다면 나는 이름과 몇 가지 숫자로만 증명되는 사람이 되고, 그렇게 떠도는 동안에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불안하고 짧은 자유를 느낄 수도 있을 테니까.     

   

    시인이 그리는 무르가프는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에 있는 표고가 아주 높은 도시라고 한다. 그러나 그곳이 지도 위의 어딘지 정확히 몰라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어딘지 잘 모르는 쪽이 훨씬 더 괜찮다. 낯선 이름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니 내가 아주 멀리 떠났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런 곳에서 맞는 밤.

    허나 시인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혔던 자유를 말하지 않고 그리움을 말한다. 옛 애인의 소식 같은 것이 알고 싶어지는 밤이 찾아온다면, 그 밤은 들개나 테러리스트의 소총보다 무서운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이렇게 멀리까지 떠나왔는데도 떨쳐지지 않는 그리움이라니. 아니 멀어졌으므로 더욱 거칠게 달려드는 게 그리움인 걸까. 무르가프에서 그보다 더 가기 어려운 곳으로 국경을 넘으려고 기다리는 시인은 마음의 국경을 헤아리며 시를 쓴다. 이는 또 무르가프이므로 가능한 마음일 것이다.

 

    불온하다고 해도, 나이에 어긋난다고 해도, 한 번쯤은 허락해 보고 싶을 때가 있으니, 마음이 마음 속 튼튼한 국경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도록 잠시 허락하는 것. 여행의 자유란 이런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선을 넘지 못했다”라는 이 말이 마음을 향할 때면 너무 아프고 간절해지는 건 막을 도리가 없다.      


    저주했던 것들조차 아프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여행이라면, 내겐 아주 긴 여행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럴 때, 국경을 넘은 나의 무르가프는 어디쯤일까, 얼마나 멀까… 

(이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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