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서 특별한 장소를 하나 꼽으라면 선택하고 망설일 것도 없이 자장면집이다. 외식이 기념할만한 행사였던 먼 어린 날, 어린이날이나 방학하는 날, 그리고 생일날 정도에만 겨우 바깥 음식을 먹곤 했다. 그리고 그땐, 다른 음식은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자장면만을 먹었다.
그런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까? 내겐 잘 바뀌지 않는 편견이 있다. 지장면집은 꼭 바깥벽부터 조금 낡고, 나무 식탁은 비닐로 덮여있고, 벽에는 주인의 손으로 적은 메뉴판이 붙어 있어야 진짜 자장면집에 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논리에 맞지 않고 고집스런 생각인 줄 알지만 마음이 원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이제는 오히려 식당 밥보다 집밥이 편하고 좋아진 나이지만, 여전히 가끔 자장면이 먹고 싶어지는 건 자장면의 맛 때문이 아니라, 어린 나를 둘러싸고 있던 따듯하고 작은 세상에 대한 추억 때문인 것 같다. 부모님 곁에서 동생들과 코를 박고 후루룩 빨아 당겼던 행복을 기억하고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일 터이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가끔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한적한 마을길을 지나게 될 때, 세월을 고스란히 이고 있는 자장면집을 찾아 두리번거리곤 한다. 예쁜 카페나 소문난 맛집이 아니라 문을 열고 들어서면 삶의 버거움이 녹아내릴 듯한 그런 자장면집을 찾느라 눈길이 바빠지는 것이다.
시인도 꼭 그런 심정이었던가 보다. 바닷길을 따라 가다가 마음이 시장기를 느끼고 조금 쓸쓸하고 외로웠던가 싶다. 아, 이쯤에서 자장면 한 그릇 먹었으면....하는 그 순간 나타난 자장면집. 자장면집의 문을 여는 순간, 마음을 어지럽히던 걱정과 어둠은 진한 냄새에 묻히고 모든 것은 단순하게 정리되고 만다.
오래된 나무 뿌리 같은 다리를 뻗고 파도가 치대고 바람이 때려서 만든 자장면을 먹으면서 문득 깨닫는다. 수십 번 메쳐서 쫄깃해진 면발처럼 삶도 그렇게 때기장쳐지며 웃음 한 가닥, 울음 한 가닥, 줄줄이 휘늘어지는 것이라는 걸. 그러니 그것을 “내 힘줄”이라 불러도 누가 탓할 것인가.
눈물인지 땀인지 삶을 적시는 것들을 닦고 싶어질 때면 먼 바닷가 조용한 길목에 있는 “그 자장면집”에 같이 가자고 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소박하고 편안한 여행을 이 가을에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