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진 시집 / 『톨스토이역에 내리는 단 한 사람이 되어』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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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개❚
“이제 막 자유를 연습하는 이들에게,
시가 건네는 조용한 안부”
이운진 시인의 시집 『톨스토이역에 내리는 단 한 사람이 되어』가 개정판으로 새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기억과 시간 위에 놓인 감정들을 조용히 발굴해내고, 상처조차도 품은 채 나아가려는 한 사람의 기록이다. 한때 세상의 가장 외진 정거장에 홀로 내리는 사람처럼, 삶과 사랑, 상실과 자유를 오롯이 끌어안으며 써 내려간 시집이다.
겨울을 지나도 또 겨울이 오는 계절처럼, 잊고 싶은 기억과 지우지 못한 감정 사이를 건너며 시인은 시 속에서만 몸을 녹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놓인 무수한 질문들을 껴안고, 결국 다시 살아내는 방법을 시에서 찾아 나선다. 하여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고, 누구의 기대도 짊어지지 않은 사람이 되기까지의 여정이 시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견딤 끝에, ‘나, 이제 막 자유를 연습하기 시작했으므로’라는 문장에 이르는 길이 바로 이 시집을 읽는 지도라고 하겠다.
때로는 실패한 모든 사랑에 대해서도 그 실패로부터 비로소 빛나는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차근차근 이야기해주고 있으므로, 떠남과 견딤의 시간 끝에 다시 사랑을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이 시집은 조용히 공감의 말을 건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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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영화 〈마네의 제비꽃 여인〉에서 마네는 베르트 모리조에게 한편의 작은 액자 그림으로 못 다한 말을 다한다. 이운진 시인의 시에는 편편마다 그 간절함이 마치 화선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연둣빛처럼 숨쉬고 있다. “수인(囚人)이었으며 사랑이 던져버린 돌멩이” 하나로 시인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견뎌온 것일까. 언제부턴가 낭만과 함께 절실함이 사라진 한국의 시단에 그가 혼잣몸으로 노래하는 간절함은 시적 청명과 순수를 소환하는 부활의 메시지로 그만의 소중한 자산이다. 나는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마치 베르트 모리조의 숨은 화폭을 마주하는 듯한 벅찬 숨결을 느낀다. 그의 시는 행간의 침묵, 생략된 부호 하나조차도 절실함으로 무장된 숨가쁜 은유다. / 이태관 (시인)
이운진의 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모순된 인식은 시를 비통하게 만든다. 때문에 그의 시는 뼈저리게 아프고 내밀하며 자신을 투신할 것 같은 위험이 있다. 비통함이 폭발하여 맹점을 폭로하고, 폭발하여 이별을 간직하고, 폭발하여 노래와 숨결이 되는 시집. 시인이 가진 창의적인 인식은 표면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이제 막 자유를 연습하기 시작”한 여행자, “여행하지 않는 여행자”의 여행기. 비통과 자유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를 간직한 시집. 모든 자유는 내부에서 먼저 온다. / 강미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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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시인의 말
개정판을 내며
제1부
11월의 끝/여행하지 않는 여행자/밤의 대릉원/난청의 시절2/바다 옆의 방/도망가는 사랑/그러는 동안/톨스토이역에 내리는 단 한 사람이 되어/Moon Snow globe/설야雪夜/헌책방에서/흔적/밤 강물 곁에서
제2부
영원한 비밀/실루엣의 세계/옛 일기장을 찢으며/파란 달/강변북로/어둠속에서 다시 한 번/진부령의 구름처럼/밤이 준 것/2월에 매화를 보다/난청의 시절3/우문愚問/검은 눈물 가득한데/행복을 표절하다/해빙기2
제3부
봄의 환지통/첫눈 무렵/선셋 증후군/눈물에도 전성기가 있다/기억 극장/제비꽃을 위하여/악몽/따뜻한 반어법/봄밤/나의 엄마들/마흔아홉/재스민나무의 데스마스크를 보며/난청의 시절4/망각은 이렇게 온다/살구나무에게 가서 울다
제4부
이것은 겨우 나의 자유/정박碇泊/페넬로페의 노래/떠돌이까마귀처럼/훔친 기억/난청의 시절1/건조주의보/고백을 위해/밤의 노래/기억의 환지통/비행운을 보는 저녁/다시, 동해로부터/겨울 일기/발굴이 될 때
■ 해설
고봉준_상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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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도망가는 사랑
사랑에 관한 한
나는 어떤 것도 상속받지 못해서
팔도 없이 껴안고 손도 없이 붙잡으려 했어
빛에서 어둠만을 도려낸 듯
검정보다 검은 네 얼굴을
나는 닫힌 눈꺼풀 안의 눈으로만 보았지
세상에 없던 방식으로
벼락이 사랑스러운 이유만큼 너를 보듬고 싶었는데,
강물이 음악이 된 그때 그날
나의 눈물과 봄과 내일을 주고서라도
누군가의 두 팔을 빌려 왔더라면
작은 가슴이라도 빌려 왔더라면
메마른 네 그림자를 가질 수 있었을까
더 이상 다르게 올 수 없는 너를
우주처럼 슬프고 자정처럼 아름다운 너를
빗방울 지는 소리에 묻지 않아도 되었을까,
사랑에 관한 한
나는 아직 너에게
나를 잊을 권리를 주고 싶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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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雪夜)
눈이 와요,
라는 말 얼마나 유정(有情)한지
함부로 전하지 못하겠네
창 밖에는 사르륵 사르륵
마치 전생의 장례식 같은
고요
한 없이 깊어가고
눈 오는 소리 안에는
내 귀에만 들리는 목소리 낭랑해지는데
눈이 와요,
이 무용한 독백은
끝내 허공을 건너지 못하네
눈송이 눈송이
내려와
한 그루 나무의 실루엣이 바뀌는 동안
나무보다 먼저 마음을 다 덮고
나는 생각하네
왜 추억은 아직도 눈빛을 약속하려 하나
왜 나는 조각난 기억을 붉은 심장인 듯 지키려 하나
기억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찾을 수 없는 밤
그 먼 시절로부터
흰 눈이 오네
❚펴낸곳:소월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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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역에 내리는 단 한 사람이 되어』 의 개정판 시집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아껴주셨던 독자분들과
새로이 만나게 될 독자분들 모두의
따뜻한 관심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