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시로 쓴 것들이 몇 편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림이 오래오래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고 남았다가
다른 모습이 된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 속 치마들에 매혹되어
<내 치마에 대한 진실>(『타로 카드를 그리는 밤』에 수록)을 썼고,
에드워드 호퍼를 많이 좋아해서 품고다니다가
<바다 옆의 방>(『톨스토이역에 내리는 단 한 사람이 되어』에 수록)을 언어로 옮겼다.
이번엔 이중섭의 <묶인 새>를 시집 속에 넣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던 시절, 나의 아픔을 함께했던 그림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정말이지 그림에 많이 기대어 살았고
끝까지 순수하게 성실한 예술가들로부터 삶을 배우길 바랐던 것 같다.
"예술로 치유받는다는 건 결국
작품과 내가 일대일로 대면하는 은밀한 순간에 나를 잠시 잊는 것과 같다"고 한 이는 누구였던가.
그래서 나는 나를 그토록 자주 잊으며 여기까지 무사했던가.
좋아하는 그 많은 그림들을 모두 나만의 시로 쓰고 싶어질 때가 자주 있지만
말로 그려낼 실력이 모자라 포기하곤 한다.
하지만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
즉,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말은 얼마나 정확한지....
오늘도 나는 화첩을 펴놓고 그 속에서 시를 읽는다.
-이운진
별이 떨어지면, 아파오는 그 몸
하늘이 붉어지면, 부풀어 오르는 그 몸
갇힌 채 잊힌 너를
추락이 가능한 높이까지
날아가게 하고 싶다
너는 은밀한 방식으로 나와 같아서
―『저녁 잎사귀처럼 알게 될 때』, 소월책방,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