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동안 나는 잠시라도 여행자가 된다. ‘여행자’라는 존재가 현실의 내게는 꽤나 어려운 일이라서 그럴까. 시집 속에서 만큼은 꼭 여행자인 나를 그려 넣는다. 그렇게 세 권의 시집에서 나는 조금씩 다른 여행자가 되었고, 대략 10년 동안의 내 삶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행자인 내 모습도 바뀌어갔다. 그 변화의 방향과 모습을 보다보면 내가 흘러가고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조금 헤아려지기도 한다. 북극을 떠돌고 싶어 하던 나를, 그럼에도 운명과 이 모든 관계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내가, 마침내 무엇에 기대 마음을 가볍게 만들고 있는지……
끝내 정답을 찾지 못했어도 적어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이 나에게 얼마나 솔직했는가가 중요한 것이었으니 나는 괜찮은 여행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려나 상처를 치유하기 보다는 어떤 것은 시간에 묻고, 어떤 건 가진 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는 것. 내가 시 속의 여행자로 사는 이유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