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에 대하여

이루어진 적 없는 소원에 대한 고찰

by 이우

어린 시절부터 참 많은 소원을 빌며 살아왔다. 장난감을 선물 받게 해 주세요. 컴퓨터를 갖게 해 주세요. 강아지를 갖게 해 주세요. 시험을 잘 보게 해 주세요. 키가 크게 해 주세요. 잘생기게 해 주세요. 그녀도 나를 좋아하게 해 주세요. 바라는 것이 있을 때, 소원을 빈다. 언젠가부터 이것은 내게 어느새 공식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비단 어린 시절만의 일이 아니었다. 소설가가 되게 해 주세요. 지혜로워지게 해 주세요. 부모님이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어른이 되고도 나는 숱한 소원을 빌어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부조리를 지각할 때쯤, 나는 소원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었다.


소원이란 무엇인가. 소원(所願), 바 소에 원할 원. ‘원하는 바’라는 뜻이다. 원하는 바, 소원이 쓰일 때에는 언제나 ‘빌다’라는 동사와 함께 쓰인다. 소원을 빌다. 흥미로운 것은, 이 빌다, 라는 동사는 사전에 의하면 바라는 바를 이루게 하여 달라고 신이나 사람, 혹은 사물에게 간청하는 것을 뜻한다. 뭔가 이상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소원을 빈다’는 문장은 무언가 오류가 있어 보였다. 그렇다. 목적어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소원을 빌어왔지만, ‘누구에게’ 소원을 비는지 명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소원만 주야장천 빌어왔던 것이다. 이제 나의 소원들이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도 자명해졌다. 나의 소원들은 그저 ‘수취인 불명’의 탄원서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나는 소원을 빌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망도, 희망도, 소원도 없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나의 탄원들을 누구에게로 보내야 할지 모를 뿐이다. 도쿄에서는 일주일 동안 스님에게 신세를 지며 사찰에서 지낸 일이 있었다. 그를 따라 법당에서 절을 하고, 합장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소원을 빌지 않았다. 아버지 덕에 유아세례에 첫 영성체까지 받은 나름 천주교 신자였지만, 소원을 빌어본 적이 없다. 유럽 세계를 여행하며 숱한 교회들을 방문했지만, 그 웅장함 앞에서도 나는 소원을 빌지 않았다. 이슬람의 세계에서 일 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모스크에서 친구로부터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 그를 따라 기도해보았다. 하지만 소원을 빌지 않았다.


나는, '아직' 신을 믿지 않기 때문일까. 믿는다 하더라도 신이 수억 통의 탄원서 중 하나에 불과한 나의 소원을 읽을 것이라고, 읽는다 하더라도 들어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나는 소원이 있다. 그저 입밖에 꺼낸 적 없을 뿐이다. ‘누구에게도’ 빌지 않았을 뿐이다. 의구심. 과연 소원은 비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 되고 싶은 것. 그것들이 누군가 이루어줄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일까. 소원은 아무래도 ‘빌다’라는 현재형 동사보다는, ‘성취하다’라는 완료형 동사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소원을 빌고 싶지 않다. 소원을 성취해내고 싶을 뿐이다.



DSC00885.jpg 사하라 사막에서 기도하는 베르베르인. ©leewoo,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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